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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명흔 Mar 11. 2024

22  식물도 술을 좋아할까?

하루가 쏜살같이 지나갔다.


오전에 우체국 가서 택배 부치고

나온 김에 40여걸어 동네 한바퀴 산책 하고

집에 오자마자 작업복으로 갈아 입고

베란다에 나가 화분 흙갈이를 하고

묵은 흙을 내다 버리고

뒷정리를 하고

소주를 가져와 분무통에 넣고 물과 섞어

초록이들 뿌리까지 스미도록 흠뻑 뿌려 줬다.


겨우내 춥다고 환기를 게을리 했더니 깍지벌레와

뿌리파리들이 눈에 띠었다.

우리집은 술 마시는 사람이 없으니 어쩌다 소주나 맥주가 생기면 식물들 차지다. 기꺼이 식물에게 준다. 가끔 약국에서 판매하는 소독용 알콜을 사  쓰기도 하지만 인체에 해가 없고 식물들에게도 좋으니 베란다 식물들에게 살충제나 소독제로 이만한 것도 없다. 주당 친구가 떠오른다.

오롯이 기승전 소주파인 친구가 이 사실을 알면

피같은 소주를 식물한테 준다고 왈가왈부하며

손사레칠 일이지만 내 맘대로 가드너인 나한테

소주는 늘 옳다.


여기서 장난스레 생기는 궁금증 하나

식물도 음주가무를 좋아할까.

어쩜, 그럴지도 모르겠다.

내가 좋아하는 바흐를  어느 식물책에서

식물도 바흐를 좋아한다 해 밑줄그은 기억이 난다.


 바닥 물청소까지 고 나니 식곤층처럼  온몸이 다 나른하다. 눈은 게으로고 손은 부지런하다는 말이 맞다. 칙칙했던 베란다가 말끔하게 정리됐다. 흙갈이할 땐  건성으로 봤는데 남천, 사철나무, 로즈마리 겨드랑이에 새 싹이 연두연두하다. 마치 따순 햇살에 곱은 손을 내놓고 도란도란 모여서 곁불을 쬐는 것 같다.

계절 감각이 둔한 나보다 봄을 먼저 감지하고 행동하는 식물들에게서 계절의 변화를 읽는다. 

한 낮 햇살이 차 오른 베란다에 넋 놓고 앉아  있으니

스멀스멀 올라오는 소주내에 취한 듯 불콰해진 시간이다.


핸드폰을 열고

바흐의  무반주 첼로 연주곡을  켠다.



*윤슬- 햇빛이나 달빛에 비쳐 반짝이는 잔물결.



* 대문그림: 예전에 그린 그림으로 봄 되면 생각나 들춰본다.. 소주 브랜드 참ㅇㅇ을  내맘대로 바꿔 그려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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