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선겸 Apr 03. 2024

100-31 화장실 쟁탈전

아이는 아침에 일어나면 눈이 다 떠지기도 전에 아빠가 출근했는지부터 물었다.

“응! 출근했어. 왜?”

“아니야!”

“화장실 가고 싶어서 그래?”

“응. 똥 마려우면 바로 가려고”

나는 한동안 아이가 왜 아침부터 아빠를 찾는지 몰랐다. 아빠와 오래 있는 시간은 그나마 저녁식사시간이 유일했다. 남편은 토요일까지 일을 했고 일요일은 본인의 취미생활을 하러 집을 비웠다. 지금은 1인 사업체라 토요일도 출근해야 하지만 전에는 사무실에서 영화도 보고 휴식을 취할 겸 출근했다. 물론 그때는 알지 못했다. 몇 년 후 거짓말이 길어지면서 밝혀졌다. 요즘은 남편 친구들이 본인의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가지니 남편도 가끔 휴일에 아이는 뭐 하냐고 묻긴 했다. 거의 본인이 마음 편히 약속을 잡으려는 목적이 크지만 말이다.

“이번 주? 지난주엔 영화 보러 갔었고 이번엔 친구들하고 공원 가려고. 왜?”

“어! 그래. 그렇게 놀면 되겠네. 난 야구 간다고!”

그래도 물어봐 주는 것에 이제는 양심이 생겼다고 생각했다.      


하루일과가 끝나는 시간. 나는 저녁 식사 그릇을 정리하며 설거지를 시작했다.

“엄마! 큰일 났어! 나 똥 마려워. 어떡해? 아빠 아직 화장실에 있어!”

남편은 뭔가를 먹기만 하면 화장실을 갔다. 장이 안 좋은 거 아니냐고 물었지만 너무 튼튼해 바로 소화가 된다고 우겼다. 그러나 화장실을 가면 기본 30분 이상을 앉아 있다. 이미 상상이 되듯 휴대폰으로 유튜브를 보거나 게임을 했다.

“남편아! 빨리 하고 나와라. 세이 화장실 간단다!”

“아! 새끼! 알았다!”

그렇게 아이는 아빠가 있으면 화장실 눈치를 살펴야 했다. 그래도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 아이가 어릴 적엔 화장실 문제로 자주 다퉜었다. 아이가 일곱 살 때, 그날도 10분 정도 앉아 있는 남편에게 그만하고 나오라고 했었다. 남편이 화를 내며 소리쳤던 말.

“야! 내가 얼마나 있었다고. 참으라 해라! 이제 일곱 살인데 참을성도 있어야지!”

그렇게 남편은 10분을 더 앉아 있다가 나의 성화에 못 이겨 나왔다. 결국 아이는 눈물을 터뜨렸고 눈치를 보며 똥을 쌌다. ‘내가 남편을 이해 못 하는 건가?, 참을성은 아이보다 어른이 더 있는 거 아닌가?’ 아이에게 화장실을 양보하지 않는 남편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물론 자기 위주로 사는 게 익숙한 사람이지만 화장실은 별개여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아이는 화장실을 갈 때마다 아빠의 위치를 살폈고 바로 가지 못할 때는 참을 만큼 참다가 도저히 힘들 때 내게 살짝 얘기를 꺼냈다. 그렇게 매번 다투며 살아온 결과가 오늘에 이른 것. 하는 수 없이 화장실에서 나온 남편이 투덜거리며 아이를 쏘아봤다. 그러자 아이는 아빠의 눈치를 살피며 화장실에 들어갔다. 아이의 위축되는 모습을 보자 욱하는 마음과 함께 다시 남편이 미워졌다.

‘밉상! 밉상! 완전 밉상! 초절정 밉상이다!’     


#책강대학#백일백장#16기#화장실#전쟁#밉상#남편

작가의 이전글 100-30 변덕일까? 우유부단함일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