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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임경 Dec 19. 2023

붓과 귀

글Ego 관성을 넘는 글쓰기 4기 : 꿈

7월 17일,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여름에 나는 가로수에 걸린 태극기를 따라 다시 서울로 왔다. 내가 가지고 온 것은 전세 보증금과 옷, 그리고 책 두 권이 전부였다. 혼자 살기에 넓었던 집은 모든 것이 옵션이라 가지고 나올 것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었다. 혼자 살면서 이것저것 챙겨 살지 않았다고 생각은 했지만, 생각보다도 심했다는 건 짐을 빼면서 알게 되었다.


처음부터 집을 잘 구하지는 못했다. 가장 먼저 본 집은 버스 정류장에 내려서 이십 분을 걸어가야 겨우 입구가 나오는 데다 가로등이 군데군데 고장 나 있었고, 또 다른 집은 교통과 편의 시설이 갖춰졌으나 방이며 욕실이 너무 좁았다. 잠시 기분전환을 하려고 온 거라서 며칠 머물기에 찜질방은 너무 시끄러웠고, 호텔은 지나치게 호화스러웠다. 고민 끝에 나는 대학시절 지내던 하숙집으로 찾아갔다. 다행히 여름방학 중이라 빈 방이 있었다.


상담사였던 나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왔기에 한 달 정도는 거실에서 다른 사람과 마주치는 게 그리 나쁘지 않을 거라 생각했으나, 쉬운 일이 아님을 단 일주일 만에 알게 되었다. 복도가 있어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많았다. 한 달은 채우고 나오는 것이 좋았겠으나, 덜덜거리며 밤 내내 돌아가는 세탁기 소리나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술을 마시며 웃고 떠드는 소리가 벽 하나를 두고 들린다는 것은 견디기 어려운 일이었다. 사실 그들의 소리가 들리는 것도 힘들었지만, 내 소리가 들릴까 싶은 걱정이 더 컸다.


그렇다고 내가 방에서 특별한 일을 하는 건 아니었다. 맨발이 장판에 닿아 걸을 때나 문을 여닫을 때 나는 소리가 전부였다. 하지만 무심결에 내 나쁜 잠버릇이나 맥주 한 캔을 마시며 야구를 보다가 참지 못해 짧게나마 내뱉는 욕설을 누가 들을까 조심스러웠다.


그래서 나는 한 달짜리 방을 내어준 아주머니에게 사정을 말하고 종로로 이사했다. 방은 그럭저럭 괜찮았고, 바로 아래에는 화방이 있었다. 서울로 와서 중고 서점에서 산 화첩을 몇 날 며칠 들여다보면서 그림을 그려볼까 싶었다.


화방은 단골들의 사랑방과 다름없었다. 나는 그 사랑방의 새 얼굴이 된 지 두 달이 되지 않았다. 문을 열고 말없이 꾸벅 인사를 하고 들어가는 나를 보면, 이곳의 어르신들은 나를 정 선생이라고 부르며 인사를 건넸다. 나는 이전에 순천에서 상담사 일을 할 때와 다름없이 여기에서도 정 선생으로 불리는 것이 썩 달갑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정 선생’이라는 말은 같다고 해도 느낌은 분명 달라서 나는 그저 웃으면서 어르신들에게 한 번 더 인사를 했다.


“정 선생이 부탁한 붓이 오늘 왔는데, 보자. 여기에 없나? 정 선생 붓 본 사람? 여기 있구먼.”


나는 붓을 받고 수제 제작이라는 먹을 주문했다. 그러자 사장님은 나에게 벼루나 연적은 함께 사지 않겠냐고 물었다. 사람들은 보통 붓과 먹, 벼루, 연적에 화선지까지 모두 한 번에 산다고 설명해 주면서 말이다. 하지만 붓도 도통 익숙해지지 않던 초보인 나에게는, 한꺼번에 산다는 것이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아니에요. 주문해야 올 때까지라도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이 조금 더 있을 것 같아서요. 붓하고 친해질 시간도 필요할 것 같아요.”


꾸벅 인사를 하고 다시 계단을 올라 방으로 갔다. 침대 옆의 작은 협탁에 꽂아둔 화첩을 꺼내서 펼쳐놓고 물감도 먹도 없이 붓만 들고 화첩의 아무 그림 위를 덧대어 따라 그렸다. 어디에 가서 배우면 좋았겠으나, 아직 사람을 만나는 것은 부담스러웠다.


종로에 온 뒤로 잠이 부쩍 늘어 늦장을 피우고 있는데, 생각보다 일찍 먹이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나는 아직 먹을 사용하기는 이른 것 같았지만 방에 혼자 있으면서 누울 때나, 앉을 때나, 그리고 서있을 때나 허공도 서슴지 않고 몇 백 번이고 붓과 손가락으로 난을 쳤었기에 조금은 자신이 있었다. 그래서 가벼운 마음으로 먹을 받으러 내려갈 수 있었다.


“이쪽은 정규진 선생, 상담사였대. 지금은 쉬러 왔고 우리 화방 위층에 있네.”

“안녕하세요?”


