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를 다시 쓰고 싶게 만든 마음

글쓰기를 미루기를 미루기

by 윤경주




초등학생 때부터 막연히, 언젠가 나는 글 쓰는 걸 직업으로 삼겠구나 생각했다.

전교생이 백 명도 안 되는 시골 학교 운동장에서 조회를 할 때면 한 번도 빠짐없이 불려 나가 받은 글짓기 대회 상장이 상자를 채우다 못해 넘칠 때부터였을까. 싸운 다음 날 아침이면 필통에 몰래 넣어준 편지의 깊이가 어린 내가 보기에도 남다른 엄마와 나란히 우수 독후감 대통령 표창을 받으러 수업도 째고 군 소재지 도서관에 나갔을 때였을까. 시골 마을 중에서도 첩첩산중에 있어 점심 먹고 난 다음부터 저녁 먹기 전까지는 아무리 껐다 켜고 때려보아도 삐- 소리만 나는 텔레비전을 뒤로하고 집 안에서 놀거리라곤 학교에서 빌려온 책이나 학습지를 구독하고 받은 위인전집뿐이던 그때, 해 잘 들어오는 안방에 앉아 할아버지가 태우시는 매콤한 담배 냄새를 맡으며 몇 시간이고 읽는 즐거움을 깨우쳐가던 시간들 중 어느 한순간이었을까.

언제가 시작인지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술에 취한 할아버지가 무릎에 앉혀두고 커서 뭐가 되고 싶냐고 물으실 때면 그런 건 돈을 못 버니 선생님이나 공무원 하라는 면박을 들을 것을 알면서도 매번 "작가요!" 대답했다.


생각해 보면 얼마간 유효한 꿈이었다.


일 년에 두어 번 열리는 교내 백일장에서는 학생들에게 그림과 글 중 하나를 골라 의무적으로 작품 활동을 하게 시켰다. 그림이나 글쓰기를 정식으로 배운 애들은 극소수였을 텐데, 작품성과는 관계없이 시킨다고 몇 시간 만에 뚝딱 그걸 완성해 낸다는 게 재밌었다. 그때 제출한 글을 읽고 싹수를 알아보신 국어 선생님 덕분에 몇 개의 교외 백일장에 나갔지만 아직까지 기억날 정도로 대단한 성적이랄 건 없었다. 그래도 아직 글 쓰고 읽는 데에 흥미도 소질도 남아 있다는 걸 깨닫고 나니,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해 다시 태어나지 않고서야 가망이 없을 것 같은 수학 공부에 매달리지 않아도 되는 다른 길로 눈을 돌릴 수 있었다.

집에서 버스를 타면 사십 분 정도 걸리는 예술고등학교 영화과에 입학했다. 입시 시험장에서 무슨 주제로 어떤 내용의 글을 써냈는지는 입학하기도 전에 싹 까먹어 버렸다. 영화에는 쥐뿔 관심도 없으면서 '연출'이라는 글자에 꽂혀 들어간 학교에 잘 적응할 리가 없었다. 재학 중에 영화라는 장르를 사랑하게는 되었지만, 이제 막 깨달은 풋내 나는 감정을 가지고 버티기에는 등록금도 열등감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영화과는 대학 입시 컷이 높아 중학생 때보다 수학 공부를 더 빡세게 해야 했고, 정말 영화를 사랑해 입학한 동기들의 반짝이는 눈을 보면 내 시작은 너무 초라해 보였다. 그러던 중 보충수업에서 마주친 문예창작과 학생들을 보고서야 내가 잘못된 선택을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한 학년을 꼬박 마치고 중학교 친구들이 득시글한 인문계 고등학교로 전학을 가버렸다.


고3 때 딱 한 번 나간 대학교 주최 백일장에서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돌아온 이후부터는 글 쓰는 걸 직업으로 삼기 위해 노력한 적이 없었다. 살아지는 대로 직업을 가지고 버티다 ‘다 소진되었다’는 신호가 올 때까지 버티는 일이 반복되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니 새삼스럽지도 절망스럽지도 않았다. 예고에 다닐 때 나 빼고 다 꿈을 품은 것 같고 나 빼고 다 반짝반짝 빛나는 것 같던 동기와 선배들 중 한 번이라도 티비나 스크린에 나온 사람은 한 손으로 꼽을 수 있다.

이제는 뭐라도 써봐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은 정작 일에 찌들어 나를 잃고 난 뒤였다. 의지도 에너지도 모두 소진해 무엇을 되찾아야 하는지조차 갈피를 잡지 못하던 때, 나에게 유일하게 직업으로 명명할 수 있는 꿈이 있었다는 것이 기억났다.


내가 하고 싶던 것. 나에게 어울렸던 것.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 있을 수 있고, 하면서 나답다고 느꼈던 것. 나를 알고 있는 모두가 그렇게 말해주었던 것.

그걸 찾고 싶다는 마음과, 막 지나온 시간 동안 속에 가득 채운 내가 아닌 것들을 토해내고 싶은 마음.

나를 다시 쓰고 싶게 만든 것은 그런 마음들이었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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