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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인혁 Jun 05. 2021

Knives Out

칼날보다 날카로운 추리와 생각. 세련된 감각을 더한 현대판 추리 영화


※ 위 글은 지극히 주관적인 감상평입니다영화를 추가적으로 즐기기 위한 감상일 뿐 절대적인 견해가 아님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또한 약간의 스포가 있음을 미리 밝힙니다.  


   

2019년 황금 종려상을 받은 <기생충>으로 대한민국이 열광하였다. 2019년은 상을 받은 많은 영화들이 계급의 갈등을 다룬 영화들이 많았는데, 그러한 기조가 만연하던 시기 말, <나이브스 아웃> 역시 개봉했다. 상기되었던 화두를, ‘칼을 뽑다.’ 위태로운 상황을 뜻하는 의미를 지닌 ‘나이브스 아웃’이라는 말로, 계급에 대한 풍자적요소를 함의한 이 추리영화는, 대중에게 부담 없이 다가간 현대판 우화처럼 느껴졌다. 

사실 <나이브스 아웃>이 꽤나 사회 정치적 성향이 강할 거라곤 사전에 미처 예상치 못했다. 영화는 초반부터 이민자로서의 위치를 대두시킨다. 나아가 씬(scene)이 진행되면서 긴장감이 고조되는 부분마다 끊임없이 부르주아 계급층들로 하여금 사회 전반에 관한 문제를 토론하는 모습을 보인다. 에콰도르, 우루과이, 브라질 등 미국 내에 붉어지는 라틴계 이민자들(이주민들은 우리의 모든 것을 빼앗는다 외치던 트럼프가 생각난다)에 대한 대화, 과세 및 정치적 이슈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대표적이다. 겉으로는 이민자인 마르타를 위하는 척 하지만, 실은 그녀의 진짜 국적조차 알지 못하는 상류층 인물들의 위선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허울 좋은 지적허세 가득한 좌우 세력 간의 토론, 인물 간의 계급적 지위를 180도 전복시켜 메시지를 명확하게 전달하는 엔딩 등. 이 정도면 추리 영화 이전에 계급이란요소를 통해 현대를 살아가는 특권층을 적나라하게 비판하는 우화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단순히 계급적 우화로 보기에는 <나이브스 아웃>은 추리 영화로서의 한 획을 긋는 각본을 구성했다. <나이브스 아웃>의 각본은 ‘범인 찾는 밀실 서스펜스 영화가 특별한 게 있을까?‘라는 관객의 염려를 가볍게 무시한다. 물론 본 영화가 시종일관 스릴 넘치게 전개되는 추리물 형식에 사회 계급적 맥락을 성공적으로 앉혔다는 느낌은 들지만, 그 사회적 함의가 깊이 있었다고는 볼 수 없는 부분도 있기에 추리 영화로서의 부분을 더 부각하게 되는것 같다. 그렇기에 <나이브스 아웃>은 사회 계급적 알레고리로서의 영화이기 이전에, 대중성, 함의성, 구성도를 모두 만족시킨 한 편의 미스터리 추리 영화이며 그 사회적 맥락은 감상한 이가 느꼈다면, 좋은 것이고, 느끼지 못했다면, 그 자체로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초반은 명탐정 코난과 셜록홈스를 접해온 우리에게 익숙한 구도가 제시된다. (다른 여러 영화 소개에서 아가사크리스티에 대한 이야기가 많아 코난과 셜록홈즈로 대체) 대 저택에서 발생한 의문의 살인사건, 왠지 비범한 구석이 있어 보이는 탐정, 거짓말을 하는 다수의 용의자. 당연한 추리물의 요소들과 함께 더 적나라한 허점을 보이는 용의자를 찾아보게된다. 위와 같은 추리물의 기본적인 토대는 탐정과 합심하여 누가 범인인지 살펴보게 되는 것에 큰 의미를 지닌다. 하지만 영화는 기존의 틀을 부숴 버린다. 영화가 보여주는 플래시백*을 따라가면, 우리에게 범인은 마르타였다는 당황스러운 전개가 나타난다. 미스터리에 기반하여 추리극을 이끌어오던 영화는 이를 기점으로 하나의 서스펜스 극으로 급격히 변모한다. 이제 영화의 포인트는 죽어버린 당사자가 마르타를 위해 쓴 자신의 죽음에 대한 설계와 진실을 추적하려는 탐정의 추리능력을 통한 두뇌 싸움이 돼버린다. 그리고 여기에 마르타가 행한 사소한 실수들은 탐정의 각본을 헐겁게 만드는 동시에 영화가 구사하는 서스펜스를 한층 더 입체적으로 만든다. 이 과정에서 관객들은 벌써 범인을 공개하면 어떡할까?하는 우려를 펼치지만, 오히려 영화는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플래시백 :영화 등에서, 장면의 순간적인 전환을 반복하는 수법. 사건의 긴박감, 감정의 고조(高潮), 과거의 회상 등을 나타내는 데에 씀.

