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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니 Aug 25. 2023

코로나에 걸리니 서러워진다

이상했다. 이렇게 몸이 아픈 적이 없었는데 그야말로 온몸 구석구석이 다 아팠다. 등과 허리, 팔, 다리, 어깨, 모든 관절마디마디 어디 하나 성한 곳이 없었다. 그렇게 겨우 토요일을 보내고 다음날 일어나 보니 몸상태는 더 엉망이었다. 목 따끔거림이 특히 심해졌기에 혹시나 해서 집에 있는 진단키트로 검사해 보니 역시 코로나 양성 반응이 나왔다. 지난 몇 년 그 난리법석일 때도 코로나에 걸리지 않고 무사히 지내왔건만 다 늦게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더 신기한 게 주위 사람 모두 말짱한데 나 혼자 코로나에 걸린 것이다. 도대체 어디서 걸린 것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아무래도 면역력이 많이 떨어졌나 보다.



월요일까지 꼬박 기다려 찾은 병원에선 주말 동안 집에 있었던 것 다 무시하고 다시 5일 뒤인 금요일까지 격리기간이란 얘길 들었다. 주말만 아니었음 하루라도 빨리 병원에 들러 수요일로 격리기간을 끝낼 수 있었을 것을 날짜마저 날 돕지 않았다. 그랬다면 이번주 베이킹 수업은 빼먹지 않고 참석할 수 있었을 텐데. 마침 내가 제일 듣고 싶어 했던 '베이글'수업이 이번주에 있었다. 오븐에서 갓 나온 향미 풍부한 베이글을 맛볼 수도 집으로 가져올 수도 없는 게 너무 억울했다. 사실 베이글뿐만 아니다. 아프고 보니 온 천지 억울한 것투성이다.



며칠 심하게 아픈 동안 제일 서럽고 억울한 것은 다소 유치하지만 다름 아닌 끼니에 관한 것이다. 가족들이 아플 땐 언제나 정성껏 돌봐주고 끼니를 챙겨주며 엄마로서 부인으로서의 역할을 다하려 했다. 하지만 이번처럼 내 몸이 아플 땐 누구 하나 날 위해 밥 챙겨줄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너무 참담했다. 자기 코가 석자인 고2 딸을 원망하는 게 아니다. 집에서 버스로 4시간 거리에 사는 자취하는 아들을 탓하는 건 더더욱 아니다.



남편은 대기업에 다니며 매달 꼬박꼬박 월급을 받아온다. 허영도 겉멋도 없고 착실한 사람이다. 바람피우는 일 따위는 돈낭비에 무엇보다 귀찮아서라도 쳐다보지 않는다. 도박에는 더더욱 관심없다. 술 먹고 날 때리지도 않는다. 남편이 욕하는 건 들어본 적도 없다. 퇴근하면 무조건 집으로 곧장 온다. 이렇게 많은 걸 갖추었지만 반면 남편은 눈치라곤 일도 없는 사람이다. 게다가 남을 의식하거나 배려하는 부분이 많이 부족하다. 오로지 본인 위주로 생각하고 행동하지만 정작 자신은 잘 알지 못한다. 아무리 일깨워줘도 별 소용이 없다. 자기 생각이 너무나 확고한 데다 고집 또한 세다. 지금은 그래도 나이가 들어 부인 눈치를 많이 살피는 편이지만 여전히 평균이하의 공감력을 갖고 있다. 거기다 알면서 일부러 모르는 척할 때 또한 부지기수다. 눈치 빠른 내 눈에 다 보인다. 이유는 단 하나, 귀찮으니깐.



가끔 남편을 보면 도저히 이해가 안 될 때가 있다. 끼니에 관해서 특히 더 그렇다. 본인이 음식 하는 걸 질색을 하니 내가 하긴 다 하지만 그래도 부인의 컨디션을 좀 살펴야 할 때도 있는데 전혀 그게 안된다. 부인이 몸이 몹시 아프면 밥 하기가 힘들 테니 본인이 좀 알아서 해결하고 아울려 마누라 것도 좀 챙겨줘야겠다는 것에까지 생각이 이르지 못한다. 하긴 둘째를 낳고 이틀 만에 퇴원하고 집에 갔더니 나 보고 밥 해라고 아무것도 준비하고 있지 않던 사람이다. 산후 도우미는 다음날부터 오기로 되어 있어 결국 울면서 직접 미역국 끓이고 혼자 아기 목욕 시킨 기억은 평생 잊지 못할 상처다. 세월이 한참이 지나 내가 그때 일을 울며 얘기하자 정말 미안하다고 사과해 놓고도 아직 별 달라지지 않고 있다. 남편의 머릿속엔 아기를 막 낳은 산모는 밥을 직접 할 수 없지만 이제 늙은 마누라는 산모가 될 일이 없으니 밥을 못 할 일은 없다고 인식되어 있나 보다.



