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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니 Dec 06. 2023

오랜 친구

"어, 됐네. 됐어. 정말 대단하다. 수고했어"

남편의 노고에 진심 어린 감사의 표현을 한다. 덕분에 올 한 해는 또 그런대로 넘길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테이프와 노끈으로 겨우겨우 연장된 수명이라 그리 오래가진 못할 것이다.

'친구, 그래도 내년까진 어떻게든 버텨줘'



12월이 되어 딸아이의 바람대로 크리스마스트리를 장식하기로 했다. 사실 며칠 전부터 계속 아이의 재촉에 시달리고 있는 중이었다. 학교에선 나름 의젓하고 말 수 적은 고2 모범생이지만 엄마 앞에서는 여전히 어린아이처럼 떼를 쓴다. 더 늦으면 기말고사 때문에 짬을 낼 수 없다 하여 결국 지난 토요일을 D-day로 잡았다.



작년 언젠가 트리를 유심히 바라보던 아이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트리가 기울어져 보이는 건 내 기분 탓인가?"

그러고 보니 내 눈에도 그리 보였다. 시간이 지나자 기울임은 점점 더 심해져 무언가 특별한 조치를 하지 않음 곧 큰 사태로 이어질 게 분명했다. 자세히 보니 트리 몸체와 받침대를 연결하는 부분에 금이 가 벌어져 있었다. 이미 꽃단장을 다 한 상태라 다시 분해하여 손을 보기엔 너무 번거로웠다. 무거운 아령으로 넘어지지 않게 받쳐주고 박스 테이프로 벽에 고정시킨 후 아슬아슬하게 크리스마스를 보냈다.



비닐에 꽁꽁 싸맨 트리를 풀고는 작년에 문제가 된 부분을 꼼꼼히 살펴보았다. 연말을 보낸 후 창고에 넣기 전 금이 간 부분을 강력 접착제로 바르고 잘 고정되게 테이프로 칭칭 감아 둔 채 1년을 묻혀두었다. 언뜻 보기엔 그런대로 괜찮아 보이지만 그래도 전구와 각종 오너먼트를 걸기 전 다시 한번 점검이 필요하다. 실컷 시간과 정성을 들여 꾸며놨는데 여차하는 순간 그대로 넘어지는 대형 참사가 일어나선 안될 것이다. 점심 설거지 당번인 남편이 이런 일엔 나보다 더 제격이라 대신 설거지를 해주기로 하고 그 일을 맡겼다.



"이런, 안 되겠다. 완전히 깨졌어"

설거지를 하는 동안 등 뒤에서 남편의 당황해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금이 간 곳이 아예 떨어져 나갔나 보다.

"방법이 없겠는데..."

그릇을 닦는 내내 마음이 착잡하기만 하다.  



28년 전 12월의 어느 쌀쌀한 저녁 엄마와 난 장바구니 캐리어를 끌고 국제시장으로 향했다. 당시 없는 게 없던 그곳에서 우리의 발걸음이 멈춘 곳은 크리스마스 용품을 파는 제법 큰 규모의 가게 앞이었다. 가게 밖에 크기별로 다양하게 진열되어 있는 트리를 바라보던 내 눈엔 아마 감격의 기쁨이 넘쳐 흘렸을 것이다.



집에선 모든 게 자기 뜻대로여야 하는 아버지가 지병으로 돌아가신 지 아직 2주도 채 지나지 않았다. 그는 집안에 크리스마스 장식이 있는 걸 유독 질색했다. 안타깝게도 내 나이 25살까지 그런 것 하나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내 집이 아니라 그의 집이란 이유로. 그곳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대학을 서울로 가거나 타 지역에서 직장을 구하는 수밖에 없었지만 머리도 재주도 용기도 모두 부족했다. 그저 모든 걸 감내하고 쥐 죽은 듯 지냈다. 그의 죽음은 슬픔보단 새롭게 펼쳐질 앞 날에 대한 기대감으로 날 설레게 했다. 누군가의 눈치를 보지 않고 내가 번 돈으로 내가 사고 싶은 걸 맘껏 살 수 있다는 게 참 즐거웠다. 키 큰 트리와 각종 장신구, 전구 등을 취향껏 골라 캐리어에 싣었다.



설거지를 마친 후 남편옆으로 다가가니 걱정과 달리 기대이상으로 튼튼하게 고쳐져 있다. 남편은 마지막으로 노끈을 이용해 한번 더 고정시키고는 뿌듯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트리를 잡고 살살 흔들어본다.

"이 정도면 튼튼해서 넘어지는 일은 없을 거야"

내 눈에도 이번 크리스마스가 지날 때까진 잘 견딜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테이프로 칭칭 감기고 노끈으로 마무리된 곳은 천으로 가리면 감쪽같을 것이다.



"어, 왜 이리 작아 보이지? 엄마 키는 얼마야? 엄마보단 큰가?"

내가 작다고 놀리는 건지 자기가 많이 크다고 자랑하는 건지 그 의도는 확실치 않지만 아이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순 있다. 반짝이는 전구를 잡기 위해 그 아래를 버둥거리며 배밀이로 돌아다니던 아기가 어느새 170센티 가까이 자랐으니 140센티의 트리가 작아 보이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이젠 점점 쪼그라들고 있는 내게도 마찬가지다. 나의 오래된 친구가 매년 작아지고 왜소하게 비친다.



아픈 곳은 천으로 가릴 수 있지만 나이는 어떻게 할 수가 없다. 그게 사람이든 물건이든 다 마찬가지다. 요즘 판매되는 트리와 비교해 보면 아무리 오래된 친구라도 구닥다리처럼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빈티지라 우기고 싶지만 이젠 그것도 다소 무리다. 2년 후 이사 갈 때를 맞춰 좀 더 크고 풍성한 걸로 새로 구입할까 고민도 된다. 하지만 그게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을 게다. 저 친구와 함께 한 시간이 그렇지 않은 날보다 더 많아졌다. 쉽게 정을 뗄 수 있을까. 지금도 저 친구를 처음 만나러 가던 28년 전 그때가 이리도 생생한데.



딸아이는 요즘 시험공부로 여유가 없어 그리 정성스레 꾸민 트리를 쳐다보지도 않고 있다. 오히려 아파트 관리실 앞에 설치된 조명만으로 이루어진 트리의 화려함에 푹 빠져 있다. 하지만 나의 친구는 서운함을 내색 않고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리고 곧 다가올 크리스마스 때도 여느 해처럼 우리 가족을 포근히 감싸주며 행복해져라 행복해져라 주문을 걸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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