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침반 Sep 18. 2023

부스터샷

2023.09.17

지난주 주중, 퇴근길에 찍은 해 질 녘의 미국 국회의사당.


열흘 전, 새로운 코로나 부스터샷의 FDA 승인이 임박했다는 속보가 떴다. 빠르면 다음 주부터 접종이 가능할 것이라는 내용을 읽고 인근 약국에서 접종을 예약했다. 하는 김에 독감 주사도 같이 예약했고, 혹시 모를 후유증에 대비해서 접종 당일인 금요일에 쓸 병가도 미리 신청했다.


하지만 계획은 금방 꼬이기 시작했다. FDA 승인이 예상보다 늦어졌고, 후속 절차인 CDC 승인도 늦어진 것이다. 관련 기사를 찾다가 CDC의 최종 승인 전에는 백신이 약국과 병원에 배송되지 않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원래 예약 시간에는 부스터샷 접종이 불가하다는 안내를 받았다. 예약을 취소하고 다시 알아보는 과정을 두 번 거친 후에야 금요일에 독감 주사와 부스터샷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지점을 찾았다.


금요일 아침, 예약 시간인 오전 10시보다 일찍 약국에 도착했다. 체크인을 하던 중에 부스터샷은 아직 입고되지 않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죄송하지만 독감 주사만 가능할 것 같네요. 저쪽에서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라는 안내를 받고 백신 접종을 위한 임시 칸막이 옆에 있는 플라스틱 의자에 앉았다. 일주일 정도 더 기다리고 예약을 다시 해야 하는지, 그럼 병가를 또 신청해야 하는지 생각을 하고 있었다.


페덱스 기사님이 등장한 것은 그때였다. 네모난 박스 두 개를 카운터 위에 내려놓고 다음 배송지를 향해 유유히 사라지셨다. 근심이 가득해 보이던 약사님의 표정이 그제야 풀렸다. ‘이거 어제 왔어야 했는데. 오늘 오전 예약도 다 취소하기 직전이었어’라고 동료 분에게 하는 말이 칸막이를 넘어서 들렸다. 그러고 나서는 다시 오셔서 ‘시스템에 입고 등록을 하고, 얼려서 배송이 되었으니 해동만 하고 바로 놓아드릴게요’라고 웃으면서 말씀해 주셨다.


그렇게 어쩌다 보니 그 지점에서 코로나 부스터샷을 1등으로 맞게 되었다. 바로 해동이 된 신선한(?) 백신을 맞는 진귀한 경험도 하게 되었다. 부스터샷은 왼쪽 팔에, 독감 주사는 오른쪽 팔에 맞았다. 다행히 후유증이 심하지는 않았다. 약한 감기몸살 정도였다. 금요일 토요일 이틀 내내 먹고 자고 쉬고 나니 바로 회복이 되었다.




잔걱정이 많은 편이다. 객관적으로 측정해서 수치화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지만, 적지 않은 사람에게서 들은 이야기니 어느 정도의 진실을 포함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살면 너무 피곤하지 않니’라는 조언을 듣고 고쳐보려고 시도도 했었다. 하지만 오히려 바꾸려는 것이 더 불편하고 피곤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포기했다. 핸드폰 OS처럼 성격을 손쉽게 패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생긴 대로 살자’라는 말은 분명 일리가 있다.


과연 걱정을 많이 하는 성격에도 장점이 있을까. 최근에 하나의 답을 찾은 것 같다.


갑작스러운 감정은 언제나 더욱 강렬하게 다가온다. 긍정적인 감정도, 부정적인 감정도 그렇다. 오랜 친구를 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친 반가움도, 가까운 누군가의 비보를 갑자기 들었을 때의 슬픔도 기억 속에 깊이 새겨지기 마련이다.


걱정을 하는 것은 혹시 일어날지도 모르는 상황이 발생했을 때의 감정을 미리 예상하고 느끼는 방법일 수도 있다. 마치 백신을 맞고 나서 약간 아픈 것처럼, 부정적인 감정을 미리 예상하고 상상했기 때문에 우려했던 상황이 실제로 발생하면 덜 흔들릴 수 있는지도 모른다. 조금은 더 침착하게 대응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모든 일을 예상할 수는 없다. 구체적인 상황 전개를 완벽하게 내다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내가 기분이 안 좋은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구나’를 미리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될 수 있다. 태풍을 막지는 못해도 방파제는 쌓을 수 있는 법이다.


늘 그렇듯 정답은 없다. 전혀 걱정을 하지 않고 편안하게 지내다가 100의 타격을 받는 것과, 긴 시간 동안 10의 부담을 안고 일상을 보내다가 50의 타격을 받는 것 중에 무엇이 나은지 말하기는 쉽지 않다. 각자가 일장일단이 있다.


다만 쉽게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생각과 감정의 습관이 어떤 도움이 될 수 있는지 살펴볼 일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3차 접종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