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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엄마 Jan 06. 2023

1.

가슴의 피가 마르지 않았다


그러니까, 아이가 불과 24개월 때였다.

창문 하나 없는 그 꽉 막힌 대학병원의 진료실에서 우중충한 얼굴을 한 교수가 운을 뗐다.


"아이는...... 자폐 스펙트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는 울지 않았다. 오히려 여유로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정도는 결과를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이를, 아니, 나를 믿고 있었다.

나의 노력으로 틀림없이 아이를 멀쩡히 성장시킬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현대 의학과 기술로 고치지 못할 병이 어디 있다고, 치료비...그래, 돈은 벌면 그만이지 않는가...!

자폐 스펙트럼 장애라는 긴 이름에서 '장애' 따위는 눈에 보이지도 않았다.

마침 장르 소설 작가로서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히던 시기였다.

열심히 아이를 가르치고 돈도 벌고 치료비를 대어 내 아이를 '정상'아이로 키워 보자.

아무튼 그 날로부터 나의 강행군은 시작되었다.


왕복 두 시간 거리로 차를 운전해 ABA치료를 다니기 시작했다.

ABA치료는 행동을 분석하고 중재하는 치료법인데 자폐아동에게 도움이 되는 치료이다.

그리고 언어 치료도 받기 시작했다.

많은 자폐스펙트럼 아동들처럼 내 아이도 말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교수 피셜, 이 지역에서 상위 1프로로 열심히 치료하는 엄마가 되었다.

나는 집에서도 아이를 책상에 앉혀 놓고 치료실에서 배운 숙제들을 열심히 했다.


그렇게 치료를 시작하고서부더 하루에 네 시간 정도 잤던 것 같다.

남편은 직장에 다니고, 나는 돌봐야 할 아이가 하나 더 있다. 치료 스케줄은 빡빡했고.

틈이 날 때마다 노트북을 붙잡고 눈이 벌개진 채 글을 썼다.


아이가 자폐 진단을 받고서는 처음,

리스트로 따지자면 여덟 번째 출간을 했는데 문제가 생겼다.

내게 내 글이 읽히지 않았다.

내 글 뿐 아니라 다른 글들도 읽을 수가 없었다.

문자가 생각으로 변환되는 뇌 어딘가의 시냅스가 끊겨 버린 느낌이었다.

난독증이 온 것이다.

연재하는 동안 글 읽어주는 프로그램을 통해 귀로 들으며 글을 퇴고했는데, 실수가 잦아 편집자님이 고생을 하셨다.

다행히 출간 성적이 좋아  2년치 이상의 치료비가 통장에 들어왔다. 난독증도 점점 나아져 글을 다시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돈이 생기니 조금 마음의 여유가 생길...리가  없었다.

아이는 말귀를 꽤 알아듣기 시작했지만 자폐의 특징이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천장의 형광등을 멍하니 쳐다보고, 쉴새 없이 문을 여닫았다.

함께 치료를 받는 아이들에 비해 내 아이는 매우 느리게 성장하고 있었다.

그리고 여전히 말을 하지 않았다. 제기랄. 망할.


내 가슴이 아파온 것이 그쯤이었다.

왼쪽 가슴이 땡땡 붓기 시작했다.

젖몸살이 난 것처럼 욱신거리고, 돌아누울 때마다 입에서 억 소리가 났다.

그러나 일과가 너무도 빡빡한 탓에 병원을 찾지 못했다.

나는 가슴에 냉팩을 덧대고 운전을 하고, 가슴을 동여매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암은 아니겠지. 아니, 암이면 어떠랴.

내 자식이... 내 자식이 발달장애인이라는데.

육신은 아이를 낫게 하는 땔감이 되어 태워지면 영광인 것이다.


글을 쓰지 않는 날에도 잠을 자지 못했다.

결국 항생제를 처방받았는데, 잠시 가라앉았던 통증이 며칠 뒤 더 심해졌다.

가슴을 봤는데 빨갛게 붓다 못해 중앙이 푸르딩딩해져 있었다.

아이가 잠든 새벽 나는 알콜로 소독한 바늘로 그곳을 푹 찔렀다.

까맣게 고인 피와 함께 고름이 흘러나왔다.

쓰리고 따가웠지만 조금은 시원했다.


한참 피를 지혈하고 보니 가슴에는 구멍이 뚫려 있었다.

심장에 닿을 만큼 깊은 구멍은 아니지만, 내 엄지손톱 반쯤은 들어갈 만한 구멍이 말이다.

일회용 포비돈 스틱으로 그곳을 소독하고, 분말형 마데카솔을 뿌렸다.

그리고 솜과 거즈를 붙였다.

그날은 타이레놀을 먹고 조금 일찍 잠들었다.


이후 이전과 같은 나날이 반복되었다.

낮에는 치료실 라이딩을 다니고, 밤에는 글을 쓴다.

단지 한 가지 일과가 추가되었다.

구멍난 가슴을 소독하는 것이다.

곪았던 상처가 깊어서, 매일 거즈를 갈아주는데도 계속 진물이 나왔다.

나는 매일 아이를 재운 뒤 포비돈 스틱으로 그곳을 소독하고, 마데카솔을 뿌렸다.

그리고 새 거즈를 붙이고 노트북을 켰다.


상처는 쉬이 마르지 않았다.

나는 알 수 있었다.

결코 내 가슴은 이전의 살결로 되돌아갈수 없다는 것을.

쉽게 딱지조차 지지 않았다.

그 속에서 살은 아주, 아주 느리게 차오른다.

한달이 넘도록 나는 거즈를 갈고 있었다.


이쯤 되면 병원을 찾을만도 했지만, 그리고 연재를 마쳐 시간의 여유가 생겼지만 나는 병원을 찾지 않았다.

의사가 나를 원시인 보듯 볼 것 같았다.

그보다, 어쨌든 살이 차오르고 있지 않는가.

여전히 피가 나고 있지만 나는 분명히 낫고 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아이는 여전히 말을 하지 않았다.

자주 웃었고, 때로는 머리를 흔들었으며,

이유 없이 울며 매달리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아이를 부정했다가, 가끔은 사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불완전한 모습조차 경이롭게 느끼기도 했다.

알 수도 없고, 읽지도 못하는, 그러나 분명 내가 심혈을 다해 빚은 하나뿐인 작품처럼 말이다.

장르는 희극과 비극의 중간쯤이려나.

비극이라 하기에 아이의 존재가 삶의 빛이 되기 시작했으니까.


소독을 시작한지 두 달이 지나서야 가슴의 진물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나는 완전히 상처가 새 살로 덮일 때까지 소독을 계속했다. 그리고 더 이상 진물이 나지 않았다.

가슴에는 뚜렷한 흉터가 남았다.

흉터의 색은 분홍색인데 어째서인지 그것이 별로 흉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오랜 친구처럼 묵직하고 친근하게 느껴진다.


나는 매년 건강 검진을 받는데, 작년에도 유방 엑스레이를 찍었다.

치밀유방이라는 것 외에 소견이 없는 것을 보면 흉터 속은 말끔한 살로 채워진 모양이다.

그럼에도 아주 가끔, 이유 없이 흉터 부위가 찌릿거릴 때가 있다.

어쩌면 늙도록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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