이번에도 평일이었음 그래도 좀 나았을 것을 하필 주말에 아픈 바람에 평소보다 더 많이 가족들 식사를 준비해야 했다. 마음 같아선 남편 밥은 본인이 알아서 챙겨 먹어라 하고 싶었지만 아이 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마스크를 쓰고 억지로 몸을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몸이 벌벌 떨려오는 걸 참아가며 아픈 허리와 등으로 간신히 서서 밥을 차려주고는 나는 그대로 쓰러져 굶고 있어도 남편은 혼자 밥만 잘 먹었다. 며칠 동안 멀건 숭늉으로 그것도 하루 한 끼만 겨우 먹고 빈 속에 약을 때려 넣는 이 처량한 신세를 남편은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저 내가 나중에 따로 챙겨 먹는 줄만 안다. 내가 아무리 아파 누워있어도 밥때가 되면 부인이 해주는 밥 얻어먹으러 내 주위를 어슬렁거리는 사람이다.



병원을 갔다 온 뒤 남편에게 말했다. 당분간 시댁에 가 있어라고. 그런데 이 아저씨가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 자기한테 코로나 옮길까 봐 시댁에 가라는 줄 알고 괜찮다고 한다. 온몸이 너무 아프다고 그리 얘기를 해도 남편은 내가 자기 밥은 차려줄 거라 생각하는가 보다. 단도직입적으로 도저히 내가 밥을 할 수 없으니깐 시댁에 가있어라 하니 그제야 알아듣는 눈치다. 그렇게 남편을 시댁으로 쫓아낸 지 벌써 5일째다. 평소 전화통화라곤 일절 없는 남편이 어쩐 일로 어제는 전화가 다 걸려 왔다.

"몸은 좀 어떻노?"

목은 약을 먹어 많이 좋아졌지만 등과 허리는 계속 아파 앉아 있기도 서있기도 힘들다고 볼멘소리로 말했더니 알았다고 그냥 전화를 끊어버린다. 알긴 뭐 알아? 아직 밥 얻어먹을 때가 멀었다는 걸?



가만 보면 남편을 그리 만든 건 내 잘못 또한 있지 않을까 싶다. 20년 넘게 살면서 아무리 아프고 힘들어도 꾸역꾸역 밥을 차려주니 남편이 저러는 게 아닐까 싶다. 우는 아이한테 젖 한번 더 물린다고 이제는 보다 당당히 요구해야겠단 생각이 든다. 몸이 너무 아파 움직일 수 없으니 내 밥 좀 챙겨달라고. 지난 며칠 동안 내가 집에서 먹은 음식이라곤 숭늉과 김치 라면 국밥이 전부다. 그것도 겨우 하루 한 끼. 다른 건 하기도 귀찮고 입맛도 쓰기에 먹을 수도 없었다. 아마 앞으로도 몸이 아플 때 찾을 음식은 이 두 가지가 아닐까 싶다. 죽처럼 어려운 음식도 아니니 이 정도는 남편에게 요구해도 부담되지 않을 것이다. 숭늉이야 물만 많이 넣고 좀 멀겋게 끓이면 되고 김치 라면 국밥도 신김치를 잔뜩 넣고 끓인 후 라면 반 봉지와 식은 밥 한 숟가락만 첨가하면 되니 남편도 쉬이 따라 하지 않을까 싶다.



언젠가 지인에게 남편에 대한 불만을 얘기했더니 내게 이런 반문을 했다.

"남편이 자길 때려요? 바람피워요? 월급을 안 가져다줘요?"

순간 우리 시어머니인 줄 알았다. 그래, 모든 게 완벽한 남편인지는 몰라도 내가 아플 때 빈말이라도 자기 밥보다 부인 밥을 걱정해 주는 따뜻한 한마디까지 기대하는 건 너무 지나친 욕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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