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을 위한 준비
저의 첫 반려 동물은 강아지였습니다. 어린 시절 마당이 있는 시골의 집으로 이사를 하게 되어 강아지를 키우게 되었습니다. 시골의 어느 집이나 강아지를 키우고 있었고 집을 지키는 일이 녀석의 주임무였습니다. 가족들이 오면 꼬리를 흔들고 낯선 이가 오면 짖는 본연의 역할에 충실했습니다. 시골에서는 왕래하는 동네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강아지도 익숙해져서 꼬리를 흔들기 바빴습니다. 마당에 묶어서 키웠기 때문에 녀석의 행동반경은 정해져 있었고 다가가지 않으면 서로 교감할 수 없었습니다. 학교를 다녀오면 저를 반기는 녀석을 보며 사료를 다 먹은 건 아닌지 확인하고 물을 채워주고 똥을 치워주었습니다. 이상한 것은 사료를 주는데도 가끔씩 스스로의 것을 맛보았습니다. 그럼에도 항상 다가가서 쓰다듬었습니다. 신나게 놀고 나면 온통 침 범벅을 만들었고 털 뭉치는 덤이었습니다. 특유의 냄새는 지금도 잊혀지지 않을 만큼 강렬했습니다.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보낸 덕에 많은 동물들을 키워보았습니다. 키웠다기보다는 삶에 함께 있었습니다. 집 앞을 나가기만 해도 소나 돼지를 키우는 집도 있었고 여러 동물들을 접할 기회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서울 생활을 하며 반려동물을 키울 생각을 감히 하지 못했습니다. 제 집이 아니었기에 집주인과 이웃을 배려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여건 상 마당이 있고 반려동물에게 줄 공간이 없어 무리해서 키운다 해도 서로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반려동물을 키우는 것을 미루어왔습니다.
반려동물 하면 뭐니 뭐니 해도 강아지가 으뜸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교감능력도 좋고 충성도도 높아서 키우는 보람이 있습니다. 길을 걷다가 산책을 다니는 강아지를 보면 친화력도 갑인데 귀엽기까지 해서 눈이 절로 향합니다. 하지만 도시생활의 반려동물 중 으뜸은 고양이가 아닐까요? 고양이는 영역 동물로 산책을 하지 않습니다. 그루밍으로 스스로 위생 관리를 합니다. 게다가 어린 시절 어떻게 키우느냐에 따라 소위 개냥이라고 부르는 애교 만점의 고양이가 되기도 합니다.
어린 시절 고양이를 키운 시간은 꽤 길었고 집에서 키웠음에도 수명이 길진 않았습니다. 고양이 암컷 한 마리만 얻어와도 새끼들을 보게 되는 기적이 생겼습니다. 우리 집 고양이들의 이름은 대대로 나비였습니다. 그 외에 새끼들의 털 색에 따라 이름이 정해졌습니다. 정말 심플한 이름이 지어지고 있었는데 그중 한 마리 이름이 사랑이가 되었습니다. 누가 붙였는지 기억이 나진 않지만 사랑이는 여동생을 매우 따랐고 그녀의 껌딱지였습니다.
잠을 잘 때도 한 침대에서 같이 잤습니다. 여동생은 흐뭇해하며 사랑이가 꾹꾹이로 아침마다 깨워준다며 자랑을 했었습니다. 당시 여동생의 알람에 야행성이었던 사랑이는 새벽에 잠이 들었고 알람에 깜짝 놀라서 끄라고 깨웠던 것은 아닐까요?
아내와 함께 산책을 하다 보면 동네에는 길 고양이들이 많습니다. 그중에 새끼를 데리고 다니는 어미 고양이가 안쓰러웠습니다. 캣푸드를 구입해서 산책할 때면 물과 함께 챙겨나가서 일회용 접시에 놓아주고 일정 거리를 둔 채 다 먹기를 기다렸습니다. 차 밑에서 나오지 않아 구석으로 밀어주고 나서야 안심하고 나왔습니다. 어미는 새끼가 다 먹을 때까지 주위를 경계하다가 새끼가 다 먹고 나서야 먹기 시작했습니다.
캣푸드의 냄새로 주위의 다른 고양이가 온 적도 있습니다. 새끼와 함께 있는 어미는 더욱 경계하였고 저희도 편히 먹을 수 있도록 새로 온 고양이를 다가오지 못하도록 쫓아주었습니다. 길고양이에게 음식을 주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에 음식을 다 먹는 것을 보고 접시를 회수해서 집으로 돌아오곤 했습니다.
길고양이는 야생에서 위생적인 음식을 구하기 어렵기 때문에 3년을 넘기기 어렵다고 합니다. 길고양이를 구제하는 것은 어렵지만 새로 맞이할 반려묘를 유기된 아이 중에 데려오는 것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세워지지 않았지만 아내와 유기묘 보호소를 방문해볼 계획입니다. 이사를 앞두고 있어 근처의 유기묘 보호센터를 봐 두었습니다. 아내는 데려오기도 전에 “오구”라는 이름부터 붙여놓았습니다. 환경의 변화가 있을 예정이라 아직 정확한 일정은 정하지 못했지만 새로운 가족이 오는 날을 고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