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닻을 내리고
내 마음에는 닻이 하나 있다.
그것은 보통 나라는 무게중심을 맞춰주는 추에 가깝다.
바람이 불어도 비가 불어도 눈이 내려도 나는 여기에 있다는 존재의 무게감.
요즘은 아무 일도 없다.
놀랍도록 즐겁지도 기쁘지도 슬프지도 괴롭지도 않다.
닻을 내린 정박한 배처럼 평온하다. 바람은 불지 않는 듯이 선선하고 하늘도 바다도 맑다.
물론 늘 평안하지만은 않았다.
닻은 내 바닥을 온통 긁어내 너덜너덜해지도록 만들었으며,
바닥에 바닥이 있다는 것을, 지구 안에는 핵이 있고 그 핵 안에 핵이 있음을, 피가 쏟아져내리는 듯한 느낌을 느끼게 해 주었다.
때로는 바닷속으로 던져졌고 때로는 건져졌다.
때로는 비릿했고 숨 막혔고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바다는 컴컴했고 해일이 밀려왔다. 폭풍우에 늘 젖은 마음으로 눅눅하게 살아가기도 했다.
닻은 내가 땅에 발붙이며 살 수 있게 도와줬던 걸까
아니면 바닥에 끌려다녀 만신창이가 되도록 방치되도록 한몫했던 걸까.
여하튼 닻은 여전히 내 마음 안에 있다.
이제는 닻을 내리는 법도, 닻을 올리는 법도 알게 되었다.
나는 살아가는 법을 조금은 배운 것일지도 모른다.
이제 슬슬 비바람이 불지도 모른다.
닻을 내리지 않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