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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보드레 Jul 12. 2021

그래서... 그간 투자로 재미 좀 보셨어요?

직장인의 작고 귀여운 투자, 그리고 생각들

 '20년 6월 16일 화요일. 6시가 넘은 퇴근길이었지만 날은 여전히 밝았고, 공기는 지금이 초여름 어귀임을 온몸으로 알리기라도 하듯 덥고 무거웠다. 회사에서 집으로 걸어가는 퇴근길, 그 길은 여느 날과 다르지 않았으나, 내 발걸음은 그 어느 때보다도 느렸고 몹시도 터덜거렸다. 이어폰에서는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들의 오늘의 장세에 대한 분석들이 요란스럽게 쏟아져 나왔고, 나는 그 추정에 가득 찬 언어들을 듣는 둥 마는 둥 흘려보내며 집으로 향하는 느려터진 발걸음을 책망할 뿐이었다. 가벼운 운동 목적으로 3km 가량의 퇴근길은 걸어가겠다는 목표를 잘 지켜 나가고 있었는데, 그날 따라 반가워야 할 퇴근길이 어찌나 짜증나던지. 코로나 폭락장 이후의 상승장 국면에서 처음 맞이한 매서운 조정은 그렇게 내 기억에 남았다. 코스피 지수 -4.76%의 새파란 숫자와 대비되는 덥고 습한 기분과 함께.




 '20년 1월부터 투자를 시작했었으니, 매서운 조정을 처음 경험한 것은 아니었다. 3월 중순의 코로나 대 폭락장이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연초의 투자 원금은 지금 생각하면 '저거 벌어서 어디다 쓰겠나'싶을 정도의 금액이어서 별 다른 느낌이 없었던 모양이다. 지금도 크게 다르진 않지만 아무렴, 당시 아는 것도 별로 없는 '주린이'가 그 당시에 뭘 알았을까. 그 뒤의 상승장 국면에서 나름 투자금을 늘리긴 했으나, 그것도 지금 돌이켜보면 얼마 되지도 않는 금액이었다. 하지만 뭔가를 조금 알 때의 두려움이 가장 크다고 했던가, 유월 중순에 다시 만난 주가 조정국면은 당시엔 정말이지 감당이 안됐다. 지금에야 얼마가 빠지건 상관없이 믿고 산 종목들은 꾸준히 버티려 '노력'하는 자세라도 갖고 있지만, 작년 이맘때만 해도 나는 그야말로 '팔랑귀' 그 자체였다. 그렇게 얕은 생각과 판단으로 내 계좌에서 떠나보낸 종목들을 계속 들고 있었다면 적어도 1년 연봉만큼은 더 벌지 않았을까. 일시적 조정 이후로 그렇게 좋았던 장에서 투자에 대한 나름의 철학이 없었으니, 저조한 수익률로 귀결됨은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이제 와 생각하면, 일찍 시작했어야 하는 투자공부였지만 그렇지 못했던 이유가 있다. 다 스스로의 게으름에 대한 변명이 있는 것이다. 학부시절, 경영대학에서 '투자'에 대한 공부의 첫걸음인 '재무관리' 수업을 들을 무렵, 나이가 지긋하신 교수님께선 수업을 들어오실 때마다 푸념하듯 익살스럽게 말씀하셨다. "에이~오늘도 망했어!" 오후 4시 무렵 시작하던 수업이었으니, 항상 장이 마감한 후였을 터이다. 당신의 기분에 따라 수업에 기복이 있던 것은 아니었지만, 항상 5분 가량은 당일의 장세에 대해 말씀을 하셨으며, 끝은 항상 "그러니까 너희들은 절대 투자 하지마라~"라는 말씀으로 마무리하셨다. 당시는 주식에 대한 관심이 없었을 뿐더러, 투자할 돈도 없었으니 그러한 말씀들이 귀에 들어올 리 만무했다. 게다가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시는 교수님이 항상 실패담을 늘어 놓으셨던 것은 나름 기억에 박혔고, 그것이 '저 분도 실패하는데 내가 되겠어?'라는 생각으로 발전하여 투자를 시작조차 하지 않았던 것이 아닌가 싶다. 지금 생각하면 지레 겁먹고 경험조차 하지 않은 것이 경영학도로서, 아니 생활인으로서도 정말이지 어리석은 선택이었지만!



