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전 세계에서 메르세데스-벤츠를 가장 사랑하는 나라 중 하나다. E-클래스는 중국을 제외하면 한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고, S-클래스는 세계 3위권의 판매량을 자랑한다. 하지만 이런 뜨거운 사랑에 대한 보답은 커녕, 한국 소비자들은 늘 ‘가격 역차별’이라는 씁쓸한 뒷맛을 느껴야 했다. 해외에서는 합리적인 가격에 출시된 모델도 한국 땅만 밟으면 수천만 원씩 가격이 뛰는 ‘김치 프리미엄’이 붙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그 악몽이 되풀이될 조짐이다. 벤츠가 야심 차게 내놓은 차세대 전기 세단 ‘신형 CLA’의 미국 가격이 공개되었는데, 상상 이상으로 공격적인 가격 책정에 전 세계가 놀랐다. 하지만 이 소식을 접한 한국 소비자들의 표정은 밝지 않다. 미국 가격은 ‘대박’이지만, 국내 출시 가격은 그보다 훨씬 비싼 ‘8,000만 원대’가 유력하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신형 CLA를 단순히 기존 내연기관 CLA의 전기차 버전이나, EQS의 축소판 정도로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다. 이 차는 벤츠의 전동화 전략을 완전히 새로 쓰는 ‘게임 체인저’다. 가장 큰 특징은 바로 벤츠의 차세대 전기차 전용 플랫폼인 ‘MMA(Mercedes-Benz Modular Architecture)’를 기반으로 한 첫 번째 모델이라는 점이다.
이 덕분에 충전 속도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최대 320kW급 초급속 충전을 지원하여, 배터리 용량 10%에서 80%까지 충전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단 22분에 불과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급할 때 단 5분만 충전해도 약 161km(100마일)를 주행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전기차의 최대 약점인 ‘충전 스트레스’를 획기적으로 줄여줄 강력한 무기다.
주행거리 역시 압도적이다. 85kWh의 대용량 배터리와 뛰어난 공기역학 디자인 덕분에, 기본 모델인 ‘CLA 250+’는 미국 EPA 기준 1회 충전 시 602km(374마일)를 달릴 수 있다. 이는 경쟁 모델인 테슬라 모델 3 롱레인지나 아이오닉 6를 위협하는 수치다. 사륜구동 모델인 ‘CLA 350 4MATIC’ 역시 502km(312마일)의 넉넉한 주행거리를 확보했다.
신형 CLA의 혁신은 파워트레인에서 끝나지 않는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운전자는 벤츠가 그리는 미래를 마주하게 된다.
가장 먼저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대시보드 전체를 가로지르는 거대한 스크린이다. 벤츠는 이 차급 최초로 ‘MBUX 슈퍼스크린’ 옵션을 제공한다. 이는 10.25인치 디지털 계기판과 중앙의 14.3인치 메인 디스플레이, 그리고 동승석 탑승자를 위한 14.3인치 조수석 디스플레이가 하나의 거대한 유리 패널 아래 매끄럽게 연결된 형태다. 이는 상위 모델인 E-클래스나 EQS에서나 볼 수 있었던 호화 사양으로, 콤팩트 세단의 격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여기에 AI 기반의 음성 인식 기능, 3세대 MBUX 시스템, 그리고 돌비 애트모스 사운드 시스템까지 더해져, 신형 CLA의 실내는 단순한 이동 공간이 아닌 ‘달리는 스마트 디바이스’이자 ‘엔터테인먼트 룸’으로 진화했다. 소재의 고급감이나 마감 품질 역시 ‘역시 벤츠’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훌륭하다는 평가다.
하지만 이 모든 장점을 무색하게 만드는 것은 결국 ‘가격’이다. 벤츠가 공개한 신형 CLA의 미국 판매 가격은 놀라울 정도로 공격적이다. 기본 모델인 CLA 250+의 시작 가격은 4만 7,250달러, 한화로 약 6,900만 원이다. 고성능 사양인 CLA 350 4MATIC 역시 4만 9,800달러(약 7,269만 원)에 불과하다. 최신 플랫폼과 800V 시스템, 600km가 넘는 주행거리를 갖춘 벤츠의 신차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는 경쟁 모델인 테슬라 모델 3나 BMW i4를 정조준한 파격적인 가격 책정이다.
문제는 ‘한국’이다. 국내 수입차 업계와 전문가들은 신형 CLA의 국내 출시 가격이 8,000만 원대 중반에서 시작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미국 가격(6,900만 원)과 비교하면 무려 1,000만 원에서 1,500만 원 이상 비싼 가격이다.
물론, 국내에는 통상적으로 옵션이 풍부하게 적용된 상위 트림이 수입된다는 점, 물류비와 관세 등을 고려해야 한다는 반론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1,000만 원이 넘는 가격 차이는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실제로 현재 판매 중인 내연기관 CLA나 E-클래스 등 다른 모델들 역시 미국보다 한국에서 훨씬 비싸게 팔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가격 뻥튀기’는 한국 소비자들이 벤츠라는 브랜드에 가진 높은 충성도를 역이용한 ‘배짱 장사’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한국에서는 비싸야 더 잘 팔린다"는 왜곡된 믿음이 제조사로 하여금 합리적인 가격 책정을 주저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만약 예상대로 8,000만 원대에 출시된다면, 신형 CLA는 보조금 혜택을 받더라도 실구매가가 7,000만 원을 훌쩍 넘기게 되어, 제네시스 G80 전기차나 테슬라 모델 S 등 상위 차급 모델들과 경쟁해야 하는 애매한 위치에 놓이게 된다.
사진 출처 = 메르세데스-벤츠
신형 CLA는 상품성만 놓고 보면 흠잡을 데 없는 명차다. 디자인, 성능, 효율, 기술력까지 모든 면에서 동급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미국 시장에서의 공격적인 가격 책정은 벤츠가 이 차에 거는 기대가 얼마나 큰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한국 시장에서의 성공 여부는 전적으로 벤츠 코리아의 ‘가격 정책’에 달려있다. 미국처럼 6,000만 원 후반~7,000만 원 초반대의 공격적인 가격으로 출시한다면, 전기차 캐즘을 뚫고 ‘대박’을 터뜨릴 수 있을 것이다. 벤츠 코리아가 과연 눈앞의 이익을 위해 ‘가격 차별’이라는 악수를 둘 것인지, 아니면 합리적인 가격으로 한국 소비자의 사랑에 보답할 것인지. 신형 CLA의 출시가 기다려지면서도 한편으론 걱정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