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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운 Oct 10. 2023

'저거 어디에 쓰는 건가요?'

추석에 시댁에 갔다가 시누에게서 호박 여섯 덩이를 선물로 받았다. 정성스레 농사지은 호박을 거두어 일부는 즙으로 만들고, 일부는 명절에 가족들과 나누려는 시누의 마음이 가득 담긴 선물이었다. 탐스런 호박이 가득 담긴 상자를 끙끙대고 들고 온 남편은 이웃들과 나눠먹으라고 했다. 약호박이 몸에 좋다며 챙겨주셨는데 미처 챙겨 먹지 못하고 상하면 그 또한 큰일이라 아래층 동생에게 문자를 넣었다.



호박이 필요하냐는 질문에 '할로윈??' 이라는 참신한 답변이 와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러더니 '저거 어디에 쓰는 건가요?' 하기에 또 한 번 웃음이 나왔는데, '호박죽은 사 먹는 겁니다.'라는 마지막 말에 박장대소를 하고 말았다. '그렇지... 호박죽은 사 먹는 거지...' 싶었다. 누구나 인정할 만한 레시피로 만들어 맛깔난 죽집 호박죽을 두고 굳이 사서 고생할 이유가 없겠구나 싶었다. 손질하고, 삶고, 끓이고 몇 시간의 정성을 들여 만든 호박죽을 식탁에 놓아도 아무도 즐기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사실 우리 집에서 나 말고는 아무도 호박죽을 먹지 않는다. 가끔 먹고 싶으면 한 그릇을 세 등분으로 나누어 포장한 뒤 냉동실에 넣었다가 가끔 하나씩 꺼내어 먹곤 한다.


호박을 받아 들고 어떻게 하면 더 맛있고, 이웃과 나눠도 좋을 음식으로 탈바꿈할 수 있을지 내내 고민 중이다. 호박만 덩그러니 들려주면 받아놓고 난감할 것이 뻔한 터라 번거롭더라도 바로 먹을 수 있도록 만들어주면 좋을 것 같아서이다.


찾아보니 약호박으로,

1. 편으로 썰어 말린 후, 호박설기 만들기

2. 쪄서 말린 후, 말랭이 만들기

3. 쪄서 으깬 후, 꿀에 재워 호박정 만들어 차로 마시기

4. 쪄서 말려 가루를 낸 후 선식으로 먹기


일반적으로 호박죽이나 호박전, 호박김치를 만들어 먹지만 그 외에도 다양한 방법으로 호박을 활용할 수 있었다. 어떤 것으로 만들어야 주신 정성과 나눔의 기쁨을 다 만족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일단 쪄서 말려보려고 한다. 쪄서 말린 호박을 나누면 각 가정의 식성에 따라 다양한 방법으로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아서이다.


소일 삼아 텃밭을 메는 아버지는 때때마다 수확한 농작물을 가져다주신다. 혹시 다듬는 게 귀찮아서 묵혀두다 버려질까 싶어 일일이 다듬고 손질해서 보내주시지만 깜박 잊고 챙겨 먹지 않아 냉장고에서 물러질 때가 있다. 미리미리 이웃들과 나눴다면 좋았겠지만 아버지의 정성스러운 손길을 알기에 혹여 마음이 섭섭하실까 보관했다가 다 먹지 못하고 버려질 때가 종종 있다. 마트에서 장 본 식재료를 버릴 때와 아버지의 농작물을 버릴 때의 마음은 천지차이다. 아버지의 정성까지 버리는 것 같아서 죄책감이 배로 밀려오고 종일 마음이 편치 않다.


농작물을 주시겠다고 부르실 때 종종 거절하기도 하지만 그 또한 쉽지 않다. 전화기 너머 서운함이 건너와 가슴을 헤집어놓기 때문이다. 뭐 하나라도 챙겨주고픈 부모님 마음을 알지만, 삼시 세 끼를 가정식으로만 챙겨 먹지 않는 탓에 냉장고 야채실을 가득 채운 식재료가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 부모님께서 즐기는 식재료와 가족이 즐겨 먹는 식재료가 다른 것도 한 이유이다. 이것저것 챙겨주셔도 가족들이 먹지 않으면 자리만 차지하는 애물단지가 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이웃들과 나누며 아까운 식재료가 버려지지 않도록 마음을 쓰지만 손질하기 번거롭거나, 아이들이 좋아하지 않는 식재료가 생겼을 때에는 생각이 많아진다. 몸에 좋다는 약호박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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