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학년 2학기, 교환학생에 가다
대학생이 되고 꼭 하고 싶었던 걸 하나 꼽으라고 한다면 가장 먼저 교환학생을 말했을 것이다. 줄곧 2학년 2학기나 3학년 1학기 즈음 교환학생을 가겠다고 생각을 했고 어떤 나라로 가면 좋을지 상상하고는 했다.
방학의 끝이 다가오던 8월 말, 덴마크로 출국했다. 북유럽은 아예 처음이라서 걱정도 많이 하고 겁도 많이 먹었지만 기대가 부정적인 감정들을 압도했다.
출국을 위해서는 새벽 1시 반 비행기를 타고 카타르를 경유해야 했다. 이때까지는 실감도 안 나고 그냥 가는가 보다 싶었다. 지난해 여름 방학 때부터 영어 시험을 준비하고 겨울 방학 때 프로그램에 지원해서 봄 학기 내내 교환 준비를 했다 보니 기간으로 따지면 1년 동안 이걸 준비한 셈인데, 이쯤 되니 징글징글하니까 빨리 좀 가자 싶어 홀가분한 느낌까지 들었다.
잠시 머물게 된 카타르 공항은 정말 컸다. 이른 아침 시간이었는데도 사람이 많았고 가게들도 바빠 보였다. 10시간 비행으로 지친 상태였기 때문에 카페에서 뭘 마시기로 하고 자리를 찾아 돌아다녔다. 하지만 그 넓은 공항을 아무리 돌아다녀도 자리를 찾을 수 없었다. 결국 놀이터 바닥에 앉아서 쉬었다.
6시간을 더 비행한 후에야 코펜하겐에 도착했다. 이번에는 잠도 거의 못 자고 맨 정신으로 6시간을 버티려니 조금 힘들었다. 유튜브 다운로드 덕분에 시간을 보냈다.
오후 2시쯤 버디를 만나 기숙사에 가기 위해 메트로를 탔다. 코펜하겐의 물가를 체감할 수 있는 시간이었는데, 기숙사까지 가는 20~30분 거리에 7천 원 정도였다. 한국에서도 공항철도는 비싸니까 그냥 그러려니 하려고 했다.
가는 동안 버디와 대화를 조금씩 하기 시작했는데, 지친 상태로 갑자기 영어를 하려니까 말이 잘 안 나왔다. 꾸역꾸역 말을 하는 느낌이었다.
피곤하고 어색한 상태로 기숙사에 도착했다. 5시에 관리인분을 만나 방 키를 받기로 했는데 4시에 도착해 버렸다. 방에 들어갈 수가 없어서 복도 소파에 앉아 있었다. 그래도 도와줄 게 있으면 얘기하라는 친구를 만나 일찍 도착했다는 이메일을 보낸 후에는 그냥 쉬었다.
짐을 어느 정도 정리한 뒤에는 근처 마트에 다녀왔다. 기숙사에서 3분 정도만 걸으면 마트에 갈 수 있었다. 과일이나 빵 같은 걸 사고 싶었지만 일단 처음이니까 물, 우유, 시리얼처럼 간단하게 빨리 살 수 있는 걸 사 보기로 했다.
요거트 사이에서 방황하다가 우유도 찾았고, 시리얼도 엄청 고민하다가 최대한 기본인 것 같은 제품을 구매했는데 물이 문제였다. 같은 브랜드의 물인데도 종류가 너무 많았다. 탄산이 있는 것부터 탄산이 적게 들어 있는 것, 영양 성분이 추가된 것 등 어쩌고 Vand(물), 저쩌고 Vand, 이름도 다양했다. 그 앞에서 한참 번역을 하고서야 물을 살 수 있었다.
입국을 최대한 미루는 바람에 다음날부터 바로 일정이 있었다. 행사 참여자를 위한 팔찌를 받고 학교 구경을 하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연락처를 받았던 과 선배 언니를 만나 팔찌를 나눠주는 곳으로 함께 걸어갔다. 팔찌를 받고는 기숙사에서 본 친구와 경영대 동기와 함께 학교 구경을 했다.
저녁부터 밤 시간대에는 교환학생들끼리 만나는 시간이 있었다. 조를 짜서 대화를 하거나 게임을 할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소규모 무리들끼리 대화하다가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 보이면 말을 거는 식이었다. 이름이나 출신 지역을 그냥 기계적으로 물어보고 공통점을 찾아 대화하는 시간이었다.
사람 많은 데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파티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일대일이면 몰라도 다대다 스몰 톡에 특히 약한 나로서는 너무 힘든 밤이었다.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날에는 시티 투어가 있어 도시 곳곳을 돌아다녀야 했다. 편하게 돌아다니기 위해 플린트홈(Flintholm) 역에 가서 Rejsekort 카드를 샀다. Rejsekort 카드는 덴마크의 교통카드인데, 이걸 사는 데만 80 크로네(약 만 5천 원)가 들었고 100 크로네(약 만 9천 원) 단위로 충전할 수 있었다. 이 날에만 50 크로네(약 9천 원)는 썼다.
시티 투어는 각 지점마다 가이드가 있고 학생들이 알아서 찾아가는 식으로 진행됐다. 로젠보르그 성(Rosenborg Castle), 뉘하운 운하(Nyhavn), 아말리엔보르 궁전(Amalienborg Palace), 덴마크 왕립도서관(Royal Library, Black Diamond)을 방문하는 여정이었다.
다른 곳도 정말 아름답고 신기했지만 그래도 코펜하겐 하면 상징적으로 떠오르는 뉘하운에 가고 나서야 진짜 여기가 코펜하겐이라는 것이 와닿았다. 형형색색의 건물들과 여행자들 사이에 있으니 유럽에 왔다는 것이 실감이 났다.
마지막 장소가 덴마크 왕립 도서관이었는데 안팎으로 예뻤다. 바깥 창문에 물결이 비치는 모습에서 따와 검은 다이아몬드라고도 부른다고 했다. 내부 역시 큰 창문과 조명,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매력적이었다. 큰 제약 없이 우리도 가서 공부할 수 있다는 얘기에 멀긴 하지만 시험 기간 중에 한 번은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한국인 언니를 또 한 명 만나 첫 외식을 했다. 가성비보다는 가심비(가격 대비 마음의 만족)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덴마크는 진짜 비싸도 너무 비싸다. 할리팍스(Halifax) 버거는 물 포함 130 크로네(약 2만 4천 원)였다. 그 돈으로 한국에 가면 햄버거를 몇 개나 먹고 사이드를 추가해서 음료까지 마실 수 있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런 생각을 하면 슬퍼지기만 하니까 그만하기로 했다.
교환학생에 오기 잘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 첫 주였다. 외국 친구들과 대화하면서 신기했던 건 이미 외국에서 공부를 하고 있거나 그게 아니더라도 다른 곳에서 교환학생을 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꽤 있다는 점이었다.
우리는 보통 한 번이면 족하다고 생각하고 그 한 번도 안 가는 경우가 있으니까 진짜 문화가 많이 다르다는 걸 느꼈다. 인생에서 한 번쯤 해보면 좋을 경험은 맞는 것 같다. 한 번 더 가고 싶다거나 심지어 대학원에 가게 되면 교환학생 또 해야지 싶은 생각까지 했다. 물론 대학원에 갈 생각은 없다. 그 정도로 좋았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