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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카시아 Oct 03. 2021

인공수정, 남편의 애정

얼마 전 인스타그램에서 이런 글을 봤다.

“손만 잡고 잤는데, 아이가 생겼어요!”

“블루투스 베이비예요.”

웃자고 한 말이었겠지만, 난 웃을 수 없었다.

그리고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의사 선생님의 도움을 받으면 손만 잡고 자도 아이가 생길 수 있다.


인공수정
: 정상적인 성관계를 통하지 않고 인위적 혹은 의학적 기술을 이용해서 임신을 목적으로 하는 것




모든 것이 다 괜찮다는데 왜 임신이 되지 않는 것일까 수없이 고민했다.

내 뇌구조를 그려보면 ‘임신이 왜 안될까?’라는 의문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내가 너무 예민해서 아이가 오지 않는 것일까,

살이 쪄서 아이가 자리를 못 잡는 것일까,

버스 통근이 몸에 많은 무리를 주는 것일까,

남편과의 금슬이 좋아 아이가 질투해 오지 않는 것일까…

답이 없는 문제의 답을 찾아 헤맸다.


나보다 먼저 결혼한 친구가 엄마가 되었을 때, 나도 곧 그렇게 될 줄 알았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결혼한 선배는 내가 난임 병원을 다니는 동안 산부인과에서 아이의 초음파를 보고 있었고,

나보다 늦게 결혼한 친구도 얼마 전 아이를 품에 안았다.

아이를 갖고 품에 안을 수 있을 만큼의 시간이 지났는데, 나는 아직도.. 제자리걸음이다.


맥없이 흘러가는 시간이 아쉬워서 남편에게 인공수정을 시도해보고 싶다고 말했고,

매월 힘들어하는 내 모습을 봐왔던 남편은 내 의견을 존중해줬다.

다만, 주사를 맞거나 약을 먹는 것이 내 몸에 부담을 주지 않을까 걱정하며 의사 선생님에게 이런저런 것들을 물어봐주었다.

그리고 이번엔 정말 잘 될 것이라 말하면서도, 혹시 되지 않더라도 우리는 젊으니까 남은 시간이 많다는 것을 상기시키며 나에게 힘을 주었다.


인공수정 과정은 배란유도제만 먹으며 자연임신을 시도하던 것과 비슷했고, 몇 가지만 더 추가되었다.

이틀에 한 번씩 뱃살을 꼬집어서 자가주사를 놓는 것과

매일 잠들기 전 질 속으로 약을 집어넣는 것.

 모두 처음 해보는 것이었지만 어렵지 않았다.

평소보다 더 많은 약들이 몸에 들어갔으므로 몸에 부담이 갔을 수도 있는데, 이번에는 임신이 될 것이라는 희망 때문인지 전혀 힘들지 않았다.


인공수정 1차 시도에 임신 성공하는 것은 로또에 당첨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들 한다.

실제 로또는 당첨되지 않아도 ‘인공 1차 성공’ 로또는 꼭 당첨되고 싶었다.

하지만 로또 당첨의 벽은 높았다.

‘인공수정은 2~3회 차에 많이 성공해요! ^^’ 라는 글을 보며 두 번, 세 번 더 기대했지만 결과는 모두 실패였다.




남편과 20대를 꽉 채워 보냈으니, 30대는 셋으로 시작하고 싶은 마음은 내 욕심이었나 싶다.

현대 의학의 힘을 빌려도 아이가 생기지 않으니 이제 정말 내 문제인가 싶어 많이 슬프다.

음, 괜찮았는데 글을 쓰니 눈물이 난다.

그래도 인공수정을 진행했던 3개월간 나는 불행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많이 웃고 행복했다. 남편 덕분에.


남편은 잠귀가 어두워 천둥번개가 쳐도 아랑곳 않고 곤히 잘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도 내가 ‘여보..’하고 나지막이 부르면 바로 눈을 뜨고 무슨 일이냐고 묻는다.

슬픈 꿈을 꿔서 유난히도 자주 울면서 깼던 요즈음, 남편은 늘 나를 안고 토닥여줬다.

남편의 손길과 함께 긴 새벽이 지나가면 나쁜 꿈은 잊어버리고, 남편이 안아준 기억으로 하루를 살아갈 수 있다.


아야 너그 신랑 같은 할배 있으면 나한테 하나 붙여봐라~ 서방이 맨날 밥도 해주고 부럽다야~
니는 참 복이 많타! 우리 손지딸 시집 잘 갔네!


가끔 맛있는 요리를 해줬던 남편은 이번 인공수정 시도 기간 중 완벽한 요리사가 되었다.

주 전공은 지중해식.

나에게 더 좋은 것을 먹이고 싶어서 알아보니까, 건강한 재료로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 지중해식 식단이었다고 한다.

계란으로 만든 피자부터 시작해서 양배추, 토마토, 두부 등을 활용한 요리, 밀가루 없는 빵 등.

퇴근하자마자 뚝딱뚝딱 만들어낸 남편의 요리는 최고다.

순위를 매겨보려고 했는데 모두 맛있어서 매길 수가 없다. ㅠㅠ


완벽을 추구하는 남편은 요리에 만족하지 못할 때가 많았는데, 나는 너무 맛있게 잘 먹었다.

늘 맛있고 배부르게 먹었는데도 속이 편안했고, 군것질 생각이 나지 않았다.

임신까지 이어지진 못했지만 평소보다 난포도 더 잘 자랐고, 자궁도 깨끗하고 내막 두께도 좋다고 하셨다.


‘배란된 지 며칠 지났지?’만을 생각했던 하루에 ‘오늘은 여보가 무슨 요리를 해줄까?’하는 생각이 덧대어졌다.

남편의 따스한 마음이 담긴 따뜻한 요리가 내 마음을 덮어주면서 부정적인 생각을 덜 하게 되었고,

이렇게 다정한 남편과 함께라면 몇 번이라도 더 시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월 강박증 환자같이 날짜를 셌고,

한 줄만 나타나는 임신테스트기를 노려보았던 임신 준비생의 삶을 잠시 멈추고, 신혼의 삶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코로나 백신도 건강하게 맞고, 남편이랑 예쁘고 좋은 곳도 많이 다니면서 즐겁게 지내야지.


지금도 부엌에서 밀가루와 설탕 없는 빵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거품기를 휘젓고 있는 남편에게

오늘도 고맙고 사랑한다고,

여보를 만난 건 내 인생 가장 큰 행운이었다고 말해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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