화방에서는 손이 닿을 거리에 있으면 악수를 건네기도 하고, 멀리 있다 싶으면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반겨 주기도 했다. 사장님이 나를 부른 이유도 여기에 있으니, 나는 성실하게 내 역할을 하면 됐다. 인사를 하고 고개를 드니 생각보다 젊은-이라고 해봤자 내 나이 정도 된-남자가 악수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누가 요즘도 먹을 주문하시나 했는데 의외의 분이 해주셨네요. 이지수입니다.”


그간 일을 하면서 지수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들을 종종 보아 온 덕에 남자의 이름이 낯설거나 이상하고, 또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남자는 자신의 이름을 듣고 웃거나 놀라지 않는 나를 오히려 이상하게 보는 듯했다. 흰 얼굴에 유독 짙은 눈썹이 씰룩거리는 게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제 이름 듣고 아무렇지도 않으세요? 보통 한 마디씩 하던데.”

“종종 봤거든요. 이름이 뭐 특이할 게 있나요.”

“아~ 상담일 하셨다고 했죠. 지수라는 이름의 사람은 잘났나요? 당연히 잘났겠지만요?”


그는 할아버지가 먹을 만들면 자신은 그것을 배달한다고 하며, 할아버지 손에서 자라서 놓여나지 못하고 있다는 소소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한참 자신의 말을 하다 무엇인가 깨달았는지, 아! 하는 탄식에 몇 초 나를 가만히 보더니 “근데 먹은 왜 필요하세요?”라고 물었다.


그는 이제야 내가 궁금해진 모양이었다. 정확히는 먹의 용도였지만 말이다.


“그림을 그려볼까 하거든요.”

“네? 글씨도 아니고 그림이요?”

“네. 왜 그러세요?”

“그림을 그릴 거면 유화나 수채화가 좋지 않나요? 난이라도 치시게요?”

“네.”


그의 말이 맞았다. 당장 이 화방에서 걸어서 두세 골목만 지나도 성인 서양화 취미 미술반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지수는 짝다리를 짚은 채로 오른발로 바닥을 툭툭 차며 바닥과 나를 번갈아 보더니, “할아버지께서 좋아하시겠네요. 필요한 것 있으면 이쪽으로 직접 연락 주세요. 그림을 그려보겠다는데 화방 올 때 겸사겸사 커피라도 한 잔 사서 올게요.”라고 말하며 그의 할아버지 이름과 연락처가 적힌 명함에 또 다른 번호 열세 자리를 써서 나에게 주었다.


생각보다 싱거운 그의 반응에 나는 웃음이 나왔다. 나는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며 고맙다고 인사했다. ‘고맙’는 작게, ‘습니다’는 크게 나오긴 했지만 말이다. 그는 나의 이상한 인사에 어깨를 으쓱이더니 화방에서 장기를 두고 있는 사랑방 터줏대감들에게도 인사를 하고 등을 보이며 나갔다.


“지수가 신이 났나 보네. 그림 전공했거든.”

“아, 그래요?”


이지수는 할아버지 손에 자랐다고만 말했는데, 화방 사장님은 나에게 더 많은 정보를 알려주었다. 그는 동양화를 전공했고, 서른네 살이며, 지나치게 바람직한 생활을 하는 사랑방의 심부름꾼이다. 거기에 그의 소소한 습관까지 전해 들으니 일방적으로 내가 그를 많이 알게 된 것이 아닌가 싶었다.


“궁금한 게 있으면 정 선생이 지수한테 직접 물어봐. 아마 좋다고 대답할 걸? 늙은이들만 상대하다가 얼마나 기쁘겠어. 지수 녀석이 정 선생보다 어리니까 동생처럼 잘 봐줘.”

“네. 그럴 게요.”


나는 그렇게 이지수를 처음 만났다.


그 뒤로 나는 연적을 장만했다. 이번에도 벼루에 화선지까지 모두 살 생각은 없냐는 사장님의 질문에, 아직까지는 필요하지 않다고만 답했다. 사장님은 “그러면 정말로 당장은 사지 않는 거지?”라고 몇 번이고 나에게서 확답을 받아내었다. 그러고 열흘이 지나 나는 그림을 그릴 구색을 갖추게 되었다. 화방 어르신들이 새 친구인 나를 환영한다는 뜻에서 다 같이 준비한 것이라며, 벼루를 선물해 주었기 때문이다. 벼루까지 생기고 나니 이제는 정말로 그림을 그려야만 할 것 같았다.


그렇게 처음으로 먹을 갈았다. 자박자박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갈았는데, 물이 너무 많았던 탓인지 붓을 담그자 먹과 물이 다른 빠르기로 붓을 적시는 게 눈에 보였다. 적신 붓은 빈 트레이에 올려놓고 새 붓을 들었다. 먹을 조금 더 갈고 나서 붓을 담가보니 언뜻 보기에도 처음보다는 나아 보였다. 처음 그림을 시작하기에 나쁘지 않겠다 싶어 주변을 둘러보니, 양장 제본에 각 종이마다는 코팅까지 되어있는 화첩이나 눈에 들어올 뿐, 선 하나 그을 마땅한 종이 한 장도 보이지 않았다. 급히 화방에 내려가서 화선지를 사려고 하는데 역시나 이지수가 있었다. 그는 정말로 이 사랑방의 심부름꾼인 모양이었다. 그는 그 역할에 맞게 양손 무겁게 아이스크림을 사서는 장기를 두고 있는 어르신들에게 하나씩 건넸는데, 그 모습이 꽤나 익숙해 보였다.


