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를 미루기를 미루기
검색 기록, 방문 기록, 심지어는 육성으로 떠든 소리까지 잡아채어 반영한다는 괴담이 날이 갈수록 신빙성을 더하는 알고리즘.
알고리즘이 그 영상을 소개해 준 것은 한참 회사 생활이 괴로워 같은 처지의 직장인 브이로그, 퇴사 브이로그를 몇 시간씩 찾아보던 시기였다. 휴직 중 독서와 영어 공부와 요가와 글쓰기 루틴을 착실히 지켜가는 그의 영상은 들여다보면 마음이 편안해졌고, 취향에 맞는 책도 자주 건질 수 있어 좋았다. 언젠가부터 영상의 배경은 집-도서관-요가학원에서 반경을 넓혀 동네를 벗어난 카페, 그리고 마침내 그곳까지 도달했다.
일주일에 한 번, 그는 운전을 하고 나가야 하는 동네에서 소설 쓰기 수업을 들었다. 수업이 있는 날에는 근처의 조용한 카페에 먼저 가 다른 수강생들이 쓴 글이나 책을 읽고, 수업이 없는 날에는 밤마다 과제를 위해 머리를 싸맸다. 마감 직전 하루 종일 책상 앞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는 영상 아래쪽에 붙은 자막은 괴로움을 말했지만 솔직히 그는, 즐거워 보였다.
저 안 깊숙이서 잊고 있던 것, 하지만 실체를 분명히 알고 있는 것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나도 저걸 원했던 적이 있었는데, 아니 어쩌면 지금도, 아니 어쩌면 쭉, 내내-
그가 듣는 수업이 무엇인지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선생님의 저서를 대출해 읽는 것까지 영상에 나왔기 때문이다. 검색하며 너무 집요한가? 의문이 머리를 잠깐 스쳤지만 내 취향의 책을 읽고 내 취향의 카페에 다니며 내가 하고 싶던 일-휴직 혹은 퇴사와 글쓰기-을 차근차근 해내는 이에게 많은 영감과 에너지를 주는 수업을 알고 있는데, 그 외의 선택지를 찾는 건 멍청하게 느껴졌다. 강의 페이지를 북마크에 넣어두고 또 한참을 묵힌 것은 여유가 없다는 핑계 때문이었다. 당시의 나는 누구보다 더 글쓰기가 필요함과 동시에, 누구보다 더 글쓰기에 신경 쓸 정신머리가 없었다. 눈앞에 닥친 것을 버티고 욱여넣고 참아내는 일만으로도 힘에 부쳤다.
그렇게 퇴사할 때까지, 시기가 맞물린 동생의 큰 수술을 함께 치러낼 때까지, 병원도 강의실도 신촌이니 병원에서 다니면 되지 생각하던 즈음 중환자실로 옮긴 동생이 다시 호전되어 일반 병실로 돌아올 때까지, 미루기만 했던 수강권 결제는 결국 퇴원 후에야 진행시킬 수 있었다.
첫 수업의 공기를 기억한다. 막 퇴원한 동생을 두고 외출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시기였다. 미리 읽어 오라는 책을 사러 광화문 교보문고까지 나갔다. 어차피 사야 하는 책은 정해져 있으니 삼십 분 남짓 다른 책들을 구경하다 날을 잡고 다시 와야겠다고 생각했고, 필요한 책 말고는 딱 한 권만 더 사자는 결심을 지키려 고심하다 고른 책은 「스토너」, 버스를 타고 신촌으로 넘어갔고, 신촌오거리 정거장 앞 스타벅스에서 친구가 입원 기간 동안 선물해 준 기프티콘으로 라테를 픽업해 2층 자리에 앉았고, 나로서는 큰 의미가 있는 날에 친구의 선물과 함께하는 것이 좋아 인증사진을 찍었고, 과제로 선정된 단편 한 꼭지를 탐독했고, 시간 맞춰 일어나 3월- 초봄 저녁의 쌀쌀한 공기를 즐기며 십 분 정도 걸었다.
비탈진 오르막길이 시작되는 첫 건물. 허름한 외관에 약간의 불안함을 느끼며 4층으로 올라가면 맞아주는 따뜻한 우드톤의 책장들. 유리문을 열고 강의실로 들어섰을 때, 히터를 튼 지 얼마 되지 않아 텁텁한 공기. 돌아보는 사람들의 호기심이 어린 시선들.
수업 시작에 앞서 돌아가며 자기소개를 했다. 나와 몇 명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사람이 재수강생이었다. 재재재수강, 재재재재재재재수강생들도 있었다. 수업 진행에 방해가 될 법한, 그래서 평소라면 속으로 못마땅하게 여길 법한 질문들은 주로 재재재수강, 재재재재재재재수강생들이 했는데 평소와는 달리 못마땅하지도 밉지도 않았다. 사랑스럽다고, 그들과 나이 차이가 많이 나지 않을 엄마도 데려오고 싶다고 생각했다.
언젠가는 글을 쓰는 걸 직업으로 삼으며 살겠지, 당연하게 생각만 하고 노력은 1도 하지 않다가 회사 생활에 치여 잃어버린 나를 찾고 싶어 왔다는 소개를 했다. 유튜브를 보고 알게 됐다는 말은 이미 채널만 남기고 영상은 다 지운 그에게 어떤 이유가 있겠지, 생각하며 참았다. 영상을 내리기 몇 달 전 그는 복직해 바쁘게 두 집 살림을 한다는 근황을 전했었다. 지금은 어떻게 지낼까. 여전히 두 집을 바쁘게 오가며 회사 생활의 무게를 버티고 있을까. 글은, 여전히 쓰고 있을까. 선생님의 온화한 얼굴을 바라보며, 언젠가 같은 얼굴을 보고 위로와 따뜻함, 저 아래서 번뜩이는 것들을 느꼈을 그에게 응원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