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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색 자전거 Sep 18. 2023

3. 짝사랑은 한 편의 소설 짓기 (1)

신인류 《작가미정》/ 인디한 가사 분석

《작가미정》이 수록된 「멜로가 체질 OST Part 2」 앨범 표지


신인류 - 작가미정
천천히 오가는 대화 속에 남는 단어는 몇 개일까요
구석진 자릴 앉아 커피를 마셔 그대의 일부 식지 않도록
더 이상 내 얘기가 아니었던 황급히 쓰는 결말 끝에서
빼먹은 구절이 또 생각이 나면 그 다정을 어찌 지나칠까요
담담했던 저 하늘 끝으로 내게 왠지 비가 내릴 것 같죠
그대 노곤히 풀린 몸에 맡겨 이내 슬프진 않겠구나
기울인 새벽의 모습 속에 서두른 단어 몇 개일까요
그곳에 존재했던 사랑의 말로 그대의 등장 해치지 않도록
더 이상 내 얘기가 아니었던 모두가 있는 대화 속에서
명백한 결말이 또 내려진다면 그 이유가 어찌 중요할까요
담담했던 저 하늘 끝으로 내게 왠지 비가 내릴 것 같죠
그대 노곤히 풀린 몸에 맡겨 이내 슬프진 않겠구나 


《작가미정》은 '멜로가 체질'이라는 드라마에 수록된 OST 중 하나이다. 그래서 본 작품을 정확히 해석해내기 위해서는 거의 필수적으로 해당 드라마를 감상했어야 하겠다. 하지만 나는 사실 저 드라마를 보지 못했다. 따라서 이 분석은 어디까지나 인디하다.


결론적으로, 나는 《작가미정》을 짝사랑에 관한 작품으로 분석했다. 사실 '짝사랑'은 예술 작품에 있어서 희소하지는 않은 주제이다. 단순하게 그 이유를 살펴보면, 이 주제를 통해 사랑의 기쁨과 이별의 슬픔을 한 사람의 고뇌 안에서 동시에 담아낼 수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본 작품은, 어쩌면 흔한 이 주제를 전혀 새로운 관점에서 풀어낸다.


누군가를 짝사랑하는 화자를 이 작품이 어떻게 표현했는지, 그 관점에 대해 살펴보며 글을 시작하겠다.




1. 짝사랑은 한 편의 소설 짓기


짝사랑에 돌입하게 되면, 어느새 상대와 자신이 함께하는 미래를 그리고 있지 않던가? 이러한 행동은 마치 소설을 쓰는 것과 같다. 이 표현 자체는 짝사랑에 빠진 이를 놀리는 의도로 많이 쓰이지만, 그 의미를 벗어나도 짝사랑은 소설을 쓰는 것과 정말 비슷하다. 어떤 측면에서 소설과 비슷할까?


짝사랑에 빠진 사람을 떠올리자. 그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나는 상대의 의도를 짐작하려 애쓰는 모습이 떠오른다. 짐작하려 얘쓰는 것을 넘어 아예 상대의 의도를 읽은 것처럼 행동하는 경우도 있다.


'왜 굳이 허리를 굽혀 내 지우개를 주워준 거지? 쟤도 나를 좋아하나?'

'왜 내 비공개 계정에 팔로우 신청을 했지? 쟤도 내게 관심이 있구나!'

'카톡을 읽고 왜 답을 매번 늦게 하지? 어떤 답을 보낼지 신중하게 고민하나보네. 나와의 관계를 소중하게 생각하는구나!'


물론 익히 알려진대로, 그것들은 모두 착각이고 확증편향의 일종이다. 논리적이고 객관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그렇다. 자신이 보낸 카톡에 상대가 칼답을 하든, 읽고 한참 후에 답장하든 내려질 결론은 '상대가 나를 좋아하나봐'가 될 것임을 상기하면 자연스럽다. ¹


하지만 이번 글에서는, 그의 짐작이 객관적으로 논리적인지 판단하는 것에서 벗어나자. 대신 그런 그의 짐작이 나타나기까지 그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 관찰해보면, 결론적으로 그것은 모두 '의미 부여'와 연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짝사랑하는 상대가 한 행위의 의도를 추측하는 것과, 상대의 행위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연관되어 있다. 이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자.


'의도'가 상대의 것이라면 '의미'는 나의 것이다. 나는 상대가 내게 보여준 자그마한 호의에라도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한다. 왜? 내가 짝사랑하는 상대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의미를 부여할만한 근거가 없다. 하지만 괜찮다. 의미 부여에 있어 근거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의미는 그렇게 형성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의미는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하는 마음에서 이미 부여되었다. 다만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싶어하는 인간의 욕구에 의해, 그 근거는 자연스럽게 내 생각으로 채워지는 것이다. 그 근거는 바로 상대의 의도에 대한 해석이다. ²


짝사랑을 채우는 것은 이러한 '의미를 위한 가설의 더미'인 것이다. 의미를 위한 가설의 더미, 우리는 비슷한 것을 본 적 있다. 바로 소설이다. ³ 따라서 행위로써의 짝사랑은 소설 집필로, 결실로써의 짝사랑은 소설로 은유될 수 있다. 그리고 이에 따라 짝사랑의 주체인 화자는 작가로 은유된다.


드디어 작품 분석을 위한 첫 단추를 꿰었다. 이제 작품으로 돌아가자. 작품의 첫 부분에서는 화자에 관한 직접적인 묘사를 통해, 앞서 이야기한 짝사랑의 은유를 작품 전체의 모티프로 구조화하고 있다.


천천히 오가는 대화 속에 남는 단어는 몇 개일까요 
구석진 자릴 앉아 커피를 마셔 그대의 일부 식지 않도록 


화자는 상대와 대화를 나눈다. 그 대화가 끝난 후에는 구석진 자리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그 단어와, 그 단어들 안에 담긴 의미를 생각해내고 있다. 그 단어와 의미는 그대의 일부와 다름 없기 때문이고, 그것을 식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모든 단어를 기억해내고, 의미를 부여할 수는 없다. 그래서 화자는 생각한다. 이 대화 속에서 과연 몇 개의 단어나 남길 수 있을까? 이제 작품에서 화자의 안타까움을 느낄 수 있다.


이것이 반복적으로 진행되어 자신과 상대의 이야기를 짓는 것, 이것을 짝사랑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제 짝사랑이 종결을 요구 받은 이후의 모습을 작품에서 어떻게 표현했는지에 대해서는 두 번째 글에서 이야기할 것이다. 다만 첫 번째 글이 끝나기 전에 나는 이런 말을 덧붙이고 싶다.


짝사랑이 소설과 같다는 은유는, 짝사랑 또한 현실을 마주한 시점에 붕괴가 시작된다는 점에서 더욱 적절하다.




미주


¹ 물론 반대인 사람도 있다.

² 이것이 그릇되거나 비합리적이라는 말은 당연히 아니다. 모든 행위에 근거가 선행하는가? 그렇지 않다. 혹자는 "인간의 모든 행위에는 근거가 필요하다"라 주장할 수 있다. 그럴 수도. 하지만 무조건 모든 행위에 근거가 선행하는 것은 아니다. (참고로 나는 '행동에 대해 피드백하고 다음 번에 더 잘하기 위해서는 근거가 필요하다' 정도의 의견이다.)

³ 가설의 더미라는 표현에서 조금의 이질감을 느길 수 있다. 소설은 귀하고 아름다운 어떤 것인데, 가설의 더미라고 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인지 너무 폄하되는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러나 미적 특성과 진실성은 구분되어야 한다. 소설은 아름답지만, 진실만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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