“안녕하세요, 규진 씨?”

“네, 안녕하세요.”


나는 이지수에게 인사하고 두께가 제각기 다른 화선지 묶음이 잔뜩 쌓여 있는 곳으로 갔다. 그 묶음들 중에서 하나를 고르려고 하는데 아는 것은 하나도 없고, 또 이지수가 아이스크림을 돌리는 모습이 산만해 도무지 집중이 되지 않았다. 그래도 화방 어르신들과 한국화를 전공하는 학생들을 만나면서 주워들은 정보로 화선지를 고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착각이었다는 것을 빠르게 인정하기로 했다. 고민을 접어두고 아무 종이나 고르기로 했다. 화방 구석에 있는 선반 가장 위에 놓여 있는 화선지 한 묶음을 들었다.


“도와드릴까요?”


분명 화선지를 골라서 올라가겠다고 결정할 때만 해도 멀찌감치 있던 이지수가 내 앞에 와 있었다. 나는 괜찮다는 말 대신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처음 그릴 때는 이 정도의 두께가 좋아요. 붓을 쓰는 게 익숙하지도 않고, 먹 농도를 조절하는 것은 더 쉽지 않거든요. 이 정도면 아마 조금 세게 누르거나 선을 한 번에 긋지 못한다고 해도 심하게 번지지는 않을 거예요.”

“설명까지 해주시네요. 감사해요.”


그는 너스레를 떨며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더니, 갑자기 급한 일이라도 있는 것처럼 미간에 잔뜩 힘을 주고는 작은 목소리로 나에게 물었다.


“그런데, 저 하나만 물어봐도 되나요?”

“굉장히 비밀스러운 말인가 보네요. 뭔데요?”


나는 그의 표정을 따라 하며 마찬가지로 작게 답했다.


“그림은 그리셨어요?”

“아니요, 아직이요. 화선지 사러 왔잖아요.”


내 나름대로는 평범한 답이었다. 그런데 이지수는 네? 하고 되물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말하던 것을 잊었는지, 큰 소리로 몇 번이고 네? 네? 하며 되물었다.


“왜 그러세요?”

“아니, 붓을 산지 꽤 되지 않았나요? 먹도 그렇고요.”

“네, 그런데요?”


내가 쓸 붓도 그가 배달해 준 것이라고 했다. 먹은 그의 할아버지가 만든 것을 내가 받아서 쓰고 있으니 그가 내 진도를 짐작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뭐 큰일이겠는가. 나는 별일이 아니라 가볍게 생각하고 대답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는 단호한 말투로 내게 물었다.


“그런데 아직도 그림을 안 그리고 있다고요?”


다그친다는 표현도 잘 어울리는 말투였다.


“그림을 그려야죠! 붓을 잡았으면 점이라도 하나 찍어야 하는 거, 몰라요?”

“그게 무슨 개똥철학이에요.”

“뭘 모르시네. 오늘 가서 점이라도 찍어보세요. 제가 왜 이렇게 구는지 알 테니까요.”


종로의 화방 바로 위로 이사하고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지만, 나는 마른 붓으로 화첩 위에 덧대어 난을 치고 붓을 사서 모으고 먹을 갈며 딱 하루 붓을 적셨을 뿐, 무엇을 그리고 싶다고 구체적으로 생각한 적은 없었다. 막연하게 먹과 잘 어울리는 색의 꽃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아직 그 정도를 꿈꾸기에는 어림도 없는 솜씨였다.


“안 되겠네. 제가 친히 스승이 되어드리죠. 보름 뒤까지 뭘 그릴 건지 생각해오는 거로 합시다.”


느닷없이 도와주겠다는 그의 말이 고마우면서도 귀여워서 나는 알겠다고 답했다. 사람을 가르치고 달래는 일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용감하고 순수한 제안이라는 것은 내가 가르쳐주면 될 일 같았다.

그의 당부와 다그침에도 나는 그날 이후로 보름 동안 먹에 붓 한 번 담가보지 않았다. 막상 모든 것을 갖추고 정말로 그릴 때가 되니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아서였다. 화려한 만년필로 이런저런 전문용어를 갈겨쓰는 것은 익숙했으나 붓을 들고 정성스레 점 하나 찍는 것은 어려웠다. 만년필로는 내가 생각하는 대로 선을 그을 수 있었지만, 붓을 들고는 도저히 그럴 자신이 없었다. 점 하나 잘못 찍어서 번지면 그림이고 뭐고 당장 그만둘 것 같았다.


그렇게 보름이 지난 점심, 이지수는 화방으로 왔고 나 역시 내려가서 그를 만났다.


“아~ 딱 보니까 못 그렸네, 못 그렸어.”


약 올리냐는 말이 안 나올 수 없었다. 그는 “당연히 그럴 거 같아서 한 말이었는데 왜 발끈하세요?”라고 물었다. “자신 있게 그려서 종이 장수도, 먹 장수도 먹여 살려야 하는데 너무 신중한 거 아닙니까?”라고 말하는데, 서있는 자세나 말투, 표정 어느 하나 확신에 차지 않은 것이 없었다.


“먹이 잉크보다 무겁고 붓은 펜보다 길어서 점을 찍으면 망할까 무서워서 못 찍었네요.”


