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시대가 성큼 다가온 가운데, 자동차의 개념도 근본부터 바뀌고 있다. 단순히 내연기관이 전기로 대체되는 차원을 넘어서, 차량의 목적과 형태까지 유연하게 바꾸는 모델이 등장했다. 그 중심에는 기아가 공개한 PBV(Purpose Built Vehicle) 전용 전기차 PV5가 있다. 이 차량은 화물 운송, 여객 수송, 캠핑, 돌봄 서비스 등 다양한 목적을 위한 맞춤형 이동 수단으로 설계됐다.
하지만 단순히 여러 모델이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PV5는 플랫폼 위에 얹는 차체(보디)를 마치 레고 블록처럼 교체할 수 있는 구조를 갖췄다. 이는 차량을 용도에 따라 유연하게 바꾸며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출근길에는 승객용으로, 점심 이후에는 화물 운반용으로, 주말엔 캠핑카로도 활용할 수 있다. 자동차가 하나의 기능에 고정돼 있었던 기존 개념을 송두리째 바꾸는 시도가 이제 현실이 된 것이다.
모듈형 구조, 진짜 레고처럼 조립한다
기아 PV5의 핵심은 모듈화된 구조에 있다. 이 차량은 전기차 전용 플랫폼(E-GMP)을 기반으로 설계됐다. 이 플랫폼은 차량 하부에 배터리, 전기 모터, 제어 시스템 등을 모두 일체형으로 배치해 고정하고, 위쪽의 차체는 별도로 얹는 방식이다. 하부 플랫폼이 스케이트보드라면, 그 위에 얹는 상단 차체는 조립형 블록인 셈이다.
현재 PV5는 총 5가지 차체 형태로 선보였다. 승객용(Passenger), 화물용(Cargo), 휠체어 접근 차량(WAV), 캠핑카(Light Camper), 픽업 및 오픈 베드(Open Bed) 등이다. 각 차체는 특정 용도에 최적화돼 있으며, 필요에 따라 분리하거나 교체가 가능하도록 설계돼 있다. 향후 기아는 차체 교체를 자동화 로봇 시스템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개발 중이다. 덕분에 하나의 차량으로도 수시로 용도를 바꿀 수 있는 시대가 가까워지고 있다.
이 구조는 특히 차량 공유 플랫폼, 기업용 운송 서비스, 도심 배달 산업 등에서 높은 활용도를 자랑한다. 예컨대 배송 전용 PV5는 낮 동안은 택배 차량으로 쓰이고, 밤에는 청소용, 보안용, 혹은 긴급 의료지원 차량으로 전환될 수 있다. 하나의 플랫폼으로 다양한 기능을 수행한다는 점에서 다목적 이동 플랫폼 개념에 부합하는 구조다.
기능성과 실용성, 그 이상의 가치를 품다
기아 PV5는 실제 주행 성능과 탑승 편의성, 디지털 인터페이스까지도 모두 최신 기술이 적용되어 있다. 최고 출력 120kW(약 161마력)의 전기 모터를 탑재했고, 51.5kWh 또는 71.2kWh의 배터리 팩을 통해 최대 377km(WLTP 기준)의 주행거리를 확보했다. 충전은 400V 시스템 기반으로, 급속 충전 시 약 30분 만에 10→80%까지 도달할 수 있다.
실내 기능도 만족스럽다. 차량에는 12.9인치 디지털 클러스터와 안드로이드 기반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이 적용됐으며, OTA(무선 업데이트), 디지털 키 2.0, V2L(차량 외부 전력 공급) 기능도 탑재됐다. 여기에 ADAS(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도 대거 적용돼 안전성과 편의성을 동시에 챙겼다.
이런 실용성 덕분에 PV5는 일반 소비자뿐만 아니라 물류 기업, 렌터카 업계, 복지 서비스 운영자 등 다양한 산업군의 차세대 업무차로 주목받고 있다. 차량 수요가 점점 세분화되고 있는 현대 시장에서, PV5처럼 플랫폼 하나로 다목적을 커버할 수 있는 모델은 기업으로서도 운영비용 절감, 효율성 향상, 환경친화적 운영이 가능해 매력적인 선택지로 부상하고 있다.
자동차의 끝, 모빌리티 플랫폼의 시작
과거에는 트럭, 승합차, 캠핑카를 각각 따로 사야 했지만, 이제는 하나의 플랫폼 위에 원하는 차체를 얹기만 하면 되는 시대가 도래했다. 이처럼 PV5가 제안한 고정된 기계에서 유연한 플랫폼으로의 전환은 차량을 소유하는 방식, 사용하는 패턴, 나아가 도시의 물류와 이동 구조까지도 바꿀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다.
기아는 PV5를 시작으로 PV7(대형 모델)과 PV1(소형 모델)까지 출시할 계획이며, 궁극적으로는 차체 자동 교체소, 자율주행 배송 허브, 스마트 물류 생태계까지도 아우르는 통합 PBV 비즈니스 모델을 준비 중이다. 이는 단순히 자동차를 파는 게 아니라, 이동 수단을 서비스로 제공(Mobility-as-a-Service, MaaS)하는 미래를 염두에 둔 전략이다.
PV5가 도로에 보일 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 우리가 아는 자동차의 개념은 이 차로 인해 바뀔 것이다. 하나는 부족하고, 여러 대는 부담스러웠던 모든 사용자에게, PV5는 단 하나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는 미래의 탈것으로 다가오고 있다. 기아는 더 이상 자동차 브랜드가 아니라, 이동 솔루션 브랜드로 진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