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이야기[3]
지난달 부터 이야기책 만드는 수업을 듣고 있다.
이번 주 수업 과제는 내 작품을 소개하는 1분짜리 녹음용 대본을 써오는 것이었다.
작품이 없는 상태에서 소개 영상부터 만들게 된 것이다.
과제가 어렵진 않을 터였다.
만들고 싶은 것이 뚜렷하게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글로 쓰려니 쓸 수가 없었다.
잠재 타깃층을 고려해 작품의 시점과 관점을 바꾸고 사물과 표현을 바꾸자 세계관이 붕괴되며 머릿속 작품이 엉망진창이 됐다.
당장 다음날 녹음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난장판이 된 작품의 상을 정리할 기운과 하기 싫어진 기분을 떨쳐낼 힘이 없어 일단 쪽잠을 청했다.
꿈속에서 나는 대학 창작 동아리에 있었다.
넓은 동아리방에서 부원들이 각자 독창적인 작품을 만들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 투닥이며 웃고 떠들었지만, 기본적으로는 자기 작품(조형물, 발명품 등)에 집중했다.
나는 넓은 책상에 자리를 잡고 펜과 종이를 꺼내 현실에서 쓰지 못했던 녹음용 대본을 쓰기 시작했다.
현실과 달리
아주 당연한 듯
나의 작품 세계에 푹 빠져 술술 적어냈다.
표현할 것을 표현하는 것의 당연함을 깊이, 깊이 느꼈다.
다 적어내고도 이 "당연한 기분"에 함뿍 젖어들었다.
충만했다.
깨어나자마자 휴대폰 메모장을 열어 대본을 썼다.
대본이 세세히 기억나진 않아서
꿈에서 대본을 썼을 때의 감각, 그 부드럽고 풍성하고 즐거운 감각으로 작문했다.
이날 녹음도 심호흡 몇 번으로 긴장 없이 그냥 했다.
작품 외 요소는 고려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고려되지가 않았다."
요즘 보고 느끼는 것들을 종합해 보면
괴짜, 관종, 4차원, 또라이, 등등
아티스트에 대한 부정적이고 분리적인 수식어들이 나의 내면에서 재정립되고 있는 것 같다.
창조자에 대한 관념이 부정적인 채로는 나 자신이 온전한 창조자가 될 수 없기 때문인 걸까.
꿈도 늘 나를 비춰 본심과 마음 상태를 알게 해준다.
덕분에 나에게 배운 것.
할 것을 한다.
쓸 것을 쓴다.
그릴 것을 그린다.
표현할 것을 표현한다.
순수한 표현 그 자체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