“평소에 걱정이 많아요? 뭘 그렇게 걱정을 하면서 그림을 그려요.”


망하는 것 자체가 문제인 걸 그는 모르는 것 같았다. 딱히 나를 신중한 사람으로 대하지는 않으면서 신중하다는 말은 잘도 했다.


“내일, 아. 내일은 제가 또 청주로 배달을 가야 해서 안 되겠네요. 다음 주부터 합시다.”


하지만 그 신중한 내가 결정을 내리는 데까지 오래 걸릴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가 “다음 주부터예요”라고 재차 확인한 후에야 나는 알겠다고 대답할 수 있었다.


이지수는 일주일 동안 할 숙제라며 B5 스케치북과 붓 펜과 마카, 색연필에 경도가 다른 연필 세 자루를 주면서 스케치북 가득 선을 그어오라고 했다. 붓으로 점 하나 찍지 못하는 나를 위한 특단의 조치라고 했다. 하지만 특단의 조치라고 하기엔, 여태 붓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 나에게 다양한 도구를 쓰는 것은 또 다른 도전이었다. HB 연필과 2B 연필, 그리고 색연필 정도로 그나마 글자나 몇 자 썼을 뿐이지 그림을 그리겠다고 선을 긋는 것은 처음이었다. 유치원생이 크레파스를 불편하게 쥐고 스케치북에 낙서하는 것과 별반 다름없는 상태로 선을 그었다.


스케치북을 채우는 데는 또 다른 조건이 있었다. 화방에서 서른 걸음 이상 떨어진 곳에서 선을 긋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수많은 과제를 해결하며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종류의 번거로운 제한은 처음이었다.


“안 나가도 모른다고는 생각하지 마세요. 원래 선생은 종잇장만 만져봐도 학생이 어떤 마음인지 아니까요.”


그는 한 번은 나로 살아본 것처럼, 내가 한 번은 하고 싶었던 말을 했다.


나는 작은 마을의 상담소에서 일했다. 여러 사람이 찾아왔는데, 그중에는 일상에 시달리다가 지쳐서 오는 사람도 종종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똑같은 생활 처방을 내렸다. 8시간은 자고, 8시간은 일하고, 8시간은 쉬는 것이었다. 대부분은 일이 도무지 줄지 않는다고 하거나 이미 지쳤음에도 일을 하지 않으면 도통 불안해서 잠자리에 눕지 못하겠다는 사람이 많았다. 지쳤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하는 것도 나의 일이었다.


“선생님, 이번 주는 말씀하신 것 잘 지켰어요. 8시간 자고, 8시간 일하고, 8시간은 쉬었어요.”


수많은 사람들이 거쳐 갔던 날들 중 하루, 스물두 살의 대학생이 한 달 만에 나를 찾아와 앞에 앉아서는 대뜸 말을 꺼냈다. 하지만 오랜만에 보았다고 하더라도, 모자와 마스크로 가려진 얼굴 뒤에서 느껴지는 것을 모를 수는 없었다. 힘이 없지는 않으나 이전보다 낮아진 목소리나 느리게 말하는 투, 어정쩡하게 고개를 숙여서 내 책상의 모서리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는 모습만 보아도 그 학생이 그다지 여유 있게 살지 않았다는 건 느낄 수 있었다.


“잘하셨어요.”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이뿐이었다. 앞에 두고 추궁을 해서 지난 한 달 동안 정말로 약속을 지킨 것이 맞느냐고 물으면 분명 거짓말을 했을 것이다. 오랜 상담 기간 끝에 그 학생은 내가 어떤 것을 잘했다고 격려하고 칭찬할지 알고 있었을 테니까 말이다. 그 학생의 앞에서 떠나지 않고 앉아서 말하기를 기다리는 게 내가 상담사로 해줄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 사람은 나를 보지 않았다. 여전히 책상 모서리만 보고 손끝을 꼼지락거리더니 울기 시작했다.


나는 그때, 말을 해야 할지 말지 고민했다. 무슨 일이 있어서 그 지경이 되어서는 내게 괜찮은 척을 하며 거짓말을 했냐고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 학생이 울음을 그칠 때까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좋은 상담사는 그저 잘 듣기만 하면 된다는, 그리고 마땅히 그래야만 한다는 생각이 학생을 위로해주고 싶다는 마음보다 더 컸기 때문이었다. 우는 사람을 앞에 두고 보기만 하는 것은 생각보다 나에게는 힘든 일이었다.


어어-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상황 파악은 아직 안 되었으나 무슨 일이 났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곧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하는 낯설지 않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엔 또 어떤 잔소리가 늘어질까 싶어서 한숨을 쉬었는데, 티를 내도 너무 크게 냈나 보다. 이지수는 나와 눈을 맞추고 빤히 보더니 “생각은 그만 합시다?”라고 했다.


“생각이 멋대로 나면 하는 거지. 뭘 또 그만 하라고 그러냐고 생각했죠?”

“제가 하고 싶은 말을 매번 어떻게 그렇게 잘 알고 해요?”

“표정으로 말하잖아요, 어떻게 상담 일하셨대. 상담사들은 보통 티를 잘 안 내잖아요?”

“훌륭한 상담사는 그런 편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러면 상담은 훌륭한 상담사에게 맡기고, 일단 이렇게 그은 못난 선부터 수습합시다.”


