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겨울, 강아지랑 놀아주다 손가락이 소파에 부딪혀 힘줄을 다쳤었다. 비록 손가락 한 개였지만 그로 인해 내 몸에 잠재되었던 숨어있는 질병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목, 허리디스크로 인한 신경통, 양쪽 어깨 회전근 염증과 각종 관절염 등 여기저기가 쑤시고 아팠다. 어린이집에서 일을 해 아이들을 수시로 들어 안아야 하고 기저귀를 갈 땐 깁스한 손가락도 움직여야 하니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퇴근해서는 집안일과 내 아이도 챙기니 피로가 배로 쌓였다. 그렇게 한 달을 버텼지만 체력적 한계로 결국 일을 관뒀다. 사실 이 직업도 오래 할 수 없음을 느끼고 있었다. 벌써 그만두고 싶었지만 해마다 원장님이 부탁하니 거절이 힘들어 붙잡혔다.
나는 결혼 후에도 맞벌이를 유지했었다. 그러나 출산하며 3년을 쉬었고 아이가 어린이집 가기만을 기다리다 입소와 동시에 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7년 만에 무직이 되었다. 40대 중반의 체력을 현실적으로 체감하며 정형외과 치료에 집중했다. 그동안 미뤘던 치질수술도 마음먹고 해치워 버렸다. 건강한 예전의 나로 돌아가기 위해 말이다. 그러나 이제는 새살도 빨리 돋지 않는 건지 수술 한 달 후면 완치된다더니 넉 달이 걸렸고 이놈의 관절통은 날씨가 조금만 흐려도 몸이 알아챘다. 그래도 다행인 건 만약을 대비해 작년 가을, 방송대 수시에 사회복지과를 지원해 공부하고 있던 터라 집에서 할 거리는 있었다.
그렇게 4개월이 흘렀고 이왕 쉴 수 있을 때 아이의 학교생활도 신경 쓰고 싶어 나는 학교에서 나오는 안내장에 학부모가 참여할 수 있는 곳이라면 모두 참여하겠다고 응답했다. 그래서 2월 기본교육으로 시작한 ‘재능 나눔 지기’ 연수는 4월 첫 주로 이제 끝이 났고 ‘독서지원단’ 프로그램 연수만 남았다. 일단 공지된 전체 커리큘럼은 1년이긴 하나 세부 계획이 나오지 않은 상황. 2학기엔 사회복지과 실습도 나가야 하니 올해의 계획은 모두 세워진 듯했다. 독서지원단 모집은 초, 중, 고 학부모 20명만 선출한다고 해 사실 포기하고 있었는데 선정되었다는 문자를 받으니 기뻤다. 직장을 관두긴 했지만 그래도 열심히 살고 있다고 누군가에게 칭찬과 응원을 듣고 싶었다. 누구에게 소식을 전할까 하다 저녁을 먹으며 남편에게 이야기했다. 말을 꺼내자마자 돌아온 답변.
“야! 니는 팔자 좋네, 남편 잘 만나서 이것저것 하고 싶은 거 다 하네! 할 일 없나? 맨날 돈 안 되는 것만 골라하고. 그래서 일은 언제 하는데?”
역시 내 남편이다. 내가 무엇을 기대했나, 너무 기쁜 나머지 순간 망각하고 말았다. 함께 산 지도 10년을 넘어가니 이젠 나도 이 정도는 여유 있게 받아칠 수 있다.
“남편아! 마누라가 잘나서 그런 건 아니고? 나중에 나 성공하면 어쩌려고 그러냐? 그대로 갚아줄 게, 기대해라!”
남편의 콧방귀로 이야기는 마무리되었지만 오늘도 나는 남편보다 내가 성공해야 하는 이유를 다시 한번 꼽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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