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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선겸 Apr 04. 2024

100-32 아이의 눈물

하교 후 아이가 집에 들어오며 약간 흥분된 채 나를 불렀다.

“엄마! 나 오늘 진짜 화가 난 일이 있었어!”

“응. 왔어? 왜 무슨 일 있었어?”

“친구가 우유를 쏟았는데 다른 친구들이 빨리 닦으라고 소리쳐서 결국 울었어. 그래서 내가 그 친구들한테 하지 말라고 했더니 나한테 뭐라고 하더라고!”

“그래서, 싸웠어?”

“아니 그건 아닌데, 걔들 말이 잘 안 들려서 내가 계속 ‘뭐라고?’ 물었더니 내 귀가 이상하대. 그래서 우리 엄마가 만들어 준 귀라고 했더니 그럼 너희 엄마가 이상하다고 했어.”

그러면서 아이는 꾹꾹 누른 감정이 북받쳤는지 갑자기 눈물을 터뜨렸다. 이마와 목덜미엔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고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해 내 얼굴에 비비며 안겼다. 

“괜찮아! 세이야 친구들이 말장난하는 거야, 그래서 어떻게 됐어?”

“선생님께 얘기했어. 그래서 그 친구들은 끝나고 교실에 남았어”

“응, 잘했어. 친구들한테 얘기해서 안 되면 선생님께 얘기하는 거야”     


아이는 다투거나 긴장되는 분위기를 싫어했다. 어른들이 대화를 하다 조금만 목소리를 높여도 불안해했다. 어릴 적엔 갑자기 식탁 아래로 귀를 막으며 숨기도 했다. 그렇게 소리에 예민한 아이.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가서도 친구들 사이에서 불편한 분위기가 조성되면 먼저 양보하거나 배려하고 말았다. 어쩌다 친구들에게 상처 입은 말을 듣는 날이면 집에서 오열했다. 그래도 예전에 비해 4학년이 되어서는 제법 선생님께 자신의 불리함을 이야기할 수 있으니 다행이었다. 그러나 남편은 이런 아이를 보면 꼭 한마디 했다.

“남자 새끼가 맨날 우냐? 남자는 우는 게 아니야, 뚝 안 그쳐! 조용해!” 

아이의 감정은 무시한 채 우는 모습이 싫다고 큰소리부터 쳤다. 외모는 아빠를 빼었지만 예민하고 여린 성향은 꼭 나를 닮았다. 아이는 닮지 말았으면 하는 부분을 닮는다고 했던가 피는 못 속인다고 유전자는 어쩔 수 없나 보다. 무서움에 더 크게 우는 아이가 안타까워 남편을 말리면 누굴 닮아서 저러냐며 나더러 아이를 잘못 키웠다고 더 큰소리쳤다. 처음엔 남편을 이해시켜 보고 설명도 해봤지만 전혀 받아들이지 않으니 나도 이제는 당당히 받아쳤다.

“조용해라. 내 닮았다. 나도 아빠가 큰소리치면 더 울었으니깐 입 닫아라!”

나직이 읊조리면 남편은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 한숨만 쉬고 말았다.     


저녁 식사 시간이 한참 지나고 밤 10시가 되었다. 아이가 잠드는 시간. 남편이 방에서 나와 라면을 끓였다. 저녁을 먹고 나면 피곤하다며 바로 잘 거라고 건들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자기 방에 들어가 패드로 영화나 유튜브를 보고는 꼭 이 시간에 나와서 군것질을 시작했다. 

“아빠! 뭐 먹어? 라면 먹어?”

“응! 넌 들어가서 자! 지금 먹으면 살쪄서 안 돼!”

아이는 자신의 방에서 이부자리를 준비하는 엄마를 찾아 불을 껐다. 그리고 엎드려서 꼼짝도 하지 않는 아이. 방문을 닫고 아이 곁에 누웠다. 깜깜한 방안, 느낌이 이상해 아이의 눈을 손으로 닦았다. 

“세이야, 왜 그래? 울어?”

“응, 아빠는 나 자고 나서 먹으면 될 텐데 꼭 이때 먹어. 나도 먹고 싶은데.” 

그렇게 오늘도 아이는 아빠에게 우는 모습을 들키지 않으려고 조용히 눈물을 삼켰다. 속상한 나. 이런 일이 생기면 내 안에 숨겨둔 욱! 이 자동적으로 올라왔다.

‘아주 그냥 남편이 아니라 웬수다. 웬수! 으이그 웬수 덩어리!’     


#책강대학#백일백장#16기#아이#눈물#아빠#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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