못난 선이라는 소리를 듣고 나서야 나는 내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알 수 있었다. 선이 다 갈라질 정도로 힘 조절이 되지 않은 것도, 그 선이 대책 없이 흰 화선지를 대각선으로 반 가르고 있는 것도 문제였다. 가지를 두고 꽃 몇 송이 그려보겠다고 호기롭게 시작했던 그림은 붓으로 첫 선을 긋자마자 접어서 책 사이에 꽂아 두고 두 번은 열어보면 안 될 것처럼 망해 있었다.


“이거 살릴 수 있겠어요?”

“와, 이걸 살리고 싶어요? 왜요?”

“살릴 수 있는지 없는지부터 말해주세요. 먼저 물어봤잖아요.”

“살릴 수 있어요. 왜요?”

“다행이에요. 첫 선 그은 종이에 첫 그림 완성하자가 제 소소한 목표였거든요.”


이 선 하나 긋기까지 계절 하나가 지났다. 시간이 더 흐르기 전에 그림을 조금이라도 더 그려야겠다 싶었다.

 

계절이 하나가 지나도록 변하는 게 하나 없으면 내가 나에게 실망할 것 같았다. 게다가 시작이 마음에 안 든다고 자꾸 새로 그리다 보면, 첫 글자만 쓰고 갖다 버리는 수많은 편지지와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이기도 했다.


이지수는 시키는 대로 따라올 자신이 있냐고 물었다. 선뜻 답하지는 못했다. 내가 지금까지 봐왔던 사람들과 나는 다르지 않고, 그들은 모두 나하고 했던 약속을 잘 지키겠다고 했으나 대체로 그러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지금 너무 선을 진하게 그어서 당장은 못 그릴 거 같아요. 차라도 한 잔 마시면서 마르는 거 지켜보고, 오늘 나머지를 그릴지 아니면 다음에 그릴지 결정합시다.”


그는 한참 화선지를 보다가 “아무래도 다음에 그려야 덜 번지고 봐줄 만할 것 같기는 하네요”라고 덧붙였다. 시작한 것을 마무리 지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복잡하고 무거웠던 머리와 달리 마음은 가벼워졌다.

나는 결국 이지수와 차 한잔만 마시고 헤어졌다. 찻집을 따로 찾아가서 차를 내려 마시기까지 두 시간은 족히 걸렸는데, 그동안에도 내가 한 실수는 도통 수습이 되지 않아서였다. 먹을 가는 것도 미숙했는지, 먹과 물은 종이 위에서 따로 놀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물로만 된 얇고 투명한 선이 검은 선 주변을 감싸듯 자국을 내며 테두리를 만들었다.


“그 그림 꼭 살려야 한다고 부담 안 가져도 괜찮아요. 그냥 제 욕심이었어요.”


앉아서 따뜻한 차도 마시고, 이지수가 하는 소소한 일상 얘기를 들으며 여러 사람 사이를 걸으니 머리가 식었다. 나는 첫 그림을 끝까지 완성하는 건 내 고집이었다고 말하며, 화방에 들러 다른 화선지를 사 오겠다고 말했다.


“지금 당장 결정하지 않아도 되니까 천천히 생각해보세요. 뭘 그릴지도 생각해보고.”

“아, 그러네요. 뭘 그릴 지 생각을 해봐야 하는구나.”


여태 그것도 생각 안 했냐고 하더라도 할 말은 없었다. 사실 지금까지 제대로 정한 것 하나 없이 여름을 지나 가을을 맞았고, 가을을 보내고 있는 중이며 겨울을 맞을 예정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시간 위에서 속도도 방향도 정하지 못한 채로 이리저리 날뛰다 어떻게든 멈춰질 기차였다. 그러니 무엇을 그릴지 생각은 안 했고, 사실 뭘 그려도 상관없겠다는 생각만 했었다.


“선이 이미 그렇게 그어졌으니, 조금 방향을 틀어서 채색을 좀 해볼까 하는데 좋아하는 색 있어요? 아니면 좋아하는 거라던가. 알겠지만 보통 나무나 꽃을 많이 그리긴 해요.”

“꽃으로 할게요, 종류는 매화가 좋을 거 같아요.”

“특별한 기억이라도 있어요?”

“글쎄요.”


특별한 기억이 있어야만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것은 아니라지만, 그래도 동기부여에 조금은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그의 말에 왜 매화를 골랐는지 며칠을 생각했다. 이렇다고 할 이유가 생각나지 않았다. 꽃말이 인상 깊었던 것도 아니고, 수학여행을 가서 본 것이 세 번이었고, 종종 드라마에서 흐드러지게 핀 매화나무가 나올 때나 보는 게 전부였다.


그렇게 뚜렷한 기억도 없이 답도 얻지 못하고 보름이 흘렀다. 이지수는 그다음 주 주말에 시간이 된다며, 아침도 괜찮냐고 물었다. 일 없이 혼자 지내는 중이라 아침도 괜찮았다. 그렇게 그와는 거의 한 달 만에 만났다.


“보통 매화는 흰색이나 연한 분홍색을 많이들 생각하는데, 농도 조절하는 스킬이 꽤 필요하니까 방향을 조금 틀어서 붉은색으로 해볼게요.”


