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복잡한 하루였다.
오늘은 오전근무만 있는 날이다. 이런 날은 지인들과 약속을 잡는다. 오늘도 어김없이 동네언니들과 약속이 있었다. 한 달 전 했던 약속이라 얼마나 들뜬 마음으로 기다렸는지 모른다. 바닷가로 가서 바다뷰를 보며 양식을 먹기로 했기에 따뜻한 햇살을 보며 날씨까지 돕는구나 싶은 마음에 고마움이 절로 생겼다.
고마움도 잠시, 아침부터 기분이 싸했다. 신랑은 '대마'가 나서 일을 쉬게 되었고 아들은 컨디션이 안 좋다며 밥한수저를 뜨지 못했다. 이때부터 기분이 찜찜해지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등교를 하는데 아들이 급히 차를 세워달라 했다. 먹은 거라곤 물밖에 없었는데 물을 모조리 개어냈다. 컨디션이 안 좋으면 조퇴하라 했더니 결국엔 조퇴를 하고 병원에 다녀와 쉬게 되었다. 언니들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약속을 한 주 미루기로 했다.
집에 왔더니 아들은 너무도 곤히 잔다. '이렇게 잘 줄 알았음 약속이라도 지킬걸' 하다가 아들이 먼저란 생각이 가슴을 뚫고 나왔다. 잘했다 싶었다. 지금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죽을 끓여주는 게 전부라 생각하니 찹쌀에 저절로 손이 간다. 찹쌀을 꺼내 씻고 불리고 나니 아이가 잠에서 깨어났다.
오후가 되자 많이 낫다며 배가 고프다고 아우성이다. 얼른 죽을 끓여 대령했더니 배고파서 그런지 말간죽도 맛있단다. 아들은 기력을 찾는 듯했고, 둘째는 알아서 저녁을 차려먹는다. 해준다고 해도 기어코 먹고 싶은 음식을 만들어먹는다. 아이들 저녁이 해결되고 신랑은 볼일 때문에 외출하고 없으니 그제야 나에게 시선이 간다. 그냥 적적하다는 생각과 어지러웠던 마음을 진정시키고 싶어졌다. 무작정 운동화를 신고 나와 뛰기 시작했다.
아프다고 근 한 달을 운동 없이 지내서 그런가, 오랜만에 하는 달리기라 그런가, 왜 그렇게 낯선지... 30분쯤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조금 편안해졌다.
가는 길에 핀 유채꽃이 왠지 모르게 반가웠다. 땀 도나고 잡생각도 사라지니 나오길 잘했단 생각이 든다. 40분이 넘어가니 감사가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기 시작했다. 약속은 미뤄졌지만 아이의 고생스러움이 끝났고, 오랜만에 달리기로 인해 기분이 상쾌해졌다. 게다가 신랑이 사준 치킨으로 저녁을 대신하니 몸도 편하다.
'감사하다고 하니 정말 감사한 일이 더 일어나는 건가? '하는 믿고 싶은 사실 때문에 가슴이 요동쳤다.
내 마음대로 된 게 하나도 없는 하루였지만 그 속에서 감사를 찾을 수 있는 여유가 생겼음에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