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6.26
“혹시 어디 아프세요?”
지난달 초에 단골 미용실에 머리를 자르러 앉았더니 원장님께서 걱정에 가득 찬 목소리로 물어보셨다. 미용실에서 들을 거라고 예상했던 질문은 아니었다.
아니요,라고 말씀드렸더니 사진을 찍어서 보여주시겠다고 핸드폰을 달라고 하시면서 또다시 물으셨다.
“요즘 스트레스 받거나 잠을 못 자거나 했나요?”
그럼 스트레스도 전혀 받지 않고 피로를 느끼지 않는 현대인도 과연 있단 말입니까,라고 말하고 싶은 충동이 없지는 않았지만 억누르고 답했다. 네, 좀 그러긴 했어요.
그러더니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씀하셨다.
“여기랑 여기 보이시죠? 아마 스트레스성 탈모인 것 같아요.”
뒤통수 오른편에 각각 500원짜리 동전 크기 정도의 부위 두 군데에 머리숱이 눈에 띄게 줄은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직 심한 편은 아닌데 다음번에 오면 사진 또 찍어볼게요. 그때 비교하게 이 사진 지우지 말고요. 이거 더 안 좋아지면 꼭 병원 가서 치료받아야 돼요.“
네,라고 애써 담담하게 답을 했고, 마지막 한마디를 하시면서 여느 때와 같이 머리를 자르기 시작하셨다.
“그리고 다른 것보다 잘 먹고, 잘 자고, 너무 부담 가지지 말고 그러세요.”
자라면서 머리숱이 많았던 편이어서 충격이 더 컸다. 집에 오면서 아무리 생각해도 그동안 느낀 피로나 부담이 익숙한 범위를 벗어나지 않았는데 왜 이런 증상이 갑자기 나타났는지 알 길이 없었다. 아니면 모르는 사이에 무언가가 서서히 누적되었던 걸까.
<나의 아저씨>에서 건축구조기술사인 박동훈은 “모든 건물은 외력과 내력의 싸움“이듯이, 인생도 “외력과 내력의 싸움”이라고 말한다.
외력이 갑자기 강력해진 것이 아니라면 내력이 약해진 것이라고 결론을 지을 수밖에 없다. 이제 막 서른을 넘겼는데, 생각해 보니 보통 아파트도 30년 남짓 지나면 재건축을 검토하기 시작한다. 특히 관리가 잘 안 되었다면 문제가 하나둘씩 나타나는 시기다. 아침마다 홍삼 스틱을 챙겨 먹는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이번달 초에 미용실을 다시 찾아가니 다행히 더 나빠지지는 않았다고 한다. 오히려 조금 나아진 것 같다고 하셨다. 혹시 몰라 그 사이에 잡았던 동네 피부과 상담 예약도 오늘 아침에 전화를 걸어서 취소했다.
일단 더 큰 위기는 모면했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여러모로 많이 드는 요즘이다. 누구나 살아온 관성이 있으니 모두 헐고 처음부터 시작하는 재건축 수준의 개조는 어려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변화가 불가능하지는 않다.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식적인 저항을 하지 않고 성장을 기대할 수는 없다.
건물과 인생의 비유를 듣고 “인생의 내력이 뭔데요,”라고 묻는 이지안에게 박동훈은 뚜렷한 답을 내놓지 못한다. 아마 하나의 정답이 있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어디서 시작해야 하는지는 분명하다.
“잘 먹고, 잘 자고, 너무 부담 가지지 말고.”
기본을 지키기가 가장 어려운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