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 끝을 잡는다. 동그라미를 만들어 그 안에 실 끝을 넣어 당기며 매듭을 짓는다. 바늘의 크기에 따라 매듭의 크기가 다르다. 얇은 천은 바느질을 하며 올이 나가지 않게 천이 울지 않게 실의 간격을 맞춰줘야 한다. 두꺼운 천은 굵은 바늘을 사용해 두세 번 매듭을 져야 단단해진다. 매듭의 위치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겉에 매듭이 보이게 바느질을 하면 모양새가 없어 다시 푸는 경우가 생긴다. 매듭이 안 보이게 시작해야 맵시가 좋다.
시작 전부터 요란했다. 매듭이 보이든 말든 해보지 않고 결과를 상상했다. 무모한 도전일지라도 의미를 부여했다. 이런 내가 못 미더운지 남편은 불안해했다. 무엇이든 호감을 갖고 첫눈에 반했다. 사랑꾼처럼 좋아하는 일을 발견하면 매듭은 짓지 않고 동그라미를 만들었다. 책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책상은 언제나 책이 쌓여 있었다. 이런 나에게 책과강연 슬로건‘추상에서 구체로’란 문장은 울림이 컸다.
독서와 글쓰기의 갈래가 늘어났다. 아직 가는 바늘구멍도 버거운데 굵은 바늘을 들고 움직이려니 바늘에 찔리고 매듭이 구멍을 채우지 못해 빠져나왔다. 바늘 끝이 손끝을 스칠 때면 따끔하고 고통스러웠지만 스치고 지나간 인연이 많았다. 아직 통과해야 하는 동그라미가 줄지어 있지만 곁에 두고 싶다. 당장은 힘들어도 언젠가 결이 닿지 않을까.
그림책을 좋아했다. 아이를 읽어주다 사랑에 빠졌다. 아이가 상상하는 동안 여백을 만났고 그림과 대화했다. 나의 그런 여유로운 모습이 좋았는지 아이는 그림책 읽는 시간을 좋아했다. 잊고 지냈던 그림책을 다시 만난 건 북월드콘 그림책 만들기 프로젝트에서. 그림책을 만든다는 건 상상도 못 했다. 그냥 소장용으로 작게 만든다고 했지만 4장을 채우는 건 큰 압축이 필요했다. 그림과 짧은 글 속에 전하고자 하는 내용을 담아낼 수 있을까. 새로운 도전이었다.
난생처음 겪는 일 앞에서 담담한 척했다. 다양한 재질의 천을 만나야 바느질 실력이 는다고 믿었다. 욕심만큼 건강은 따라주지 않았고, 일 년이 지나 몸이 고장 나기 시작했다. 몸이 쉬어야 한다고 말했지만 난 듣지 못했다. 밀린 동그라미가 겹치기 시작했고 빨간불이 켜졌다.
‘추상에서 구체로’가 ‘말보다 행동으로’로 바꿨다. 말 동그라미는 빈 수레처럼 진짜를 감췄다. 내가 힘든 건 그 누구도 알아주지 못했다. 아버지의 수술로 마음이 무너지자 일상도 무너졌다. 흔들려야 보인다고 했던가. 진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나와 대화하기 시작했다. 책을 읽고 사람을 만나 독서살롱을 하면서 예전과 달리 나와 이야기하는 시간이 늘었다.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열 수 있었다.
글이 마음을 그렸다. 감정덩어리였던 글이 서서히 허물을 벗고 그 안에 담긴 마음을 보기 시작했다. 왜 내가 글을 쓰고 싶은지,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지 알아갔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실을 잡았다. 하나 둘 작은 매듭이 지어졌다. 성공이 눈앞에 온 거 같은데 실체 앞에서 더 큰 그림자에 갇혔다. 이것이 진짜 내 모습인지 자책했다. 용기가 나지 않아 자꾸 동굴로 들어갔다. 마음의 병이 깊어졌다. 그 누구도 아닌 내가 인정하는 나를 만나고 싶었다.
매듭에 연연하지 말자. 조금 못나면 어떤가. 거칠어도 자연스러운 내가 좋다. 담을 수 있는 정도만 여유 있게 가지고 가기로 마음먹으니 편안해졌다. 나다운 걸 찾기 위해 기록해 나갈 것이다. 비뚤 한 모습조차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