나는 전에 내가 그림을 그리겠다고 처음 선을 긋고 수습도 못한 채로 삼 주가 지나버린 화선지를 펼쳤다. 화선지는 선 주변으로 물을 먹고 조금 울었지만, 이 위에 덧대어 그린다고 해서 그림이 번져 엉망이 될 것 같지는 않았다.


“원래 순서를 지키는 게 미덕이기는 하거든요? 중간 정도 굵기의 가지를 쳐야 하는데, 차근차근 그려서 면적을 넓히면 꽃을 그릴 자리를 내는 게 어려울 수도 있어요. 그러니까 마음에 드는 곳에 잔가지부터 칠게요. 그러고 잔가지에 꽃부터 얹어봅시다.”


잔가지는 쉽게 그려지지 않았다. 이번만큼은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전처럼 다른 생각을 하는 것도 아니었고, 선을 긋는 것이 무서운 것도 아니었다. 이 그림으로 내가 어떤 상태인지 알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가지를 큼지막하게 쳐도, 잘게 쳐도 문제였다. 종이에 가득 차게 꽃을 그려도, 여백을 두고 꽃을 몇 송이 그리지 않아도 마찬가지였다.


나를 찾아왔던 수많은 사람들과 거리를 두지 못해 재능이 없다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스스로와 거리를 두는데도 꽤나 재능이 없는 상담사였겠다 싶었다. 갑자기 붓을 내려놓고 싶었다. 그림을 계속 그릴지 고민하고 있는데, 이지수가 박수를 크게 한 번 쳤다.


“자자, 고민은 그만합시다.”


그래도 과거로 번진 생각은 좀처럼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나는 성취 이후 갖게 된 사명감을 여태껏 살아오는 힘으로 삼았다. 일을 하며 내가 앉은자리에서 만난 사람들은 모두 좋은 사람들이고, 누군가에게는 사랑을 받았을 것이며, 혹은 그러지 못해서 나를 찾아왔다고 하더라도 사랑을 받고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니 나는 사람들이 불행해지기 전에 막을 수 있는 일은 막고, 또 불행해졌다면 그것을 없애는 것이 내가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나는 그 사람들의 시간을 구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사명감으로만 일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꿈인지, 교수님 추천으로 순천에 내려간 지 삼 년이 지나고 나서야 깨달았다.


어떤 기억을 떠올리면, 날씨부터 시작해서 찬찬히 하루를 그리게 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날은 날씨도 어떤 것도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 그저 노크 소리만 기억난다.


비가 끝을 모르고 내리던 날, 나는 순천의 작은 마을들 사이 적당히 교통이 좋은 곳에 위치한 상담소에 자리를 잡았다. 그곳은 말 그대로 동네 사람들이 어느 집에 수저가 몇 벌인지까지 알 정도로 서로를 오래 잘 알고 지내는 마을이었다. 동네가 작아서 학생들도 많지 않았다.


종종 시내로 나가게 되면 겸사겸사 시내의 여고에 다니는 학생 둘을 학교까지 데려다 주기도 했다. 내 일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던 때였다. 이 작은 마을에서 내 손길이 필요한 사람들은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자신이 있어서도 그랬다. 순천까지 내려가겠냐는 교수님의 추천에, 선뜻 그러겠다고 대답한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었다.


여고생 중 한 명은 할머니, 할아버지와 갓 초등학교에 입학한 어린 남동생과 함께 살고 있었다. 부모님은 따로 살면서 생활비만 보내준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에게 그 집에서 키우던 진돗개 한 마리에 대해 말해주었다. 오래 키우던 진돗개가 죽었는데, 남동생이 그 개를 매일같이 찾는다는 것이었다.


“선생님, 사실 얼마 전이라고 해도 한 세 달은 지난 것 같아요. 그런데 도통 좋아지지 않는데 어떡하죠?”


대개 펫 로스 증후군(Pet Loss Syndrome)은 꽤 오랜 심리 상담을 필요로 했으며, 반려동물을 바로 다시 입양해 키우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방법이었다. 짧은 시간이지만 등굣길에 간이 상담이랍시고 도움을 요청한 학생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더해서, 이런 사실들과 상관없이 할머니와 할아버지에게는 강아지가 필요하니, 비슷하게 생기지 않았더라도 빠른 시일 내로 강아지 한 마리를 데려와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나는 거기에서 선뜻 “내가 도와줄게요”라고 말했다. 다른 뜻은 없었고, 정말 말 그대로 어린 남동생과 할머니, 할아버지 걱정을 하는 따뜻한 마음씨에 대한 응원과 그들에게 도움을 줄 사람은 나라는 생각에서였다.


얼마 뒤 나는 옆 동네 개가 새끼를 낳았다는 말을 듣고, 강아지를 받아왔다. 강아지가 집에 올 거라는 소식에 그 가족들은 삐걱거리는 대문 앞에 나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날 이후 어린 남자아이는 매일 점심 할머니와 함께 나를 찾아와 강아지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 학생과 내가 걱정했던 것과 달리, 가족들은 새로운 식구가 된 강아지를 나름대로 잘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러고 보름이 지났을 무렵 상담실에는 노크 소리만 들리고 사람은 들어오지 않았다.


