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많이 먹은 탓에 속이 불편했다. 아침을 먹고 설거지를 한 후 새해인 만큼 운동을 해보자는 생각에 밖으로 나갔다. 어제 온 눈이 곳곳에 쌓여 있었지만 걷기에 무리는 없었다. 눈이 와서 밖으로 못 나온 탓일까. 운동장에는 사람이 많았다. 농구하는 무리, 축구하는 무리, 아이를 데리고 나온 가족, 끼리끼리 모여 자기들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활기차게. 난 모자를 눌러쓰고 주변을 둘러보며 조용히 걸었다. 전광판 시계만 바라보며. 한 바퀴를 돌고 운동장이 내려다보이는 의자에 앉았다. 옆을 지나칠 때와 달리 전체가 보였다.
아빠와 아들인 줄 알았다. 축구하는 아들을 연습시켜 주러 나온 아빠인 줄 알았다. 축구장 골키퍼 자리에 선 아이는 중간에 서 있는 남자가 보내는 긴 공을 받았다. 그 긴 공을 받는 아이는 그 아이뿐 아니라 옆에 있는 아이도, 옆에 있던 아저씨도 받았다. 공이 길가에 떨어지니 지나던 사람에게 공을 좀 보내달라고 말했다. 공을 준 사람에게 복 받을 거라고 이야기하는 남자를 자세히 보니 나이가 지긋이 있어 보였다. 아빠가 아니라 할아버지신가. 그러고 남자를 자세히 살펴보니 골키퍼처럼 등판에 숫자 00이 쓰인 조끼를 입고 있었다. 아이에게 보내는 공의 속도와 거리가 예사롭지 않았다. 그 남자는 축구장에 모인 사람들과 축구로 소통하고 있었다.
내가 하던 행동 범위에서 조금 벗어나 보는 건 어떨까. 매일 같은 길을 걷고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보다 매일 다른 길을 걷고 다른 곳을 바라본다면. 같은 공간이지만 다른 각도에서 다른 것을 볼 수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발견하지 못했을 장면들. 먼 거리고 대화를 해보지 않아 그들의 실질적인 감정과 관계는 예측할 뿐이었지만 그래도 스치고 지나가는 것보다 잠시 머물렀을 뿐인데 재미있는 풍경이 보였다. 무료한 날 집에만 있지 말고 밖으로 나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