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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ism Nov 08. 2021

교수님께 혼난 날

겸손해야 할 때


며칠 전에 토론 수업이 있었어요. 조별로 토론을 하고 그 결과를 적어서 제출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조장이었던 제가 토론 내용을 정리해 교수님께 제출했었죠. 그런데 이어진 다음 수업 시간에 저희 조의 답안이 화면에 띄워져 있었어요. 빨간 줄이 찍찍 그어진 채로요.


"제가 이걸로 점수 부여를 안 해서 그렇지 이렇게 제출하면 0점이에요."


교수님께서 익명으로 말씀하시긴 했지만 정말 따끔하게 혼났습니다. 제가 쓴 글이 0점짜리라고 공개 처형당하고 있으니 너무나도 부끄러웠지요. 또 무엇보다도 조원들에게 너무나 미안했어요. 다들 저보다 낮은 학번인데 얼굴 볼 면목이 없더라구요. 표정관리가 안돼서 카메라는 꺼버렸고 카톡으로 조원들에게 사과했죠... 당연히 괜찮다고는 하는데 미안한 마음은 쉽게 사라지지 않더라고요. (그리고 괜찮다는 게 정말 괜찮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도 들고요...)




나이를 먹고 학년이 올라가면서 할 수 있는 게 많아졌다고 느꼈어요. 경험과 지식이 늘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학번은 알게 모르게 권력이 되었고 제가 뱉는 말들에 더욱 권위를 부여했었죠. 그래서일까요, 조원들은 제가 하는 말과 행동을 믿고 따라줬어요.


근데 제가 간과한 게 있었어요. 할 수 있는 게 많아졌다는 말은 그만큼 해야만 하는 일도 많아졌다는 것을, 제가 하는 행동에는 그에 걸맞은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말이죠. 아마 저는 조원들을 믿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학번이 낮다고 해서 일을 못하는 게 아닌데, 맘속 한편으로는 '그냥 내가 하는 게 맘 편하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거죠. 그리고 이 선택은 최악의 결과로 이어졌고요.




초등학교 6학년이 되었을 때 골목대장이 된 것 같았던 적이 있어요. 이 학교에선 내가 최고구나!! 하는 생각들 말이에요.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나 웃기죠. 그래 봤자 초딩인데. 그런데 같은 행동을 또 하고 말았네요. 4학년이라고 해서 누구보다 잘난 게 아니고, 저학년이라고 해서 누구보다 못난 것이 아닌데. 교수님 눈에는 저나 다른 조원들이나 별 차이가 없는 같은 학생일 뿐인데 말이죠. 안타까운 것은 이런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도 많다는 것이에요. 요 몇 년 사이에 가장 핫한 단어 중 하나는 '꼰대'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꼰대라는 말은 꼭 나이가 많은 사람만 해당되는 게 아니죠. '젊은 꼰대'라는 말도 그래서 등장한 말이 아닐까요.



권한이 많아질수록 책임도 늘어나고, 또 책임을 진다는 건 언제나 무겁고 신중해야 하는 일이라는 걸 느낀 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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