  

마르타의 입장에서 서술되는 이야기는, 점점 긴장감이 자자한 일련의 장면들이 이어지던 도중 할런의 유언장이 공개라는 두 번째 전환점을 통해 영화의 구도는 다시 또 바뀌어 버린다. 허술한 범인 마르타와 미지의 인물에게 고용된 탐정 블랑이었던 영화의 구도는 마르타 vs 유산을 노리는 부패한 부르주아들로 초점을 옮겨버린다. 여기에 종잡을 수 없는 랜섬(크리스 에반스 역)이 갑자기 상대적 약세로 보이던 마르타를 도와주면서, 가문을 싫어하는 사고뭉치 재벌 3세와 매력적인 간호인의 입장을 응원하게 된다. 둘의 매력적인 동행은 점점 상황을 곤란하게만 만든다. 증거를 없애기 위해 건물을 폭파시키는 등. 허술하면서 동시에 무모한 둘의 행동은 점차 조여오는 탐정의 수사망에 긴박감을 더해간다.

이처럼 여러 번의 굴곡을 거친 영화는 탐정의 장광설이라는 탐정추리극의 다소 고전적인 형식으로 극을 마무리한다. 말하자면 이색적인 전개로 신선하게 풀어내다 끝내 가장 고전적인 방식으로 마무리시키는 셈이다. 개인적으로 오히려 이런 방식이 추리물이 줄 수 있는 최고의 쾌감을 흐트러뜨리지 않고, 형식의 비틀기와 결말의 짜릿함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고전적인 방식으로 추리물을 풀어나가 범인의 정체를 통해 영화는 마무리 되어가지만, 역설적이게도 영화는 범인 그 자체에 초점을 두는 추리영화 장르의 틀은 여실히 깨버린다. <나이브스 아웃>의 핵심 전개는 범인에 찍혀있지 않다. <나이브스 아웃>의 목표는 관객이 당연하게 생각하는 기존의 틀을 비틀어 버림으로써, 등장인물들의 대결구도를 이리저리 뒤집으며, 추리물이 선사할 수 있는 즐거움을 안겨준다. 다양한 미스터리 속, 해결된 부분과 해결되지 않은 부분 그리고 등장인물들의 불안한 심리와 범행의 알리바이와 증거들을 없애는 박진감들 속에서 영화만의 특별함을 그려낸다. 마지막, 범행 수법을 이야기하는 탐정의 모습에서, <나이브스 아웃>은 사실상 가짜 범인이지만 범인을 공개하는 초반부터 관객에게 범인보다는 사람보다는 동기와 수법에 더 집중하기를 말하고자 하지 않았을까 싶다.    


MY HOUSE MY RULE MY COFFEE라는 극 중 마르타가 든 머그잔의 멘트처럼, 철저히 새로운 감각을 더한, 감독의 노림수가 엿보이는 그런 추리 영화였다. 색다른 추리물을 원한다면 주저하지 않고 보기를 추천한다. 목을 그을 수는 있어도 심장을 찌르지 못한 칼들이 위태롭게 또 긴장감 넘치게 당신의 눈과 생각을 사로잡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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