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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카시아 Jun 02. 2021

임신을 방해하는 치명적인 능력

못생긴 눈사람

나에겐 작은 눈송이를  큰 눈사람으로 만들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 장갑도 끼지 않은 손으로 꾸역꾸역 못생긴 눈사람을 만들어낸다.


눈사람을 만든 자리에 두고 오면 햇볕에 자연스럽게 녹을 텐데, 버리지 못하고 내 옷 안쪽에 깊이 넣어둔다. 눈사람을 꺼냈다가 넣어두기를 반복하지만 눈사람은 이상하게 녹지 않는다. 오히려 신경 쓸 때마다 더 단단해지고 차가워진다.


눈사람이 내 온몸을 꽁꽁 얼리면 나도 하나의 큰 눈사람이 된다. 눈사람이 된 나는 쉽게 녹아내리기도, 다른 사람을 춥게도 한다.

그냥 지나갈 수도 있는 작은 눈송이였을 뿐인데 왜 나에겐 한없이 차갑고 무거울까.


버리지 못하는 눈사람을 반복해서 만들다 보니  작은 눈송이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이것도 나를 해하려는 눈송이가 아닐까?’ 신경을 곤두세우곤 한다.

그리고 이런 예민함은 내 몸 깊숙한 곳부터 흔적을 남겼다.


생리불순.


교과서에 나오는 정상적인 여성의 생리주기 ‘28일’은 나에게 낯선 얘기였다.


중학교 1학년 때 시작한 생리는 스트레스 정도에 따라 주기가 변동되었지만 불안하지 않았다. 오히려 생리통을 드문드문 겪을 수 있다는 것은 나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라 생각했다.

고등학교 3학년 때는 내가 생리를 할 수 있는 사람인 것조차 잊을 만큼 생리가 오래 중단되었다.

수능 당일에 생리를 시작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함에 수능을 두 달 앞두고 산부인과에 갔다. 호르몬 주사를 맞은 뒤에야 그 해의 두 번째 생리가 시작되었다.


첫 연애를 시작한 20대는 늘 불안했다.

이중 피임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피임에 실수가 있진 않았을까 걱정이 되었다. 걱정을 할수록 생리는 더 불규칙해졌고, 생리가 시작되면 임신이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했다.

생리는 늘 불규칙했지만 3개월 이상 하지 않는 것은 임신테스트기 한 줄과는 상관없이 또 다른 불안감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혹시 내 몸에 다른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닌지…

병원에서 자궁, 난소의 이상 없음을 확인하고 오면 신기하게도 며칠 내로 생리를 시작했다.

의사 선생님은 스트레스에 의해 주기가 변동될 수 있으니 마음을 편하게 가지라고 말하셨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생리가 불규칙해지니 스트레스를 받지 말라는 것.


단순하게 보면 어려울 것이 없는 문장이다.

그렇지만 나에겐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조차 큰 스트레스였다.


20대에는 늘 임신이 되면 어쩌나 조마조마했지만, 결혼 후 바로 임신이 되지 않았다.

조급해하지 말고 아이가 없을 때 신혼을 즐기라는 말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우리 부부는 건강한 아이가 찾아오길 바라면서 임신 준비에 필수라는 엽산, 오메가 3, 비타민을 매일 저녁 챙겨 먹었다.


그렇게 시도 3개월째, 남편 손을 잡고 난임 병원의 문을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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