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교환학생 이야기
수업이 모두 끝난 4시 반, 친구와 아시안 마트에 갔다가 근처 해변에 들르기로 했다. 6시도 아닌데 벌써부터 도로에 사람이 많았다. 4시가 넘으면 코펜하겐의 도로는 자전거로 가득하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우리가 갈 해변의 이름은 Svanemølle Beach, 관광지도 아니고 규모가 큰 곳도 아니지만 한 번도 안 가본 지역 쪽이라는 이유 하나로 정한 목적지였다.
아시안 마트에서 라면을 잔뜩 산 뒤에도 마트에 가서 맥주를 사고 주변 구경도 하다보니 어느덧 6시에 가까워 졌다. 바다를 바라보며 자리를 잡았다. 아시안 마트 사장님이 서비스로 주신 과자를 안주 삼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시작했다. 저 멀리 바다에 떠 있는 요트들이 보였다. 처음 왔을 때만 해도 그리 많지 않았는데 어느새 그 수가 늘어나 있었다.
"요트 뭐야?"
"그러게. 아, 부러워."
6시 전에 퇴근해서 요트를 끌고 나와 둥실둥실 하는 삶이라니. 덴마크에 오기 전까지는 존재할 거라고 생각하지도 못했던 삶들이 눈 앞에 펼쳐졌다.
그 요트도 7시가 가까워지니 선착장으로 향했다. 아마 가족들과 저녁을 먹으러 가는 것일 테다. 저녁 시간에는 엄마, 아빠와 아이들이 산책을 했다. 신나게 산책을 하고 있는 개들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그 뒤로 노을이 졌다. 붉게 물들었던 하늘이 보랏빛으로 어두워졌다.
덴마크의 여름 날씨는 정말 좋다. 푸른 하늘과 적당한 기온, 그리고 바람까지 무엇 하나 거슬리는 게 없다. 여름이 조금 지나 개강 후 만난 덴마크 친구들에게 요즘 날씨가 정말 좋다고 말하면 진짜 여름 날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니, 덴마크의 '진짜 여름'은 어떨지 상상도 되지 않는다. 이렇게 사는데 행복하지 않다고 말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기만이었다. 코펜하겐에서 내가 보내는 하루도 완벽했으나, 현지인들이 보내는 하루 역시 너무나 완벽해 보였다.
이런 덴마크도 가을이 깊어지고 겨울이 가까워지면 좀처럼 좋은 날씨를 보기 힘들었다. 구름이 해를 가려 온통 회색빛 뿐이고 비도 자주 왔다. 대신 10월 할로윈, 11월부터 1월까지는 크리스마스로 이벤트가 끊이지 않았다. 겨울을 기념하기 위해 열린 아이스링크장과 사람들로 가득한 크리스마스 마켓, 시즌에 맞춰 꾸며지는 놀이공원까지 매달 새로운 것 투성이였다.
처음에는 내가 여기에 있어서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좋은 날씨, 급할 것 없는 일정, 매일 있는 놀 약속까지 무엇 하나 행복하지 않을 것 없어서 '한국 가기 싫다'는 말만 하루에 몇 번이고 반복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덴마크에서 행복했다면 한국에서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떻게 사느냐의 문제이지, 어디서 사느냐의 문제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며칠이고 해를 볼 수 없었던 날씨에도 행복할 수 있었다.
스스로 '집순이'라고 생각했다. 그 생각이 틀렸다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가만히 있는 하루가 좋고 휴식이 된다. 책 읽고 글 쓰고 스스로 생각하는 시간이 여전히 필요한 사람이다. 하지만 매일 외출하는 일상도 그다지 나쁘지는 않다는 것을, 매일 이벤트가 있는 삶도 재밌다는 것을 배웠다. 해외에서 살 수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 미래를 꿈꿀 때 당연하게 전제되었던 장소는 항상 대한민국, 그 중에서도 서울이었다. 하지만 교환 생활을 하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고, 그들은 자신이 태어난 나라 뿐 아니라 다양한 곳에서 많은 경험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한국에서, 그것도 서울과 청주에서만 살고 있었다면 그들은 지구에서 살고 있는 것 같았다. 나도 지구에서 살고 싶어졌다.
삶의 방식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한 학기였다. 매일 기대할 것을 만들고 지금 당장을 즐기는 방법을 배웠으니 그렇게 살아가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