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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빵 Jan 07. 2022

[리뷰] 드라마 : 기묘한 이야기 <분차치 교육>

갈증을 해소할 물 한 컵

해당 리뷰는 일본 시리즈 드라마 '기묘한 이야기' 중 2007년 봄 특별판 에피소트의 하나인 <분차치 교육>만을 이야기합니다. '기묘한 이야기'는 제목처럼 기묘한 이야기를 옴니버스식으로 보여주는 시리즈 드라마입니다. 1990년도 방영을 시작해서 현재까지도 매년 시리즈를 내는 장수 드라마로 그 오랜 기간이 드라마의 위력을 보여줍니다. 처음 접하시는 분들은 우리나라 SNL에서 유명한 '3분 남친'의 원조격 에피소드인 <미녀캔>을 추천드립니다.




이런 영문 모를 평가로

이상적인 교육이 가능할까




드라마는 편차(偏差)치 평가를 하는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보이콧을 당한 선생님 케이코의 등장으로 시작한다. 편차치란 말 그대로 '일정 기준에서 얼마나 벗어나 있느냐' 하는 '편차'에 따라 성적을 나누는 방식을 말한다. 풀어서 쓰니 헷갈리지만, 간단히 말해서 우리가 흔히 아는 상대평가 방식이다. 이 말은 편차치 평가의 최대 가치는 공부에 의한 성적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문제는 좋은 교과 성적을 받으려는 학생들이 학교에서보다 더 빨리 더 많은 양의 지식을 배우기 위해 학원에 가거나 과외를 들으며 발생한다. 이들에게 학교에서의 시간은 그저 자습 시간일 뿐이며 그 시간을 할당받은 케이코는 길가의 행사장 풍선 정도로 취급될 뿐이다.




당신은 필요 없어요

우리는 편차치만 올리면 되니까




나라에서 기준을 잡아 가르치는 학교 교육과정만 따라서는 학교의 평가 방식에서 좋은 성적을 얻지 못한다. 좋은 학원 강사나 과외 선생님과 선행학습을 하지 않으면 상대적으로 뒤처진다. 게다가 돈을 더 내면 오직 나에게 맞춘 교육을 해주는 마당에, 여러 학생과 앉아서 내가 아는 이야기를 다시 듣거나 잘 모르는 부분을 시간에 쫓겨 넘기는 비효율적 방식을 좋아할 이유가 턱없이 부족하다. 비효율에 가려진 우정이나 협동의 가치가 아름답더라도 차마 결론의 성적이 C라면 학생의 학교생활은 C등급으로 평가될 뿐이기 때문이다. 이 기묘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케이코가 새로 발령받은 학교는 분차(雰差)치 평가를 시행하고 있다.




분차치 교육이야 말로

내가 꿈꿔왔던 교육이야




분차에서 분(雰)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오감으로 느껴지는 것'을 말한다. 즉 분차는 성적이라는 눈에 선명히 보이는 기준을 대신해 눈에 정확히 보이지는 않지만 감각할 수 있는 어떠한 기준으로 평가하는 방식이다. 명확하지 않다는 모호함에서 누군가는 그 정당성에 대해 불편함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 기준이 학생들의 단합과 위기를 대처하는 능력이라는 사실을 듣는다면 어떨까. 타당하고 명확한 기준이 바탕된다면 앞서 말한 교과 성적의 단점을 보완한 '이상적인 인간 평가 방식'이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트러블이 있기에

학급은 단결한다




아무도 말을 들어주지조차 않던 이전과 달리 케이코가 새로 발령 부임한 학교 학생들은 그녀의 말에 반응하고 그녀의 노력에 호응한다. 마침내 케이코는 교육자로서 자신이 살아  쉬는 만족감을 누린다. 케이코와 학생들 모두가 조화롭게 만들어낸 화음에 감동한 분차치 평가자들은 점점  후한 점수를 준다. 아니 적어도 케이코는 그렇게 받아들였다. 문제는 자신감이 자신의 그릇에서 넘쳐버린 케이코가 일부러 과한 트러블을 만들어내고는 이를 해결하며 점수를 쌓는 데에 매료되면서 드러난다. 금방이라도 넘쳐버릴 듯한 냄비  물을 진정시키는 놀이는 오만함에 적절한 때를 놓쳐 물이 흘러넘치면서 난장판이 되고 만다.



 

https://channelj.co.kr/program/view/?tab=1&pro=358&drama#info

비록 흘러넘친 물이라도 차가운 물을 부어 사태를 진정시킬  있다. 그런데  물을 끓이고 식히기를 반복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언젠가 마실   컵은 누군가의 손은 데게 하고 냄비를 타게  가치를 지니는가. 아마 그럴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운이 나쁜 물을 떠나보내고 살아남은 물에게 마셔질 영광을 주는  어떤 의미를 가졌는가. 이미 물이 태어난대로 가치를 평가받아 누군가는 공짜누군가는 몇억으로 평가받는 세상보다는 나은가. 가치. 가치를 평가받고 부여받기를 우리는  목말라하는가.




당신은 필요 없어요

우리는 분차치만 올리면 되니까




도덕성이 지식에게 가치가 밀리면 사람들에게 도덕성이 결여된다. 하지만 도덕성을 평가의 기준에 넣으면 좋은 평가를 받으려는 사람들이 좋은 도덕성을 보여주기 위해 경쟁하는 세상이 도래한다. 그럼 무엇이 좋은 도덕성이며 도덕성의 기본이 되는 진심의 가치를 어디로 가게 될까. 평가의 딜레마를 벗어날 길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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