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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니 Sep 11. 2023

후각의 귀환


콩당콩당 가슴을 뛰게 만들던 특별한 무언가가 평범한 일상이 되는 순간 더 이상 어떤 마법의 힘도 작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새로움에 흥분되어 내 몸을 뜨겁게 달구던 것은 익숙함과 편안함이란 옷으로 갈아입으면서 점점 매력을 잃게 된다. 설렘은 곧 지루함으로 바뀌게 되고 그를 위해 내주었던 마음의 방은 야멸차게 손님을 내쫓고 청소에 들어간다. 그렇게 또 하나의 사랑은 식어간다.



머릿속으론 일상의 소중함을 깨우치고 살자, 평범함 속에서 작은 행복을 찾고 살자 끊임없이 외쳐대지만 그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습관처럼 모든 걸 당연시 여기고 매일 발견할 수 있는 작은 행복보단 드물게 찾아오는 큰 행복만 좇게 되는 게 부끄럽지만 현재의  모습이다. 하지만 반대로 평범한 일상이 깨어지는 순간 오히려 그에 대한 소중함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지난 몇 년간 그 난리법석일 때도 용케 잘 견디고서는 다 늦게 코로나에 감염되어 한동안 꽤나 고생스런 시간을 보냈다. 꼬박꼬박 약을 열심히 먹은 덕에 1주일쯤 지나자 몸은 대부분 회복되었지만 후각만은 여전히 돌아올 생각을 않고 있다. 아주 자극적이지 않는 이상 어떠한 냄새도 내 코에 감지되지 않는다. 후각의 상실은 단순히 냄새를 못 맡는 것뿐 아니라 미각에도 대 혼란을 가져왔다. 평소 맛있게 먹던 것이 분명한데 도대체 그동안 무슨 맛으로 이걸 먹어왔는지 도저히 알 수 없는 것투성이다. 커피가 바로 그러했다.



핸드 드립으로 내린 커피를 아침에 마셔야 비로소 하루가 시작됐음을 공식 선언하던 내 몸이 커피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강한 산미와 쓴맛을 제외하고는 사실 원두의 미묘한 맛 차이는 잘 느끼지 못한다. 그저 내 입에 맞다 안 맞다 정도만 구분 지을 뿐 맛보단 오히려 향에 더 크게 끌리고 있다. 커피를 코로 마신다 해도 그리 틀린 말이 아니다. 막 분쇄한 신선한 원두를 추출하는 순간 온 집안에 가득 퍼지는 향은 공간마저 아늑하게 만든다. 집을 매도할 계획이라면 누군가 집을 보러 올 때에 맞춰 커피를 추출해 놔란 얘기를 언젠가 들은 적도 있다. 그러나 고장 난 코로 마시는 커피는 얼굴에 오만상을 다 짓게 한다. 그저 쓰디쓴 물에 불과한 이것을 어떻게 하루에 석 잔씩 마셔왔는지 의아하기만 하다. 반도 채 마시지 않은 커피는 결국 싱크대 배수구로 향했다. 그 후 2주 동안 커피는 쳐다보지 않고 있지만 전혀 그립지도 않다.


매일 아침, 커피로 하루를 시작한다


코에 이상이 생기자 특이한 게 입안에서 오로지 짠맛과 단 맛만이 감지될 뿐이다. 게다가 이 두 가지에 지나치게 집착하게 되어 모든 음식이 너무 짜거나 아님 너무 달기만 하다. 정상적이지 못한 코로 인해 덩달아 오작동중인 혀를 가지고 무얼 만든다는 건 무리다. 모든 게 정상일 때 조리해서 냉동 보관 중인 것들로 식사를 준비하는 편이 오히려 낫다.



