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힐링 영화하면 떠오르는 배우들이 있다.
코바야시 사토미小林聡美, 모타이 마사코もたいまさこ, 이치카와미카코市川 実日子, 카세 료加瀬亮, 미츠이시 켄光石研 등(모두가 영화 ‘안경’, ‘도쿄 오아시스’에 출연). 어김없이 이들이 다 출연하고, 교토를 배경으로 만든 영화가 있다. 제목은 마더워터. 카모가와鴨川 강변, 시라가와소수이길白川疎水通り 등 교토의 아름다운 거리를 산책하는 장면이 많아 관광지가 아닌 일상적인 교토의 모습이 잘 나타난 영화이다.
교토의 친구들도 이 영화가 맘에 들었는지, 나에게 추천하는 이가 많았다. 그리고 촬영지를 알려 주기도 하고 데려다 주기도 하였다. 덕분에 세츠코(小林聡美)가 운영하는 위스키 바를 촬영한 카페 프란지파니フランジパニ, 타카코(코이즈미쿄코小泉今日子)의 카페 시즈쿠しずく, 등장인물들이 가게 앞에서 두부를 먹던 하츠미(市川実日子)의 두부가게 오가와(大徳寺京豆腐 小川)를 비롯하여 공원, 산책로 등 영화에 나왔던 많은 곳을 성지 순례하듯 돌아다닐 수 있었다. 그런데, 오토메(光石研)가 운영한 목욕탕은 어디서 촬영했는지 다들 몰랐다. 그도 그럴 것이 영화의 대부분은 이마데가와거리今出川通り를 기준으로 북쪽 지역에서 촬영되었는데, 목욕탕만은 한참 남쪽인 교토역 바로 아래쪽에 있었다. 목욕탕은 동네 주변에 있는 곳을 다니지 멀리 있는 곳까지 찾아가지는 않는 데다, 생활 반경이 달라서 다들 잘 몰랐던 듯하다.
교토의 쇼와시대 목욕탕을 체험할 수 있는 곳
차 한 대가 지나다닐 수 있을까 걱정스러울 정도로 좁은 길목 안에 히노데유는 있다. 그래서 길을 헤맬 수 도 있는데 좁은 골목 입구에 작은 네온간판이 있어, 이것만 찾으면 쉽게 목욕탕까지 갈 수 있다. 목욕탕뿐만 아니라 주위 동네도 쇼와시대 교토의 느낌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몇십 년 전으로 시간여행을 하는 느낌을 준다.
히노데유는 1928년 오-시오유大潮湯라는 이름으로 개업했다가, 지금 주인장의 부친이 1949년 인수하면서 현재의 이름으로 바꾸어 오늘날까지 영업을 하고 있다. 몇 년만 있으면 개업 100주년이 된다. 포렴을 젖히고 문을 열고 들어가면 다다미 같은 것이 깔린 탈의실이 보인다. 그리고 오른쪽으로는 개업 당시부터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아주 오래된 나무로 만든 옷장이 보인다. 그리고 한쪽에는 카고かご라고 불리는 교토 목욕탕의 특징 중 하나인 옷을 넣는 바구니가 있다. 대나무로 만든 것으로 보이는 바구니는 세월의 흔적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 옆에는 플라스틱으로 만든 바구니도 있다. 예전의 바구니를 이제는 구할 수 없거나 너무 비싸서 그래서 새로 산 바구니일터이다. 교토에서는 카고에 옷과 소지품을 넣은 후 옷장에 넣어 보관한다. 어떤 이들은 카고를 옷장에 넣지 않고 탈의실 한쪽 구석이나 옷장 위 공간에 두기도 한다.
오래된 목욕탕을 가면 만나게 되는 안마의자, 기계식 체중계, 시계추가 있는 쾌종 시계가 있고, 남탕 입구 위에는 묵직한 널조각에 男湯이라는 글자를 멋지게 새겨 놓고 칠을 한 현판이 걸려 있다. 탈의실 벽 위에도 'あすもあります'(내일도 목욕합니다)라는 글을 새겨놓은 게시판이 있다. 이 둘은 ‘사도 2021’의 나카짱 아버지가 교토의 목욕탕들을 스케치한 노트의 한 페이지에 같이 그려져 있을 만큼 목욕 마니아에게는 유명하다.
욕실은 입구 쪽에 냉탕이 있고 남녀탕 구분이 되는 벽면 한쪽에 온탕, 전기탕 등이 있다. 특이한 점은 남녀탕의 구분이 되는 벽면에 빨간색 벽돌로 만든 기둥이 두 개 있다는 점이다.
이 기둥 사이 위에는 증기를 빼내기 위한 공간이 있어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야깃거리의 화수분, 쇼와신문
탈의실의 한쪽 벽에는 쇼와신문昭和新聞이라는 것을 붙여 놓았다. 쇼와시대의 특정 연도에 있었던 일을 연표식으로 정리하고 그때 인기 있었던 TV 프로그램이나 연예인에 대한 내용을 정리해 놓은 것인데, 주인장이 보름마다 다음 연도의 것을 만들어서 붙여 둔다. 어떤 기준으로 어떤 자료를 토대로 만드는지는 모르겠으나 대단한 정성이 필요한 작업일 것이라 생각한다. 티 내지 않고 탈의실의 분위기에 어울리는 방식으로 손님들에게 운치와 향수를 느끼게 하려는 주인장의 마음 씀씀이가 전해져 온다.
목욕을 마친 손님들이 몸을 말리며 이 신문을 보고는 그 당시의 일들을 떠올리곤 한다. 그리고 옆의 지인과 이야기를 나눈다. ‘저 그룹 해산 공연, 대단했지’ , ‘저 가수 지금은 뭐하는지 아나?’ 등등
목욕탕의 군기반장인 누시를 이곳에서 만나, 기분 나쁜 경험을 했다. 한시라도 빨리 그곳을 벗어나고 싶은 생각에 쇼와신문을 자세히 보지는 못했다. 히노데유를 다시 방문하고 싶은 제일 큰 이유는 이 쇼와신문 때문이다. 거기에 적힌 사건사고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나의 일본 지식을 테스트해보고도 싶다.
한 가지 아쉬운 점
내가 이 목욕탕을 찾아갔을 때, 사우나실은 시설의 노후화로 인해 운영하고 있지 않았다. 사우나 붐이 일고 있는 지금도 그런 것 같다. 목욕보다는 사우나에 초점을 맞춘 사도2021의 교토 편에 히노데유가 선택받지 못한 이유인 것 같다. 교토의 명물인 차가운 지하수를 계속 흐르게 하여(かけ流し 방식) 차갑고 신선하게 느껴지는 냉탕을 즐길 수 있는데, 사우나실이 없으면 이 좋은 냉탕도 반쪽 기능밖에 못한다.
참고로 2021년 2월 국가의 등록유형문화재로 지정된 목욕탕으로 또 다른 히노데유가 있다. 이 목욕탕은 교토부 마이츠루시舞鶴市에 있는 데 1917년에 지어졌다고 한다. 그리고 마더워터의 중요한 촬영 장소였던 카페 시즈쿠는 2021년 7월 18일 폐점했다. 카페가 입점해 있는 건물이 재건축되어서인데 다른 건물을 찾아 재오픈할 예정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