  그간 많은 투자기법, 적정주가 산정방식 등을 책도 읽고, 유튜브도 보고, 리포트들도 찾아 읽으며 공부해 봤지만, 사실 지금 유의미하게 기억에 남는 것은 별로 없고, 경험으로 체득한 어떤 '태도'만이 몸에 남은 듯하다. 운칠기삼이라 했던가, 그렇다면 투자는 '심(心)칠기삼'이라는 것! 유럽의 투자 현자 앙드레 코스톨라니는 '투자는 심리게임'이라 했다. 그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코스톨라니가 옳았음을 경험으로 깨달았다. 장고 끝에 선택한 종목들을 얕은 생각으로 매도 한 후, 계좌 속 허술한 종목들과 함께 얼마나 FOMO(fear of missing out)에 시달렸던지... 지금은 투자도 일종의 수양이자 마음 공부라 생각하고 있다.(그렇기엔 너무나 쫄리고 미친듯이 두근거리지만?) 공부를 아무리 해 봐야 제 마음 하나 다스리지 못하면, 호가창만 바라보다 흐름에 휩쓸려 고민 끝에 담은 종목을 팔아버리는 우를 범할 수 있으니. 결국 돌고 돌아, 뭐 '기업과 동업하라'는 등의 클래식한 투자원칙으로 귀결되는 것이지 싶다. 그것도 힘들다면 코스톨라니가 남긴 말을 기억하자. "주식을 사라! 그리고 바로 수면제를 먹어라. 10년 후에 깨어나면 부자가 되어 있을 것이다!" (좋은 종목 잘 고르고, 주가에 일희일비 하지 말고 장기투자 할 수 있으면, 그건 이미 투자에 있어 부처의 경지일게다.)




  뭐 어찌됐건, 길지 않은 투자 여정 속에서 지금껏 잃지 않고 적당히 벌어 온 것에 만족한다.(이 상승장에 잃는게 바보라고 말씀하시는 분들... 항상 성투하시길 바랍니다. :D) 지금껏 배워온 태도만 유지해도 잃지 않고 적당히 중간 정도는 갈 수 있지 않을까? 내심 희망회로를 돌려본다. 그러고 보면 코인으로도 번 사람이 많다는데 글쎄... 그래도 회계/경영을 주로 배워 온 나로서는(아니면 생각이 올드한건지?) 도무지 코인은 시작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크게 봐서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 까지는 주식으로 치면 '대장주'라 볼 수 있으니 어떻게건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외의 수많은 알트코인들은 습자지같은 나의 얄팍한 지식으로는 아무리 생각해도 투자의 근거를 모르겠고, 그렇기에 나는 만약의 하락장에서 코인을 들고 버틸 재간이 없다. 아무래도 보이는 것만 믿는 '꼰대'같은 투자 방식이 나에게는 맞나보다. 하지만 역시나 정답은 없겠지. 오늘도 회사에서는 결국은 코인이니, 그래도 주식이니 하는 점심시간의 난상토론이 끝나지 않는다.




  사실 이렇게 투자에 힘쓴다 해서 단기간에 서울 한복판에 아파트를 사고 이런 요행을 이룰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당연히 가능하지도 않고. 하지만 작고 귀여운 월급만 모아서 언제 '부'를 이룰 수 있을까. 이 인플레이션 시대에 가만히 있는 것이 더 어리석은 일일 터이다. 망하지만 말고 천천히 멀리 가자는 마인드로 묵묵히 나아갈 뿐이다. 그런데 옆 팀 책임님이, 내 투자 초기에 아무 생각 없이 던지신 한마디가 불현듯 떠오른다. "야, 100만원 넣고 100% 올라봤자 100만원밖에 못먹어. 소액 투자해서 언제 돈 모으냐?" 들을 당시에는 몰랐지만, 그 분이 정의하는 소액이란  약 3억원 미만의 모든 금액을 이르는 말임을 후에야 알았다. '적당한 사회적 직함'을 위해 회사를 다니신다는 그 분과 같은 규모의 투자는 힘들겠지만, 조금씩이라도 벌며 점진적으로 나아갈 뿐이다. 황새의 큰 보폭을 좇는 뱁새의 종종걸음처럼.




꿈을 먹고 자란다는 주식,

상승하는 자산가격을 따라 나 역시,

아등바등 자산 증식의 꿈을 쫓아갈 뿐이다.



뱁새들도

황새처럼 고고하고자 하는 욕심은 있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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