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3일
급여생활자들은 남을 위해 일하기보다는 자신을 위해 일하는 모습을 꿈꾼다. 어느 날부터인지는 특정할 수 없지만 나도 그랬다. "성공", "사회적 인정", "안정된 급여", 그리고 작게나마 있는 회사내에서의 "권력"만을 탐닉하며 치열하게만 살아왔었다. 수십년간 열심히 공부하였고, 치열하게 준비하였고, 또 절제와 참음으로 살아 나가던 삶이라는 모레성이 그냥 와르르 무너졌다. 솔직히 내가 무너뜨렸는지, 자연스럽게 무너졌는지는 모르지만 어찌 되었건 내가 속하였던 조직에만 충성하던 내가 아니었다. 일에 열정을 잃었고, 업무를 대하는 자세는 지극히 형식적이었다. 물론 일을 처리하는 방법은 이전보다는 능숙했지만, 더는 나를 자극하지 않았다. 점점 커지는 책임감이 오히려 부담이 되기까지 하였다. 오랜 시간 갈등하고 고민하다 나는 '일신상의 사유'로 퇴직하였다. 이날은 나의 첫 은퇴일이 되었다.
스타벅스에서의 3일
며칠은 쉬고 일을 시작하려 하였다. 여행도 하고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보려 하기도 하였다. 영화나 책에서 보면 다들 그렇게 하길래 나도 따라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여유로운 마음이 생기지는 않았다. 그래서 퇴사 첫날부터 나는 달렸다.
어떤 사업을 하고 싶다는 막연함만 있었지 구체적인 생각은 없었다. 전략을 짜던 사람이 막상 내 일에 대한 전략을 수립하려 하니 떨리기 까지 하였다. 그래서 나는 우선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기로 하였다. 무모했다. 하지만 그때는 그렇게 내 사업을 시작하였다.
판교에 있는 한 스타벅스에서 나의 새로운 사업을 홍보하기 위한 홈페이지를 만들기 위해 기획을 시작하였다. 홈페이지 제작 업체의 견적도 받아보았지만, 최소 300만 원 정도 소요된다는 말에 덜컥 부담이 되었다. 그렇다고 내가 홈페이지를 제작해 보거나 이와 비슷한 일을 해 본 적은 전혀 없었다. 그래서 공부를 시작하였다.
몇몇 웹사이트를 보면서 학습하려 하였지만, 너무나도 생소한 용어들 때문에 막혀 버렸다. 홈페이지 제작 업체에 다시 전화를 걸어 그들이 어떤 과정으로 홈페이지를 제작하는지 상세히 물어 나갔다. 참고로 당시에는 그들과 계약할 생각이 없어 미안한 마음도 들었지만, 몇 년 후 그들과 나의 두 번째 홈페이지 구축 계약을 체결하여 미안했던 마음을 갚을 수 있었다.
다시 '스타벅스에서의 3일' 이야기로 돌아와 보자. 홈페이지 제작 업체와의 전화 통화, 홈페이제 제작에 관한 YouTube 시청 그리고 판교 교보문고에 있는 책을 2권 정도 본 후 공부를 끝냈다. 6시간 정도 소요된 것 같다. 그리고 스스로의 힘으로 홈페이지를 만들어 보기로 하였다. 공부를 하며 프로그래밍 지식이 전혀 없어도 홈페이지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Wix라는 온라인 서비스를 사용하여 마치 파워포인트로 장표를 구성하듯 만들 수 있었다. 무료이었다. 물론 사이트 운영비 등을 지불해야 하지만 당장 큰돈이 들어가지는 않았다. 3일의 시간 동안 초집중하였다. 치열하게 고민도 하였다.
내가 이 사업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어떤 이야기를 홈페이지에서 발견하고 싶을까? 다른 경쟁자들보다 나의 사업을 선택하게 하기 위해서는 어떤 실제적 가치를 줄 수 있어야 할까? 이제 막 나의 일을 시작하는 사람이니 레퍼런스가 없는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나가야 할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에 하나하나 내 생각을 적어 나갔다. 이렇게 곰곰이 생각하고 사고 과정을 정리해 나갈 때 나는 주로 손글씨로 마인드맵과 비슷한 issue tree라는 것을 그리며 문제를 해결하려 해 나가는데, 상당히 효과적이었다.
그리고 내가 고민했던 답변들을 현실로 만들 수 있는 내용들을 홈페이지에 구성해 나갔다. 조금씩 완성되어 가는 홈페이지를 보며 쾌감도 생겼다. 그 3일간 나는 아침 9시에 스타벅스로 출근하여 저녁 8시까지 같은 자리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만을 마시며 일을 하였다. 그리고 딴에는 최선이라 생각되는 홈페이지를 세상에 공개하였다.
어떤 상황이던 어떠한 환경에 있던 "살아가는 힘"은 분명히 있다. 이러한 힘이 나에게도 있는지 당시에는 몰랐다. 하지만 이제는 안정된 내가 수년 전의 나를 돌이켜 보니, 스타벅스에서의 3일간 나는 "살아가는 힘"을 쏟아 냈었던 것 같다. 오랜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