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하지 말자
석사 과정 때만 하더라도 소논문은 일주일이면 쓸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퀄리티가 그렇게 좋지는 않았겠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말은 되게 썼던 것 같다. 그런데 한 삼사 년을 쉬어서인지, 책을 봐도 도통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나마 남들이 다 한다는 석사 논문을 요약해 학술 논문으로 내는 것은 또 아직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과제는 해야했고, 결국 나는 숨겨두었던 비장의 무기(?)인 석사 논문을 꺼내들기로 했다.
사실 꺼내들었다뿐이지, 석사논문의 이론적 배경을 차용해 다른 것을 재해석하는 것이라 처음부터 해야하는 공정이 많았다. 그대로 요약하자니 미진한 부분도 많았다. 한때 오탈자를 봐주는 사람이 없어 정말 집에서 혼자 울었던 적이 많았는데, 기본적인 것에서도 오탈자가 나서 괜스레 선배나 동기가 미워지기도 했었다.
결국 나는 새 책을 꺼내들고 이론적 배경부터 마무리를 했다. 그렇게 클라우드에 저장을 했다. 나는 Dropbox를 쓴다. 다른 데서 접근성이 용이해서였다. 게다가 집에 있는 것과 사무실에 있는 것이 연동이 되기도 해서 편하기도 했다. 이렇게 쓴 과제가 몇 편이나 있는지라 클라우드 오류에 대해서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오늘 아침이었다. 일어나서 소논문 양식을 조금 편하게 작성한 뒤에 이어 붙이겠다고 작정을 하고 파일을 열었는데, 어제 꼬박 정리했던 이론적 배경이 단 한 글자도 남아있지 않은 것이다. 나는 집에서 몇 번이고 파일을 열었다 닫았다. 하지만 나아지는 것은 없었다. 정말 나는, 소설적으로 이런 표현을 정말로 싫어하지만, 정말 슬펐다라는 말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오늘 종일 얼마나 우울했는지 모르겠다. 커피를 마시고 싶은데 커피는 다 떨어졌고, 꿈은 이상한 것을 꿔서 피곤하고, 또 세상이 좀 잘 풀리는가 싶더니 절교를 하게 되고, 그러다가 논문 이론적 배경까지 날려먹은 탓에 아예 포기 상태에 있었다. 그 상태로 생계를 위해 학원 강사 계약은 또 하러 갔다. (강사 계약과 관련해서는 나중에 기회가 있으면 아마 말을 하지 않을까 싶다.)
그럼에도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했다. 강사 계약이 잘 돼서인가? 친한 언니에게 계약에 대해 말했더니 이제 다 잘 풀릴 거라고 했다. 그렇게 사무실을 와서 노트북을 켜고, 클라우드를 열었다. '충돌 파일'이라는 이름으로 저장된 파일에는 무려! 어제 내내 정리한 그 이론적 배경이 있었다.
학사때는 메일로 하나하나 정리를 해서 보내두었는데, 석사부터는 어려워졌다. 잦은 수정과 추가 때문이었다. 때때로 열어보면 파일 이름이 겹치다보니 뒤에 날짜가 붙고 순번이 붙고 알파벳이 붙기도 했다. 그게 싫어서 클라우드 저장을 한 것이었는데 말끔히 날아갈 뻔 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다시 귀찮은 것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무조건 메일로 보내기. 메일로 귀찮아 죽더라도 보내야만 한다. 이대로 한 번만 더 날렸다가는 제 명에 못 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