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정치 마스터

by 안이온
회사를 오래 다니다 보면 정말 다양한 인간 유형을 만나게 된다. 사회생활을 위해 우리는 소위 ‘사회적 자아’라고 부르는 또다른 인격을 키우게 되는데 이 사회적 자아는 보통은 어릴 적부터 부모님께서 길러주신 본질적 자아와는 거리가 있다. 짧은 사회경험을 통해 급조되기 때문에 극단적이기 쉽고 미성숙하다. 그리고 회사는 사회적 자아로서 살아가는 공간이니 내면에 숨은 각자의 본질적 자아들이 보기에는 그야말로 가관인 사람들만 모여있는 곳이 우리 각자의 사무실이다.


나는 정상인인데 모두가 비정상이다.

우리는 평생 가면을 쓰고 살지만 회사에서는 특히 진심이기 어려운 모양이다. 일과 삶이 확실히 분리되기 원하는 어린 세대들은 더욱 그렇다. 어느 정도까지 예의를 지키지만 그 이상의 헌신은 없다. 현대인의 내적 자아는 지극히 평범하고 합리적인 문명인이다. 그러나 익명의 방패 뒤에 숨어 댓글놀이를 즐기는 변태적 자기일탈 말고도 필요에 의해 만들어낸 자아는 그렇게 완성도 높지 못 하다. 직장에서 사용할 인격, 친구들과 어울릴 때의 인격 등 상황과 그룹에 맞는 인격을 만들고 마치 옷을 갈아입듯 이곳 저곳의 필요에 따라 사용하는데 본질적 자아에 가까운 인격일수록 인간적이고 멀어질수록 어딘지 비호감이다. 그러나 본인의 인격에 상관없이 모두는 서로를 평가한다. 내면의 그것이 아니라 겉으로 보여주는 인격을 비판하고 손가락질 한다. 그것이 그들의 본질이 아니라는 의심은 추호도 없다. 스스로의 본질적 자아는 단단히 숨겨두고는 타인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2D 세상에 떨어진 3D 캐릭터처럼 다른 이들의 표면적 단면을 보며 우월감에 젖거나 소외감마저 느낀다


본질적 자아가 절대로 없는 곳이 직장이다.

하나같이 비정상인들만 모인 곳에서 쓸만한 돈을 벌어야 하는 곳. 본질적 자아를 직장에 이끌고 나오는 사람은 없다. 거의 없다. 아니 전혀 없다. 모두들 매일 아침 머리를 흔들며 정신을 차리고 직장인 모드를 켜지 않는가. 사람 좋은 얼굴을 하고 쓰디쓴 커피를 향기롭다고 우기면서 ‘좋은 아침’이라고 인사한다. 사내정치는 거기서 시작된다. 여기서 내가 원하는 것을 취해야한다는 강박. 내게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해 나를 감추고 하루 8시간을 참는 댓가가 반드시 충분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어짜피 내 본질적 자아는 숨겨 두었으니 상처나거나 망가지지 않을 것이고 쓰고 버릴 직장용 자아는 얼마든지 리셋할 수 있다. 언제든 다른 직장에서 새로 시작하면 되니까. 그럼 누구와 결탁하고 누구를 희생양으로 삼을까.


성공적 사내정치

사내정치의 끝판왕은 직장에서 하고싶은 일을 골라서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일을 하자고 모였으니 일을 안 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모든 것이 측정가능한 세상에서 단순히 정치만 잘 해서 성공하기도 어렵다. 그러니 직장생활의 진정한 위너는 본인이 원하는 일만 골라서 하는 사람들이다. 하고싶은 일에는 집중하기 쉽고 빠르게 성과를 내며 이는 조직생활에서 눈에 띄는 가장 빠른 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원하는 일만 할 수 있을까.


당신의 상사는 당신을 꽤뚫어본다.

앞서 말했든 사회적 자아는 단순하다. 1년전, 3년전, 길어야 10년 전에 만들어졌다. 그러니 적어도 30년 전부터 만들어온 자아가 얕은 속내를 들여다 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남을 평가하는 것은 대체로 본질적 자아의 몫이기 때문에 상사는 당신의 사회적 자아를 속속들이 알고 있고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이미 알고 있다. 당신이 상사의 사회적 자아를 저울질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더 능숙하게 그 일을 해낸다. 그들과 거래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그들이 원하는 것을 준다.


하고싶은 일을 잘 하면 된다.

내가 사업주로써 가장 당황스러운 상황은 직원이 스스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를 때 이다. 일에 불만이 가득한 직원에게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묻는다. 그러면 이렇다할 방향성이 없는 대답을 할 때가 많다. 이루고 싶은 것이 있는가. 그것을 위해 해야할 일들을 결정하고 그 일을 잘 하기 위해 훈련해야한다. 그러면 반드시 그 일을 할 기회가 온다. 간혹 하기싫다 노래를 하면서도 곧잘 그 일에 매진하는 경우를 본다. 물론 하기 싫은 일도 어쩔 수 없이 떠맡을 때가 있다. (사실 대부분의 일은 하기 싫은 일이다) 하지만 어떤 일에서든 내가 하고싶은 파트, 최소한 덜 하기 싫은 부분이 있다. 그 부분에 집중하는 것이 비밀이다. 나는 분석하고 비교하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단순히 DB관리를 맡아도 데이터를 정확히 관리하는 것 외에 반드시 DB분석을 추가한다. 주간, 월간 추이를 챠트화 하고 오차범주를 줄이려고 노력한다. 그러면 어느 새 내 선임자는 나의 DB관리 능력보다 분석능력에 더 매력을 느낀다. 그렇게 나는 내가 더 원하는 일들에 가까워질 수 있다.


직장에서 성격을 드러내는 것은 무의미하다.

사회적 자아도 갈고 닦으면 본질적 자아 만큼이나 성숙한 인격을 가질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몇안되는 성공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내면과 바깥세상의 타협점을 만들었고 양면의 어느 그림자도 부끄럽지 않도록 관리한다. 성격을 내보이는 것이 잘못은 아니다. 다만 대부분의 경우 직장에서 자기 주장을 내세워야할 상황에 성격을 드러내는데 그 경계를 지키는 것에 관해 말하는 것이다. 주장이 받아들여지도록 하는데 필요한 것은 합리적인 근거와 신뢰이다. 정치인들의 가장 큰 실수는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그의 본질을 중요시한다고 오해한다. 사실 우리는 타인을 평가할 때, 특히 자기 이권이 걸렸을 때는 냉정하게 그의 사회적 얼굴을 평가한다. 드러나 있는 사실들과 결과들.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상황을 이끌고 싶다면 헨젤과 그레텔처럼 빵가루를 남겨라. 떼쓰고 억지를 부려도 지구가 거꾸로 돌지는 않는다. 맡겨지는 모든 일에 나만의 시그니처를 만들어 심고 기회가 왔을 때 보란듯이 터뜨리면 당신을 믿고 기회를 준 선임, 어쩌면 그 윗선까지 영향력이 닿을 것이다. 알량한 줄타기나 뒷거래따위로 얼마나 버티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