그런데 하필 이럴 때 단골 가게에서 꽃게를 싸게 파는 건 또 무슨 얄궂은 신의 조화인지. 사지 말아야 했건만 요즘처럼 물가가 무섭게 오르기만 할 때 제법 실한 활꽃게가 5마리에 만원밖에 안 하니 도저히 그냥 외면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요행을 바라고 만든 간장 게장의 결과는 처참했다. 비싼 배추를 대신해 애써 부지런을 피워 만든 무말랭이 김치도 참 특이한 맛이란 평가를 아이에게서 듣고 말았다. 먹을 때는 멀쩡하지만 싱크대 앞에만 서면 항상 오작동 중인 남편의 혀는 큰 도움을 주지 못했다. 먼저 맛을 보이게 한 후 괜찮다는 소리를 듣고 식탁에 올렸건만 탕국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난여름휴가 때 열심히 캐 온 백합조개를 듬뿍 넣어 끓였지만 이맛도 저 맛도 아닌 정체 모를 국이 되고 말았다.



뛰어난 요리사는 아니지만 나름 손맛이 있다 자부해 왔다. 하지만 연이은 실패작으로 자꾸 움츠려 들게 된다. 정말 코로나 후유증 때문인지 아님 노화로 인해 둔해진 혀에 근본 문제가 생긴 건지 불안하기도 하다. 사실 코로나에 걸리기 전부터 음식 맛이 좀 들쑥날쑥 해지고 있다 느끼는 중이었다. 가족들에겐 후각이 사라져 그런 거라며 변명을 늘어놓지만 밥을 먹는 동안 가족들 눈치를 살피게 된다. 평소 유난히 요리에 자질이 없는 한 친구를 보며 그의 타고난 혀끝 감각에 심심한 유감을 보냈건만 어째 지금 내 모습이 딱 그러하다.  



덩달아 몸무게도 확연히 줄었다. 아파 드러누워 있던 1 주일새 2kg이 쑥 빠지더니 회복이 더디기만 하다. 더 이상 빠지면 안 되는 상태다 보니 모두들 왜 그렇게 살이 빠졌냐고 걱정스레 물어본다. 맛이 느껴지지 않으니 식탐이 제법 있음에도 음식 생각이 별로 들지 않는다. 뚫린 콧구멍으로 제 발로 찾아 날아들어오는 냄새를 알아차리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요즘 새록새록 느끼고 있는 중이다.




가끔 보면 시간이 모든 걸 해결해 줄 때가 참 많다. 며칠이 더 지나자 후각이 차츰 돌아오기 시작했고 지금은 80% 정도 기능을 회복하고 있다. 매일 아침 운동삼아 찾는 산에서 다시 숲냄새를 맡을 수 있게 되었고 어느새 길 위에 하나 둘 떨어져 있는 은행 열매의 지독한 냄새를 외면하게 되었다. 식탁 위 반찬들은 신선한 걸로 바꿔졌고 음식을 내놓을 땐 더 이상 변명도 필요 없다. 지난 몇 주간 볼품없는 끼니를 무던히 참아주던 가족들은 다시 식사를 즐기게 되었다. 나 역시 식욕을 회복해 부지런히 예전 몸무게로 돌아가고 있는 중이다. 아울려 커피와 함께하는 아침을 매일 맞이하고 있다.



후각의 귀환으로 인한 몇 가지 아쉬운 점도 있다. 절박뇨의 주원인이었던 커피를 외면하는 동안 화장실을 찾는 일이 눈에 띄게 줄었는데 다시 그 횟수가 늘어나고 있다. 한동안 잊고 지냈던 남편의 입냄새도 거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코로 뭔가를 다시 맡을 수 있는 이 순간이 참 감사하고 행복하다. 심지어 남편의 입냄새가 반갑기까지 했다. 그동안 너무도 당연시 여긴 코의 역할과 노고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이 망할 놈의 망각이 지금의 이 교훈을 잊게 만들 것이다. 그러나 최대한 오래오래 마음속 깊이 이번의 경험을 기억하려 노력할 테다. 코로나로 인해 적잖은 스케줄의 차질과 몸고생을 겪었지만 덕분에 소중한 걸 하나 깨우치게 되었다. 동시에 몇 가지 브런치 글감도 생기게 되었으니 인생사 새옹지마인 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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