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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마추어 May 08. 2024

이 집안의 금쪽이

남아선호사상 짙은 집안에 태어난 괴짜

나는 꽤 가부장적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친가쪽은 명절때 마다 남녀 겸상 하지 않게 밥상을 항상 따로 차렸고, 외가쪽은 남자형제들을 위해 자매가 헌신하는 구조의 남아선호사상이 짙은 그런 분위기였다. 내 부모님도 자연히 남아선호사상을 갖고 있는 세대이셨다. 그 곳에 되바라진 내가 태어났다.


이 집안의 금쪽이이었던 내가 앞으로 써내려갈 이 글은 지극히 내 주관적인 시각을 담고 있다. 살면서 분명 내가 잘못한 부분도 있고 억울한 부분도 있겠지만 잘잘못을 가리기 위함이 아닌 내 속의 풀리지 않는 응어리를 토로해 내기 위한 글이다.


남녀 겸상하지 않았던 우리집

어릴 적 할머니, 할아버지가 사시는 주택은 연못과 석류나무, 대추나무, 꽃나무 등이 잘 꾸며진 작은 정원이 있는 1층 집이었다. 우리 집에서 가까운 예쁜 집. 예쁜 집에 가면 날 엄청 예뻐해주시는 할아버지가 계셨다. 우리 할아버지는 나를 정말 예뻐해주셨다. 할아버지가 세상에서 최고 좋던 그런 시절이었다. 그런데 어린 내 눈에 이상한 점이 있었다. 친척들 다 모이는 명절이 되면 내 식기는 할아버지와 떨어진 다른 밥상에 차려졌다. 남동생은 할아버지 옆에서 먹는데, 왜 나는 같은 밥상에서 먹을 수 없는지가 궁금했다.


"엄마 왜 우리는 따로 먹어?"


항상 남자 어른들을 위한 밥상이 차려지고 나면 주방일을 끝낸 할머니들과 엄마를 위한 상이 작게 펴진다. 그러면 난 항상 어른들을 향해 저 질문을 했다. 어색한 웃음과 말끝을 흐린 대화는 그렇게 매번 종료됐다.


나도 어느새 마지막에 펴진 상에서 자연스레 식사를 했다. 그 상에 내 식기가 올라가 있었고, 남자 어른들 식사가 어느정도 지난 후에야 할머니들과 엄마, 나의 식사가 시작됐다. 참고로 나는 80년대생이다.


어린 내 눈에 낯선 이 광경이 눈에 익을때쯤, 할아버지가 언제부터인지 나를 곁에 두고 식사하시기 시작했다. 마냥 즐거웠다. 할아버지랑 함께 하면 밥을 일찍 먹을 수 있어서 신났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나는 우리집 남자 어른과 처음으로 겸상한 여자아이가 되었다.


주방일은 당연히 여자가-

어린시절 나는 엄마 껌딱지였다. 명절이 되면 친가쪽은 할아버지를 주축으로 작은 할아버지들이 집으로 모이셨다. 아빠의 사촌들도 모두 함께 하는 큰 가족모임이었다. 오가는 정겨운 인사가 끝나면 할머니들과 엄마는 주방으로, 할아버지들은 거실과 안방에 앉아 TV를 보시고 담소를 나누셨다. 낯가림이 있던 나는 오랜만에 만난 어른들을 뵙고 인사드리는게 무척 부끄러웠다. 엄마, 엄마하며 쫓아다녔는데, 엄마는 계속 주방에만 있었다. 엄마랑 같이 있고 싶어서 주방일 도와주겠다고 자처하다가 엄마한테 물었다.


"엄마, 왜 엄마랑 할머니만 일해? 아빠랑 할아버지들은 왜 같이 안해?" 조용히 가서 놀으라는 엄마말이 되돌아왔다. 그리고 나가서 또 조용히 있다가 할아버지들 얼굴 보며 물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들은 왜 같이 안하고 엄마랑 할머니만 해요?" 뭣 모르는 아이의 질문에 엄마는 머쓱해지고 공기는 썰렁해졌었다.


그래, 내가 이 집안의 금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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