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를 미루기를 미루기
첫 수업 다음 날 오후, 단톡방에 과제가 올라왔다. 이런 사람이 나와서 이렇게 하는 이런 류의 글, 정도의 구상만 수년에 한 번씩 하던 내가 처음으로 쓸 소설은 어떤 주제일까. 긴장하며 메시지를 열었다.
'매일 아침, "만일 내가 다른 아버지를 두었더라면......"으로 시작되는 가정문을 중얼거리는 사람'에 대해 써보자.
세상 모든 이야깃거리 중에 제일 할 말이 많은 주제라니. 운명인가 싶었다.
할 말이 너무 많아서 어떤 걸 골라잡아 어떻게 풀어야 할지 고민이 길었다. 빈 화면 앞에서 한참, 한참 동안 멍을 잡다가 마감 전날에야 손을 움직여 내가 겪은 아버지와, 내가 갖고 싶었던 아버지에 대해 마음대로 써봤다. 내가 겪은 아버지에 대해서는 회상하고 싶지 않은 대목이 많아 불편했고, 내가 갖고 싶은 아버지에 대해서는 허망한 기분이 들어 불편했다.
두 바닥 가득 쓴 글을 읽다가 한 가지의 선택지밖에 없음을 직감했다. 그것을 2페이지 분량의 엽편소설로 옮기기까지는 한 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초고를 완성한 직후 한 번,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는 버스에서 한 번 총 두 번 퇴고해 제출했지만 좋은 글일 리 없다고 생각했다. 이건 그냥 특정한 상황에 처한 나를 상상해 나온 배설물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품고 두 번째 수업에 참석했다.
수강생들의 이름이 한 명 한 명 불렸다. 생각보다 본격적이고 신랄한 피드백을 들으며 긴장한 티를 내지 않으려 입술에 힘을 주었다. 재수강, 재재재수강, 재재재재재재재수강생들은 자신의 글이 읽히는 차례가 오면 다소 움츠러든 어깨로 변명하거나, 자조하거나, 혹은 겸허하게 받아들였다. 그 모습이 익숙하고도 초연해 보였다.
높고 부드러워서 더 힘이 느껴지는 선생님의 목소리가 내 이름을 부른 것은 맨 마지막 순서였다.
"경주님도 잘 쓰시네요."
첫 마디가 칭찬이었는데도 외려 긴장감이 훅 올라왔다. 읽어온 원고에 첨삭 표시가 하나도 없다는 말이 뒤를 이었다.
첫 문장을 소리 내어 읽고 오늘 수업에서 다룬 내용과 맞닿은 부분을 짚어주셨다. 소설의 대사는 가장 평범하게 써야 한다고, 특정한 상황을 풀어서 쓰면 특수한 불행으로 읽히기 때문에 보편적인 대사로 써야 독자도 자신의 불행으로 읽어 공감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감정이 들어가지 않은 첫 문장으로 시작해 독자들이 정보로 받아들이지 않아 주의 집중이 잘 된다고 했다. 그를 향한 원망과 미움과 바람과 바람을 바라므로 인해 갖는 죄책감 등을 요란하게 뒤섞은 시작에서 감정이 느껴지지 않아 좋다니 역설적으로 들렸다. 그때부터 긴장이 풀리기 시작했다.
이어지는 긴 대사가 정말 좋다며 소리 내어 읽어주셨다. 강의실 안에 울려 퍼지는 선생님의 목소리가 내가 쓴 대사를 읊고 있다는 것, 열댓 명의 사람들이 그걸 함께 듣고 있다는 것이 도통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머리 바로 위에서 돌아가는 히터 소리와 함께 잠깐 흐려지는 정신을 현실로 끌어온 것은 칭찬... 세례였다.
여기까지만 읽었는데 선수구나 했어요. 최근 제대로 겪은 마음고생에 대한 보상일까. 지금 당장 공모전을 준비하시면서 장편 단편 다 쓰셔도 괜찮을 것 같아요. 아니면 신규 수강생을 향한 선생님의 영업 방식일까. 엄청나게 칭찬해 주신 다음 점차 피드백에 강도를 높여서 첫 시간의 칭찬을 못 잊고 어깨를 움츠린 재재재재재재재수강생들이 늘어나는 건 아닐까. 문장을 짚어드리는 게 무의미할 정도로 거의 모든 문장이 퇴고 수준에 가까워요. 이 정도는...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정말 내 글에 대해 이야기하고 계시는 게 맞나요.
그러나 가장 좋았던 것은 칭찬... 세례보다는, 곳곳에 넣어둔 장치를 단어 하나 빼놓지 않고 짚어주신 점이었다. 3단계로 점진시킨 부분, 아버지와 아빠로 호칭을 달리 한 부분, 자기 통제적인 주인공이 나름대로 큰 일탈을 한 마지막 부분까지- 어떤 의미로 읽혔는지 말씀하시는 족족 의도한 그대로를 적중했다. 이게 정말 이렇게 읽히는구나 신기한 한편 안심이 되었다. 대부분 섬세하고 부드럽지만 때로는 단호하게 톺아내며 안에 들어 있는 티끌만 한 불씨라도 찾아 주시려는 모습에서 소설을 얼마나 사랑하는 분인지가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처음이 이 사람이라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는 머리를 스치는 아무것의 처음을 떠올려보면 실감할 수 있다.
계간지 두 곳의 공모 마감이 5월이니 빠릿하게 준비해 보는 게 좋겠다는 말씀을 끝으로, 정규 시간이 한참 초과된 수업이 끝났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버스정류장까지 걸어가는 동안 숨도 함부로 쉬지 않았다. 버스에 타고 나서야 참아왔던 숨을 맘껏 쉴 수 있었다. 가슴이 간지러워 튀어나오려는 웃음을 참아야 했지만, 메모해 둔 피드백을 읽고 있자니 쉽지 않았다. 그래도 그걸 닫아버릴 수는 없었다. 이따금 고개를 들어 창밖의 밤을 건너다보며 직감했다.
이런 게 내가 쓴 글을 남이 읽어주는 맛이구나. 이걸 알아버린 이상, 다시는 그 전으로 돌아갈 수 없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