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이라고 책임감이 없는 건 아니다.
고등학생이라고 책임감이 없는 건 아니다.
상고를 다니고, 고3 여름방학이 시작될 무렵이었다. 학교에서 소개해 준 개인회사에서 나를 원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렇게 고3 여름방학 나는 직장인이 되었다. 하지만 출근을 했을 때 고등학생 취급을 받았던 일들이 많았다. 첫 출근 했을 때 나의 사수는 이제 출근한 지 한 달 된 30대 언니였다. 사수 개념보다는 같이 일을 해 나간다는 느낌이 컸다. 첫날에는 아무것도 안 하고 앉아 있기만 하다 보니 내가 이러고 있는 게 맞나? 싶기도 했다. 하지만 사수 언니는 사무 업무에 아는 것이 많이 없는 편이었고 나는 상고를 나와 이것저것 배웠다 보니 내가 알려주는 형태가 많아졌었다. 그렇게 3일을 출근을 했다. 3일 동안 출근을 하면서 모든 사람들에게 인사를 했고 나중에 출근하는 이사한테도 매일 인사를 했지만 이사는 나의 인사만 받지 않았다. 심지어 나한테는 말 한마디도 걸지 않았다. 나는 이게 말로만 듣던 텃새인가 싶었다. 3일이 지나고 나니 말도 걸지 않던 이사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회계 관련 자격증을 땄는데 회계에 대해 잘 아냐고 물어왔다. 자격증 공부를 독학했다 보니 어느 정도 안다고 했더니 회계 관련 질문을 했다. 나는 그것에 대한 대답들을 차근히 답 했던 기억이 있다. 질문에 원하시는 답변들을 말했다. 드디어 말이 통하는 직원이 들어왔다며 좋아했다. 나는 3일 동안 말도 안 거셨던 분이 갑자기 말을 걸어와서 당황스러웠다. 알고 보니 이사는 말을 걸고 싶었지만 "반나절 만에 화장실 갔다 온다 하고 돌아오지 않던 사람, 하루 뒤에 연락 없이 출근하지 않았던 사람이 워낙 많아서 성인도 책임감 없이 그만두는데 고등학생은 더 책임감 없이 떠나겠지."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결국 나는 얼마 못 버티고 떠날 사람이라 생각해서 3일 동안 없는 사람 취급을 했다는 것이다. 솔직히 그 말을 들었을 때 어이가 없었다. 나이가 어리다 해서 책임감이 더 없을 거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거에 말이다. 책임감이 있냐 없냐의 차이는 자기의 성향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이사는 3일간 나에게 텃세를 부렸고 3일 뒤 나와 얘기 한 뒤로는 이사의 행동들이 바뀌기 시작했다. 얘기가 잘 통한다는 이유로 출근하면 바로 나를 찾아와 폭풍 수다를 떨게 된 것이다. 이사의 딸이 나와 같은 나이라 나를 "아가"라 불렀다. 출근하거나 출장을 갔다 오시면서 과자를 사 와서 나에게 준 적도 몇 번 있었다.
경리 일을 하는 사람은 감정 없는 욕받이가 아니다.
그렇게 2주 뒤 사수였던 언니는 퇴사를 했다. 나의 사수는 그렇게 부장으로 바뀌었다. 2주 간 출근을 하면서 배웠던 일들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경리업무 메인이나 다름없는 일들을 하게 된 것이다. 부장은 기분파였다. 기분이 좋을 때는 물어본 것을 잘 알려주었지만 기분이 안 좋을 때는 알려주는 것을 꺼리는 표정을 짓기도 했다. 물론 부장이 나에게 직장 내 괴롭힘을 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현장에 일 지시를 내려야 할 때 욕을 먹어야 하는 상황이면 나를 보내곤 했다. 내가 개인회사를 다니면서 제일 처음 배운 것이 현장 직원들 한테 아부하기였다. 급한 일 들을 지시하기보다는 부탁을 하면 짜증을 덜 내고해준다는 결론을 얻었기 때문이다. 부장은 나에게 귀찮은 현장 업무들을 넘길 때가 많이 있었다. 또한 사무업무를 물어보면 자기도 찾아서 일한다며 "은진 씨가 그런 것들은 찾아서 일 해야지"라고 말할 때도 많았다. 심지어 회계적인 면에서는 나보다 모르는 부분도 많았다. 그렇게 경리라는 이유로 잡일을 하는 경우도 많았고 쓴소리를 들은 적도 많았다.
