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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니 May 23. 2023

딱 맞아 다행이다

냄비 속을 들여다보니 살짝 염려스럽다. 수제 요거트에 섞어먹을 요량으로 냉동 블루베리로 만든 콩포드가 평소보다 양이 좀 많다. 한 김 식힌 후 유리병에 옮겨 담으려니 병 크기에 딱 맞을지 아님 한 두 스푼 정도 오버될지 확신이 잘 안 선다. 사실 처음부터 블루베리를 좀 많이 넣긴 했다. 항상 하던 것만큼 냄비에 붓고 니 봉지 속 남아있는 양이 너무 애매했다. 얼마 되지도 않는데 커다랗고 빳빳한 비닐 포장 때문에 여전히 냉동실 한켠의 제법 큰 공간을 차지하고 있을게 은근 신경 쓰였다. 에라 모르겠다 하고 모조리 냄비에 부어 콩포드를 만들고 나니 확실히 양이 많아졌다. 유리병과 냄비 속을 번갈아 바라보며 성공과 실패의 확률을 견주고 있는 사이 손은 어느새 숟가락을 들어 병에 콩포드를 담고 있다. 그리고 결과는... 휴, 정말 아슬아슬하게 성공했다. 다행이다. 딱 맞아서.




그리 대수로운 건 아니지만 음식을 밀폐용기에 옮겨 담을 땐 그 사이즈 선택에 있어 나름 날카로운 관찰력과 판단력이 필요하다. 요리가 완성되면 찬장 속 그릇들을 쭉 흩어본 후 그것에 딱 맞을 듯할 크기의 용기를 하나 집어든다. 그리고 그 결과에 따라 입꼬리가 씩 올라가기도 하고 때론 안타까운 탄성이 입에서 새어 나오기도 한다. 그래도 20년이 넘는 주부경력에다 남다른 눈썰미로 대부분 예상이 적중하지만 가끔 실패할 때도 있다.



내용물보다 넉넉한 크기의 용기를 고르면 실패할 확률은 전혀 없다. 하지만 정리를 그리 잘하는 것도 아닌데 무슨 심리에서인지 냉장고 안이 무언가로 꽉꽉 채워져 있음 왠지 답답하다. 냉장고 문을 열었을 때 적당한 여백의 미가 존재해야만 마음이 편안하다. 예를 들어 수박을 한 통 사와 냉장고에 넣어둔다고 하자. 언제든 시원한 수박을 꺼내 먹을 수 있기에 든든하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 조급함이 서서히 생기기 시작한다. 식구 수도 적고 모두 먹는 양이 많지 않아 2주 정도 지나야 겨우 한 통을 다 먹을 수 있다. 냉장고 속 수박이 차지하는 공간은 상당히 크지만 줄어드는 속도가 더디기만 하니 어느 순간 처리해야 될 과제처럼 와닿는다. 그렇다고 집에 수박이 떨어지는 건 싫고 반으로 쪼개파는 것에는 눈길조차 가지 않는다. 그래서 수박이 반 통이하로 남아 있을 때 든든함과 만족감은 최고조에 이르게 된다.



이런 유난스런 성격으로 인해 가급적 음식양과 딱 맞는 크기의 밀폐용기를 고른다. 심지어 가득 담긴 내용물이 점점 줄어들어 용기의 빈 공간이 꽤 생겼다 싶으면 얼른 더 작은 그릇에 옮겨 담아 냉장고 속 빈 공간을 더 많이 확보하려 한다. 그리고 또 하나, 넘치진 않지만 가득 담겨 가까스로 뚜껑이 닫힐 때 느낄 수 있는 짜릿한 쾌감이 다. 제일 안타까운 순간은 약간의 오차로 그릇이 음식물을 다 품지 못할 경우이다.



그럴 땐 잠시 갈등의 기로에 놓인다. 하지만 별 뾰족한 수가 없어 다시 선반 속 그릇들을 뒤져보지만 안타깝게도 적당한 크기가 없다. 그때부터 남은 것들은 이미 그릇 속에 안착한 것과는 전혀 다른 신세가 된다. 양에 비해 터무니없이 큰 용기에 담겨 냉장고 속 한 자리를 떡하니 차지한 눈꼴시린 존재로 전락한다. 처음 그릇에 꽉꽉 눌러 담긴 건 천천히 아껴먹어야 되는 존재로 반면 초과된 것은 빨리 해치워버려야 할 대상으로 신분이 나눠진다. 참 이상하다. 똑같이 다 내 품이 들어간 게 맞지만 스스로가 만든 경계에 포함되고 안되고 따라 그것들을 대하는 자세가 달라져 버린다.



가만 생각해 보니 내가 사람을 대하는 방식도 비슷한 것 같다. 가진 그릇에 비해 지나치게 대단하다 싶은 사람이면 그 초과분만큼 불편함을 느낀다. 쉽게 경계를 허물지 못한 채 주변만 겉돌며 진정한 관계로 발전시키기 어려워한다. 그 반대의 경우도 편치 않긴 마찬가지다. 뭔가 성에 차지 않는다 싶으면 내 그릇의 남는 공간만큼 상대를 넉넉히 품어주는 게 아니라 굳이 그릇의 크기를 바꾼다. 그리고 줄어든 내 그릇을 허무하게 바라보며 이 관계를 계속 지속해야 할 이유를 찾아 이런저런 고민에 빠진다.



잠시 내가 가진 그릇은 어떤 건지 또 그 크기는 얼마인지 생각해 본다. 예전과 달리 별 고민 없이 내 그릇이 가진 장점들이 떠오르는 게 확실히 단점들보단 수적으로 우세하다. 그다지 크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눈에 띄게 작지도 않다. 세상 어느 사람들처럼 장점과 단점이 골고루 섞여 나라는 그릇의 정체성을 이루고 있다. 다소 까탈스러운 성격이긴 하나 스스로를 자책할 필요까진 없다고 나 자신에게 말을 건넬 만큼 지금 내 마음은 제법 단단해져 있다. 상대가 너무 커 보여 부담스럽다는 건 순전한 내 자격지심 때문만이 아닌 그 사람이 은근 잘난 척을 해서 그럴 수 있다, 내 그릇의 크기를 줄여가며 관계를 이어가는 건 상대를 위한 나의 배려 때문일 수도 있다 그렇게 날 다시 토닥인다. 마지막으로 진심 어린 따뜻한 조언을 덧 붙이는 것도 빼먹지 않고.



'자주 먹으면 몸에 해롭지만 한 번씩 꺼내 먹으면 입맛을 살려주는 장아찌나 젓갈 반찬 같이 가끔 만나면 좋은 사람들이 있어. 네 그릇에 다소 부족하다 싶은 사람들은 그냥 그렇게 가끔씩 만나 좋은 관계로 이어가면 어떨까. 그리고 네게 넘치는 사람이다 싶으면 배울 건 배우고 따라 할 건 따라 해서 이번 기회에 자신이 가진 그릇의 크기를 키울 기회로 삼아봐. 너도 그리 부족한 사람은 아니니 괜히 주눅 들지 말고. 만약 그냥 겉만 요란한 사람이다 싶으면 안 그래도 비좁은 네 마음속에 애써 공간을 내주려 하지 말고 그냥 비워버려. 너무 딱 맞는 사람만 고르려 하지 마. 네 남편이랑 너도 그리 맞는 구석은 없지만 20년 이상 별 탈없이 잘 살고 있잖아.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정말 너랑 딱 맞는 누군가를 만날 행운이 올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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