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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보드레 Nov 30. 2021

늦은 퇴근길, 정처 없는 발걸음의 이유는

[생각이 많아지면, 글을 씁니다] 귀가 전의 '숨 고르기'

  확실히 요즘 들어 이래저래 좀 정신이 없었던 듯하다. 11월은 회사 업무에서 비교적 비시즌 기간이지만, 새로이 진행된 프로젝트로 인해 업무적으로 정신이 없었고, 이로 인한 파동은 나의 다른 일상들에까지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계속되는 야근으로 지인들과 예정됐던 약속을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겼다고 양해를 구하며 약속 일자를 미루고, 공부나 독서 계획에 차질이 생겼고, 그 날의 운동을 하지 못하게 되기도 했다. 아무리 자신의 시간을 회사에 저당잡혀 받게 되는 일정한 소득이 월급이라고는 하지만, 보상 하나 없는 OT를 찍으면서까지 시간을 갈아 넣은 뒤 사무실을 나서는 퇴근길은 매번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늦은 밤 잡히지도 않는 택시를 겨우 잡아 집으로 오고, 추후 경비 처리 할 영수증을 챙겨 내리면, 잠시 동안의 나의 방황이 시작된다.



  이상하게도 회사에서 업무적으로 힘든 날이었거나, 야근을 한 뒤 집으로 돌아온 날은, 나의 발걸음이 곧장 집으로 향하지 않는다. 알 수 없는 공허함에 사로잡혀, 한숨을 푹푹 내쉬며 일단 정처없이 걷기 시작한다. 무언가 살 것이 없음에도 괜히 편의점을 들어가서 '뭐 살게 있나...'하고 이리저리 둘러보다 빈 손으로 나오기도 하고, '뭔가 좀 먹을까...'하고 집 주변 빵집이나 음식점들을 주변을 어슬렁 거리기도 하다가 역시 아무것도 사지 않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이미 밤 10시는 넘은 경우가 대부분인지라, 바로 집으로 돌아가 휴식을 취하는 것이 스스로에게 합리적인 선택일텐데, 굳이 피곤한 몸을 이끌고 왜 이러는지는 스스로도 알 길이 없다. 뭔가를 사고싶단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 날이면 그냥 집 주위를 휘적휘적 걸어다니다, 잠시 집 앞 벤치에 가만히 앉아 멍때리다 들어가는 경우도 많다. 도대체 왜 이러는지, 알 수 없는 공허함 때문인지.



  찬 공기를 깊숙이 들이마시며 집 앞 벤치에 가만히 앉아 있다 보면, 아무래도 그 날의 하루를 이래저래 정산해 보게 된다. 회사의 일들도 있겠지만, 대개 그 날의 계획했던 바들이 잘 이행되었는지 생각해 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늦은 퇴근을 한 마당에, 무슨 계획들을 지킬 수 있었을까마는. "오늘은 공부도 하고 운동도 하고, 시간이 남으면 독서까지 하려 했지만 야근으로 다 어그러졌네ㅎㅎ". 내가 퇴근 후 집 앞에 섰음에도 당장 들어가지 못하는 것은, 집으로 들어서기 전 일종의 '숨 고르기'가 아닌가 문득 생각이 든다.



  집으로 들어서면 내가 보기로 했던 책이라던가, 공부하기로 했던 교재라던가, 혹은 운동할 때 입으려던 운동복이 당연히 눈에 보이기 마련이다. 의도치 않은(야근을 의도한다는 게 상식적으로 이상하기는 하다) 늦은 퇴근으로 인해 그 날 본인이 계획한 바를 이루지 못하는 것은 분명 짜증나는 일이다. '완벽해야 할 하루'가 어떠한 이유로 인해 '망쳐진 하루'로 바뀌는 듯한 느낌이랄까. 정처 없는 밤 산책 혹은 벤치에서의 숨고르기를 거친 후 집으로 들어오더라도, 책상위에 놓여진 책, 옷걸이에 걸린 운동복 등을 다시 보고 있노라면 괜히 스스로에게 다시 미안해진다. 글을 쓰면서 생각이 좀 정리된 느낌인데, 퇴근 후 바로 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무언가를 사러 편의점이나 음식점을 괜히 들락거리고, 그마저도 힘들면 벤치에서 잠시 가만히 앉아 쉬는 것은, 고생한 스스로에게 뭔가를 더 챙겨주거나 토닥여 주기 위한, 자기 내면의 마음에서 비롯된 무의식적 행위인지도 모르겠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어느 순간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이 문득 부담으로 다가왔다. 분명 스스로의 행복을 위해 시작한 글쓰기였는데, 어느 순간 글쓰기를 '일의 영역'에서 생각하게 되었던 것이다. 1주일에 한 권씩 읽는 책들, 그때 그때 생각나는 소재들을 매주 일정 이상 분량, 그리고 정제된 형태의 글로 재단해 내는 것은 분명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지금껏 장문의 글들을 주로 써 왔으니, 그 관성을 깨고 짧은 글을 작성하여 게재하는 것은, 지금이 힘들다고 현실과 타협하는 나 자신의 나약함의 방증이라 생각하기까지 했었다.



  어쩌면 잠시 스스로의 글쓰기에 대한 의미를 잃어버렸었나 보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쓰기'가 아니라, '내 생각을 정리하기 위한 글쓰기'가 글을 쓰기 시작한 목적이었는데(뭐 일기장 수준 정도 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순간 너무 전자의 목적에 치중하고 있었던 듯 하다. 그렇게 분량이나 외적 형태를 중시할 필요는 없는 것이었는데 말이다. 오히려 부담감에 억눌려 글을 다시 멀리하기보다는, '꾸준함'에 의미를 두고 나의 생각들을 간략하더라도 글로 정리해 내는 데 온전히 정신을 모아 봐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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