나의 일 중에 하나는 월말에 입출금 하기였다. 회사 사정이 어렵다는 이유로 직원들의 월급을 늦게 준 적도 몇 번 있었다. 나는 말단사원이다 보니 입출금하고 말고의 선택지가 없었다. 사장이 보내라 하면 보내는 그런 말단 직원이었다. 하지만 입출금을 담당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직원들의 쓴소리를 들은 적도 많다. 여기까지가 내가 처음 다녔던 회사에서의 일부 경험들이다. 그 회사에 사장과 이사, 현장 직원들은 말투들이 거칠었다. 심지어 항상 욕을 달고 살며 목소리도 컸다. 그런 환경들 때문에 말도 없이 그만두었던 직원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 상황에서 내가 깨달은 사실은 그 행동들은 나에게 피해를 끼치는 행동들은 아니었다. 모두 나에게 악감정을 가지고 내 앞에서 욕설과 목소리를 높이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내 업무를 할 때 나는 그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을 없앨 수 있었다. 그 사람들의 기분이 좋지 않아도 눈치를 보며 결재를 맡기도 하고 일을 부탁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사장님이 결재를 해 주며 물어왔다. 자기가 이렇게 성질내고 욕하는데도 무섭지 않냐는 것이었다. 그 말에 나는 그냥 웃고 말았다. 물론 나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웃었던 것도 있지만, 본인들이 하면 안 되는 행동을 하고 있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음에도 행동한다고 생각하니 웃음이 나왔다. 그렇게 나는 이 일상들을 3개월 간 지속되었다.
월급 올려주기로 한 구두 약속, 법적 효력이 없다 해서 퇴사했다.
나의 고용 형태는 3개월 수습 후 정규직이었는데 처음 사수 언니가 있을 때 사장은 항상 3개월 뒤에 내가 그만둔다는 과정 하의 얘기들을 많이 했다. 그 당시에는 처음 직장이라 3개월 뒤에 버려질까 봐 불안했었다. 사수 언니가 그만두고 난 뒤에는 3개월 뒤에도 계속 다니길 원하는 눈치였다. 3개월이 된 시점에서 사장은 나에게 면담 요청을 했다. 면담을 가보니 아직 학생이고 하니 3개월 더 수습을 연장하자는 말이었다. 그 당시 나는 월급으로 130만 원을 받고 있었다. 3개월 수습 연장 후에 150만 원으로 올려주겠다는 제안을 해왔다. 나는 경력을 쌓고자 들어간 회사라 알겠다고 했다. 그 3개월 수습 연장은 설에도 나에게 상처를 가져다주었다. 수습 3개월 연장 해 달라해서 연장해 줬을 뿐인데 설에 떡값을 주면서 하는 말이 "원래 수습에는 떡값 안 주는 데 챙겨준다."라는 생색의 말이었다. 그 당시에 그 말은 나에게 상처가 되었다. 본인이 수습 기간 늘려달라고 해서 늘려줬을 뿐인데 들은 말이 고작 원래 안 주는데 챙겨준다는 말이라니. 그 말을 들으면서 속으로는 '떡값 안 받고 말지.'였다. 집으로 가서 봉투를 열어보니 고작 3만 원이였다. 3만 원을 주면서 생색냈다는 말이다. 그 말을 들은 엄마도 어이없어했다. 나는 아직도 그 사건을 잊지 못한다. 이 사건은 시작에 불과했다. 결국 나는 수습 6개월의 기간을 다 채웠다. 그러다 보니 또 사장이 면담 요청을 해왔다. 면담하면서 한다는 말이 올려주기로 했던 월급을 못 올려주겠다는 소리였다. 회사가 어려우니 월급 못 올려주겠다고 말했다. 나는 표정 관리를 하지 못 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더 가관이었다. "내가 월급을 올려주기로 구두 약속을 하긴 했지만 법적으로 효력은 없다."였다. 그 말을 들으니 6개월 간 다니던 회사의 있던 정 없던 정이 다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그 말을 들은 저녁 그 사건을 들은 엄마는 무척 어이없어하면서 속상해하셨다. 그렇게 그날 나는 "내가 월급을 올려주기로 구두 약속을 하긴 했지만 법적으로 효력은 없다."라는 말에 '이 회사에서 나는 그냥 약속을 지키지 않아도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사장이 했던 발언은 '고등학생이었던 나를 무시하는 발언이 아녔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무시를 당했다 느끼니 더 이상 회사를 다니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고 결국 나는 퇴사를 결심하게 되었다. 그 사건을 계기로 퇴사를 결심했지만 말할 용기는 없었다. 그 와중에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졸업 후 학교에서 반도체 생산직을 뽑는다는 공고를 받게 되었다. 생산직 취업 공고에는 2주 뒤 면접 후 바로 입사하는 조건이었다. 그렇게 나는 거기를 가겠다는 핑계로 퇴사하겠다고 말했다. 사장은 그 말을 듣고는 거기는 월급 얼마를 주냐고 물었다. 대충 금액을 말하니 거기로 가라고 했다. 자기는 그만큼 월급 인상을 해 주지 못하겠다는 소리이다. 그렇게 나는 퇴사 2주 앞두고 말을 했다는 이유로 쓴소리를 먹긴 했지만 7개월을 근무하고 첫 직장을 퇴사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