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인지도 몰랐다가 결국 병가를 낸 기자
“특별히 문제점을 찾지 못했습니다. 정상입니다.”
“아니 그럼 왜 자꾸 아픈 거죠…?’ 분명 위장 등에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대학병원 내과 전문의의 말이 이해가 되질 않았다. 계속되는 소화장애와 구토, 어지러움, 두통으로 인해 견디기가 어려운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병가도 몇 번 써가면서 끙끙 앓아온지가 수개월이었기에 최소 위궤양은 있을 것으로 예측했다.
증상이 나타날 때마다 집 앞 내과를 꾸준히 다녔지만 차도가 없어 대학병원에서 검사도 받았다. 하지만 ‘정상‘이라니.
“검사 결과 상으론 특이한 이상 소견은 나오진 않았네요”
의사의 말에 머쓱해진 내 머릿속에는 이제 대체 어떤 병원으로 가야 할까 고민이 일기 시작했다. 혼란스러웠지만 일은 바쁘고 정신은 없고 이렇게 넘겨버리고 말핬다. ‘요즘 나도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가 커서 피곤이 겹쳤나 보다 ‘
이후 나는 다시 일상의 삶을 살다가 아프고 좀 괜찮아지는 패턴을 반복하며 2년을 더 보냈다. 위장 장애가 나타날 때면 위염 약을 타서 먹고, 두통에는 타이레놀을 먹으며 하루하루를 지냈다.
이 상태가 길어지자 하루하루가 무의미하게 흘러갔다. 퇴근하고 오면 완전히 번아웃 상태가 되어 누워 있는 것 밖에 할 수가 없었다. 사람들과 사적인 만남도 포기해야 했다. 몸이 무겁고 갑자기 감정이 바닥으로 치닫기도 했다.
특히 편두통이 심했다. 기자일을 하고 있는 내게는 매일 오후 4-5시 정도에 마감이 있었다. 숨을 쉴 여유 없이 정신없이 기사를 치고 나면 죽을 것 같은 두통이 괴롭혔다. 머릿속에서 바늘이 콕콕 찌른다는 느낌을 받았고, 그런 날이면 퇴근길 기차에서 머리를 붙잡고 앉아있곤 했다.
아직 30대 중반.
일주일 정도 병가를 내기도 했지만, 그때뿐이었다. 그렇다고 생계가 걸린 일을 무턱대고 그만둘 수는 없었다.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 주변에 물어물어 이번에는 ‘신경과’의 ‘두통클리닉’을 찾았다. 신경과는 정신건강의학과와는 좀 다른 곳이다. 신경과는 뇌와 신경계의 기질적 이상으로 발생하는 질환을 진단하고 치료를 하는 곳이다. 나는 내 증상을 마음의 문제와 결부를 시키지 못하고 증상에만 매달리고 있었다.
‘명의’라는 유명 티브이 프로그램에도 출연하신 적이 있는 의사 선생님은 편안하게 나를 맞이해주셨다. 머리 혈류 검사도 했다. 그 결과 아주 약간의 혈류 흐름 속도가 좌우가 다르긴 하지만 문제가 될 정도로 심각하진 않다는 결과를 얻었다. 두통은 위장 장애와 연결되어 있어서 내과에서 차도가 없는 사람들이 신경과를 찾는 경우가 많다는 선생님의 설명이 이어졌다.
혼란과 민망함 속에 빠졌다. 난 분명 아픈데 의학적 검사에선 아프지 않다고 했다.
‘아... 여기도 아닌가?’
그렇게 일상이 흘러가던 지난해 1월의 어느 날. 퇴근 후 KTX 고속열차를 타고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갑자기 식은땀이 흐르면서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하아, 하아...’
몸이 덜덜 떨렸고 옆에 있는 손잡이에 몸을 지탱해보려 했지만 이기지 못하고 결국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사... 살려주세요’라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거친 호흡 때문에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눈 앞이 캄캄해지고 늪속에 빠진 사람 같은 공포를 느꼈다. 때마침 도착한 다음 정차역에 튕겨나가듯 겨우 겨우 혼신의 힘을 다해 몸을 끌고 나왔다.
그곳에서 혼자 한 3-4분 정도가 지나자 서서히 제대로 된 호흡이 돌아왔다. 불안감과 공포가 휩싸였다.
‘이게 공황장애인가? 아니면 내가 너무 예민한건가?’
‘요즘 너무 피로했나보다. 일과 인간관계 스트레스 탓이야’
그러다 불연듯 서너달 전, 코로나 우울증 등과 관련해 인터뷰를 진행했던 중앙 심리부검 센터장이자 신경정신과 전문의인 전홍진 교수님의 말이 떠올랐다. 교수님은 베스트셀러가 된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책>의 저자이기도 하다.
“한국 사람들은 몸으로 느껴요, 몸으로. 여기저기 아프고 팔다리가 아프고 숨이 답답하고 피곤한데
각종 검사를 해보면 문제가 없다고 나와요.
실제 자신의 기분, 그러니까 예민해서 긴장하고 불안해서 생긴 건데,
병원을 돌다가 나중에 알게 되는 것이죠.”(전홍진 교수님 인터뷰 중에서)
그 말을 되뇌면서 그렇다면 이번엔 신경정신과를 찾아가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의 우울증 치료기의 서막이 올랐다.
나는 결국 이를 계기로 병가를 내게 됐다. 막상 ‘기자’일을 수행할 때는 ‘머리로만’ 다가오던 주제들이 ‘마음으로’ 읽히기 시작했다.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지만 고독과 외로움이 줄지 않는 사회. 쌓여가는 거절감. 나를 사랑하는 법을 알고 싶지만 방법조차 알 수 없는 시간들을 마주하게 됐다. 병원 약물 치료와 심리상담을 병행하며 나의 변화를 기록하기로 했다.
우울증이란 마음의 감기를 만났을 때 병원을 찾아 헤맨 이야기, 약물 치료 이야기, 각종 심리검사를 경험한 이야기, 우울증 관련 사람들의 이야기, 병가를 내며 시골과 도시를 오가며 겪은 이야기, 우울증 중에 겪는 인간관계 이야기 등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시행착오의 여정을 풀어나갈 수 있기를..
마지막 한마디
여정의 말동무가 되어주실 분들... 어디 안계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