세미나에 이런저런 일로 상담이 조금 피곤했던 나는 문을 닫아 놓고 있었다. 하필이면 밖에서 자리를 지키며 일을 도와주던 대학생도 답사로 출근하지 않는 날이었다. 으레 노크만 하고 벌컥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들이 많은 곳이었기에, 나는 문을 닫아 두어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노크 소리는 십 분이 지나고 한 번 더 들렸다. 그러다 들리지 않아 나는 잠시 눈을 붙였다. 눈을 다시 떴을 때는, 일곱 시가 훌쩍 넘은 시간이었다.


집에 가려고 문을 여는데 문이 쉽게 열리지 않았다. 무엇인가 턱 하고 걸려서 보니 상자가 있었다. 상자에는 내가 학생과 그 남동생에게 데려다주었던 강아지가 들어있었다. 꽤 오랜 시간 상자에 있었는지, 지쳐 낑낑거리는 소리도 내지 않았다. 나는 당연하게도 영문을 알 수 없어서 강아지를 데리고 학생의 집으로 갔다.


그 집엔 아무도 없었다. 황당한 마음과 걱정스러운 마음이 교차하는 가운데 강아지를 다시 살펴보니, 상자 안에는 꾸깃꾸깃한 색종이에 어린아이가 쓴 편지가 있었다. 그 옆에는 아이가 그렸을 그림도 있었다.


‘엄마가 와서 우리를 데려간대요. 강아지를 사준 선생님에게는 인사를 못해서 미안하다고 누나가 쓰라했어요. 돈 많이 벌어서 잘 크면 꼭 할머니 할아버지랑 같이 살 거래요. 누나가 그렇게 약속한댔어요. 기다리세요, 선생님!’


그다음 날, 그 노부부와 아이 둘은 요양원과 보육원으로 뿔뿔이 흩어졌다는 말을 들었다. 아이 둘이 남긴 강아지와 아이들과 헤어지게 된 할머니와 할아버지, 그리고 그 아이들과 내가 그려진 그림이 있는 편지는 그렇게 불행이 일어나지 않게 책임져줄 것이라고 자신했던 나의 손에 보란 듯이 남았다.


“미술 심리 들어본 적 있어요?”

“없으니까 걱정 말고 그려요.”


나직한 한숨이 들렸다. 그 뒤로는 “또 걱정 시작이시네.”하는 말이 들렸다. 이지수는 나에게 거짓말을 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니, 그는 내 그림 자체에만 관심을 가질 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기분으로 계속 그림을 그리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지수 씨는 할아버님이랑 지내니까 어때요?”

“글쎄요? 피곤하죠. 보통 사명감을 갖고 일하시는 분은 아니니까요.”

이지수는 턱을 괴고 내 그림을 한참 보다가 가볍게 답했다.

“붓 다시 적셔요. 이대로 그리면 또 기괴한 가지만 그리게 생겼으니까요.”


그는 내가 든 붓을 검지로 툭툭 쳤다. 화선지 위에 먹이 몇 방울 튀는 게 전부인 것으로 보아, 붓을 적실 때가 되기는 한 것 같았다.


“오늘은 안 되겠어요.”


다시 먹에 붓을 담그는 순간, 나는 다시 그림을 그려야만 했다. 하지만 이미 머릿속은 갑자기 떠오른 기억에 복잡했고 아이가 나에게 그려주었던 그림만 눈앞에 아른거렸다. 지금의 내 상태로 그림을 그렸다가는 분명 자로 잰 듯 정확하고 딱딱하며 작은 쪼가리로 가득 찰 거라서 볼품없을 게 분명했다. 이런 기분으로는 불가능할 것 같았다.


“한 번만 더 붓 내려봐요. 지금 얼마 안 남았는데 포기할 거예요?”

“못 그리겠다고요!”


나도 모르게 이지수의 말을 맞받아치며 언성을 높였다. 포기라는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고민 끝에 쉬는 게 얼마나 큰 결심이 필요한지 모르는 사람이 쉽게 말하는 데 화가 났다.


“이지수 씨가 저에 대해서 뭘 안다고 포기를 하네 마네 입에 담는지 모르겠네요.”

“알고 말고 할 필요가 있나요, 저는 포기하지 말라는 뜻으로.......”

“그만두고 다시 돌아갈 수 있는 사람이 포기가 어떤 건지 알기는 아나요? 이지수 씨처럼 쉬었다가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사람이 입에 담을 단어는 아니라고요. 대충 손 놓으면 다 포기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시간이 지나도 차도를 보이지 않았던 적지 않은 사람들과 그의 가족들이 나를 찾아와 그저 도리와 사명감이라는 방패로 앞을 막아 선 채로 버텼던 나에게 박았던 칼을, 나는 이제야 뽑아서 이지수를 향해 겨누고 있었다.

 

그저 포기라는 말에 발끈해서였다. 그간 ‘그런 일이 있었다’ 정도로, 사실로만 기억하려고 했던 순천에서의 일들이 묻어두었던 감정을 끌어내어 끊임없이 내 기억을 두드렸다. 나를 찾아와서는 자리에도 앉지 않고 자신의 감정을 퍼부었던 몇몇의 내담자들이 했던 말과 말투, 그리고 표정까지 고스란히 이지수에게 돌려주고 있었다.


