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노크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크리스 앤미 Nov 04. 2023

열린 이야기 [1]

집 인근 공원에는 물줄기가 흘러 오리와 백로가 산다.

이벤트처럼 고라니와 뱀과 오소리 비슷하게 생긴 녀석을 마주치기도 한다.

맑은 수면 위로 낯에는 햇빛이 밤에는 달빛과 가로등 불빛이 통통 튄다.

그 광경을 바라보면 마음이 평화로워지는 한편으로 나는 참 반짝임을 좋아하는구나 싶다.

온갖 보석과 크리스탈을 위시리스트에 담아두고 갖지 못해 애달프다가도 자연의 반짝임을 보고 느끼면 가장 아름다운 것 정말 갖고 싶은 찬란함을 이미 가진 충만한 기분이 된다.


처음부터 이 물줄기를 지금만큼 좋아했던 건 아니었다.

옛날엔 퀴퀴하고 더러운 물이 흘렀다.

이사 오기 전 마을에서도 근방의 호수공원을 아지트로 삼았는데, 윤슬이 아름다운 호수였지만 물이 더럽고 악취가 풍기곤 했기 때문에 새로 만난 물길의 인상은 역겹지 않은 정도였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와 산책하던 도중에 대뜸 엄마가 이런 말을 했다.

"어머나 세상에 물이 엄청 맑아! 신기하네! 어쩜 이렇게 맑은 물이 흐르지?"

"뭔 헛소리야, 더럽고 냄새나기만 하지."

"어서 봐보라니까! 엄청 맑아! 봐봐!"

심드렁하게 고개를 돌려 내려다본 물길은 여전히 탁하고 더럽기 짝이 없었다.

그렇게 걷다가 의문이 생겼다.

'아무리 착각이라도 {엄청 깨끗하다}라고 표현할 수가 있나? 그건 이상하잖아?'

물길에 다가가 집중해 바라보았다.

정말로 깨끗한 물이 흐르고 있었다. 투명해서 바닥이 훤히 다 보였다.

충격이었다.

하천물은 더럽다는 기억과 관념이 내게 작용하고 있었다는 사실도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엄마의 재촉에 직접 봤을 때 진짜로 더러운 물이 보였다는 점이 충격이었다.

실질적인 체험이나 감각이 틀렸을 때 촉발되는 정신 충격과 자기 불신감이 상당했다.


그리고 수년이 흘러,

친구와 수다를 떨며 공원 산책로를 걷는데 대뜸 친구가 공원에 흐르는 물이 너무 더럽다는 말을 꺼냈다.

물줄기를 내려다보니 여전히 투명하고 맑은 물이 흐르고 있었다.

걸음을 멈추고 친구에게 다시 보라고 했다. 맑은 물이 흐르고 있다고.

그러자 친구가 놀라워하며 "바닥이 다 보일 정도로 깨끗하잖아?! 와 신기하다. 이렇게 깨끗할 수도 있다니?" 하고 경탄했다.


이사를 온 지 십 년이 되어가는 것 같다.

전에 살던 마을에 위치한 호수공원도 여전히 소중한 아지트 중 하나로 자주 놀러 간다.

십 년에 가까운 시간이 흐르는 동안 호수공원에는 정화시설이 설치되고 여러 가지 부분이 정비되면서 악취가 사라지고 물도 꽤 맑아졌다.

한낮의 직사광선을 반사하는 강렬한 윤슬이 내 지독한 우울감을 밝혀주었던 그곳은 조명과 달빛이 어우러지는 밤의 전경이 많은 사람들의 발길을 사로잡는 매혹적인 장소로 변모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