“주변에서 잘한다고 얼러주고 달래주면서 여태껏 귀엽다, 착하다, 장하다고 하면서 봐주니까 신나서 모든 게 다 생각한 대로 될 거 같나 보네요.”

“미안하게 됐네요. 저만 신났었나 봅니다.”


이지수는 할 말이 많아 보이는 것 같았다. 그의 흰 얼굴과 대조되는 짙은 눈썹이 좀처럼 제 위치를 지키지 못하고 조금씩 꿈틀거리고 있었고, 그의 입매 역시 그랬다.


“상처 받으라고 한 말은 아니었는데... 잠깐 방에 들어가서 쉬는 게 낫겠어요.”


그는 내 말을 듣고 불편한 기색을 보이면서도, 당장 자리를 피하지는 않았다. 나를 전부는 모른다고 해도, 잘 아는 것처럼 굴던 사람이 내 말 뜻을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아 야속하기까지 했다.


“아니, 왜 못 알아들어요?”


아차 싶은 생각이 드는 것과 별개로 얼굴에는 열이 오르고, 입가는 이지수의 것처럼 좀처럼 가만히 있지 못했다. 얼굴의 근육 하나하나가 멋대로 움직이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붓을 내려놓을 수는 없었다. 오른손으로는 그대로 붓을 쥐고 놓지 못해 왼손으로 흘러내린 머리를 쓸어 넘기고는 마른세수만 할 뿐이었다.

이지수는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그는 내가 미처 내려놓지 못한 붓을 빼앗아 들고는 그림 위에 내려놓았다. 나의 변덕은 수치심과 죄책감으로 변해, 붓 끝에서 그림 위로 방울방울 튀어 지울 수 없게 남아버렸다.



창문은 그림처럼 물방울 자국으로 가득했다. 창문을 열고 의자를 끌고 가 앉으니 좁은 방에는 습기가 가득했다. 번쩍거리는 빛이 싫어서 TV 대신 켜 둔 라디오에서는 일기예보가 나오고 있었다. “남부 지방을 시작으로 하여 소강상태를 보이던 늦은 가을장마는 예상과 달리...”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에 맞춰 굵은 비가 후두득하며 창틀을 치고, 조금씩 튀어 방바닥을 적시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소리에 맞춰 핸드폰이 울렸다. 시선을 창밖에 두고 손을 뻗었더니, 잡히는 것은 핸드폰도 아니고 바닥에 내팽개쳐둔 옷가지들도 아니었다. 딱딱한 모서리와 함께 책이 잡혔다. 순천에 있으면서 내가 받았던 동네 사람들의 편지들을 빳빳하게 보관하겠노라고 끼워 놓는 바람에 두고 오지 못한 책이었다.


책을 펼칠 수 없었다. 쏟아질 편지들은 내가 포기한 것의 흔적이었으니까 말이다. 이 편지들은 또 다른 수치심을 안겨줄 것 같았다. 또 감당도 못할 약속을 하고는 지키지 못하고 이곳으로 온 걸 확인하기도 싫었다.


늦가을의 장마가 끝나기 무섭게 날은 추워졌다. 여름에 도망치듯 올라온 서울은 생각보다 더 괜찮은 곳이었다. 사람들은 친절했고, 나는 여기에서 누군가의 부담스러운 기대와 관심을 받지 않고 편하게 지낼 수 있었다. 방은 좁았지만 혼자 살기에는 부족하지 않았고, 십수 년 전에 대학 교양 수업을 들으며 그려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그림을 시작은 해보았다. 


이 추위가 더 짙어지기 전에, 나는 이 장소를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방 사장님에게 인사를 전하기 위해 계단을 내려왔다. 화방으로 곧장 가지 않고, 옆에 있는 가게로 향했다. 이번에는 찻잎만이 아니라 다도 세트도 함께 샀다. 두 손을 묵직하게 하니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나는 손을 쓸 수 없어 비스듬히 문에 기대어 어깨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화방에는 시끌시끌한 소리가 들리고, 그 소리의 중심에는 이지수가 있었다.


그의 손에는 낯익은 붓이 들려있고, “너 말고 정 선생에게 준 것들이 왜 니 놈 손에 있는 게냐?”라고 묻는 화방 어르신 한 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날 이후 또다시 도망치기를 선택했던 나의 흔적들을 이지수는 고스란히 들고 와 있는 모양이었다.


“어, 정 선생!”


이지수를 혼내며 타박하던 어르신이 나를 보고 이리 오라고 손을 흔들었다. 나는 찻잎과 다도 세트를 계산대에 올려 두고 다들 모인 곳으로 갔다. 나를 등지고 앉은 이지수의 표정을 볼 수는 없었으나, 붓이며 화선지 묶음, 연적에 벼루까지 익숙한 것들이 그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 이지수의 손은 다툼의 흔적이 되어버린 점 위에 꽃잎을 하나씩 얹고 있었다.


화선지를 가로지르는 굵고 갈라진 기둥 같은 큰 가지 위에 잔가지가 붕 뜬 채로 자리를 잡고 있고, 또 아무 데나 튄 점들이 있던 곳에는 이지수가 한 잎씩 그려 얹은 꽃들로 가득했다. 나는 이지수의 손에서 끊임없이 한 송이씩 피는 꽃을 보다가 뒤를 돌아 화방을 나왔다. 그냥 오늘은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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