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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니 Jan 04. 2024

우린 다시 잘 시작할 게다

옛말 그른데 하나 없다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는 듯하다. 지금 우리 집 상황은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는 소리가 무색하게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난 자리'를 그다지 인식하지 못하고 지낸 시간들이 어느새 쏜살같이 지나고 다시 들 그 자리 때문에 모두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 제일 긴장하고 있는 건 바로 나다.



큰애와 짐을 싣고 오기 위해 남편은 아침 일찍 차를 몰고 집을 나섰다. 꽤 거리가 있는 곳이라 저녁때가 되어서야 집에 도착할 것이다. 그동안 난 아이방에 남아 있을 남편의 흔적을 모두 찾아 없앨 생각이다. 비워져 있던 아이의 방은 남편의 공간으로 요긴하게 사용되고 있었다. 남편이 대부분 정리하긴 했지만 분명 뭔가를 또 흘러놓았을게다. 이젠 더 이상 별 감흥이 나지 않는 크리스마스트리도 두 남자가 오기 전 다시 창고에 집어넣어야 한다. 아이가 돌아오는 것만으로도 집은 북적거릴 텐데 최대한 모든 걸 깨끗하게 정리해 두고 싶다. 어쩜 일종의 소리 없는 경고일지도 모른다.

'봐, 엄마는 이렇게 깨끗하게 정리하고 살아야 되는 사람이야'

눈치 없는 놈이라 알아챌는지는 모르지만.



아이가 자취를 시작한 건 정확하게 2년 7개월 전이다. 그동안 집에 전혀 안 온건 아니지만 방학 때라도 기껏해야 1주일을 채 넘기지 않고 자취방으로 돌아갔다. 잠시 있다 곧 떠날 아이기에 이래저래 거슬린 구석이 있더라도 그저 손님처럼 대했다. 손님에게 감히 지적질하고 화를 낼 순 없다. 아이가 집에 머무르는 동안은 봐도 못 본 척 들어도 못 들은 척 최대한 눈과 귀를 닫고 지냈다. 생활패턴이 나랑 전혀 맞지 않아 입 댈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지만 머리통이 굵어질 대로 굵어진 다 큰 아이와 부딪히는 일은 가급적 피하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이젠 아무런 기약 없이 한 지붕 아래서 같이 지내야 한다. 게다가 아이도 나도 맘이 그리 편치 못한 상태다.



지난 11월 초등 임용 시험을 치른 아이는 1차 관문에서 이미 탈락의 쓴맛을 봤다. 같은 학교를 다니는 여자친구는 물론이고 친한 동기들도 대부분 1차는 통과하고 2차 준비에 여념이 없는 눈치다. 내색은 안 하지만 본인의 노력 여부와는 별개로 속은 약간 상할 것이다. 이제 졸업까진 두 달가량 밖에 남지 않았고 다른 동기들처럼 면접 준비를 위한 스터디도 없으니 더 이상 학교가 있는 그곳에 머무를 이유가 없다. 어차피 자취방 계약도 10일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코로나 학번이던 아이가 드디어 집을 떠나게 되었을 때 정말 기뻤다. 그보다 더 좋은 건 남편의 모습이 내 시야에서 사라진 것이었다. 항상 거실에 이불을 깔아 두고 시도 때도 없이 누워있는 것도 아무도 보지 않는 TV를 혼자 껴 앉고 지내는 것도 모두 눈에 거슬렸다.  아이 방에 그의 분신과도 같은 이불과 TV까지 넣어 주었다.



아이가 돌아온다는 건 모든 게 다시 예전으로 돌아간다는 걸 의미한다. 방바닥 무늬가 뭔지 알아보기조차 어렵게 너즈러져 있을 많은 옷과 짐들, 비록 한국에 살지만 미국 시간에 맞춰 사는 요상한 모습, 자신의 일에 간섭하는 건 질색하지만 정작 귀찮은 것들은 엄마, 아빠가 대신해 주길 바라는 아이러니한 행동 등등 생각만 해도 벌써부터 갑갑해져 온다. 아무리 자기 새끼지만 떨어져 살며 가끔 보는 게 더 반가울 수도 있는 법이다. 아울러 아이방에 머물려 있던 남편의 활동영역이 다시 거실로 옮겨질 것이다. 하루종일 거실에 이불을 깔고 누워 TV 보는 그 모습을 또 지켜봐야 한다.



앞으로의 변화가 염려스러운 건 나뿐만이 아니다. 이제 곧 고3이 되는 딸아이가 제일 걱정이다. 이성인 오빠가 아무래도 신경 쓰일 테고 오롯이 자기에게만 쏟아지던 내 관심이 분산되는 것도 못마땅할 것이다. 게다가 개방형 구조 아파트라 모든 소리를 가족들이 공유해야 한다. 밤마다 친구들과 온라인 게임을 하는 큰애가 만들어 내는 소음은 자기 딴엔 조심한다 해도 나 역시 귀에 거슬린다. 큰애는 큰애대로 혼자 맘대로 지내다 다른 가족들 눈치 보며 사는 게 여간 갑갑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각자의 경계를 미리 정리해 둘 필요가 있다. 아이에겐 차후 얘기를 건네보고 일단 남편에게 양해를 구했다. 사실 경고에 더 가깝지만.



"공부해야 하는 아이가 둘이나 있으니 더 이상 거실에 이불을 깔고 누워 있는 모습은 피해 줘. 아이들이 있을 땐 TV 보는 것도 좀 자제해 주면 좋겠는데. 그리고 지가 뭘 하든 큰애 방에는 가급적 들어가지 마. 혹시 아이와 나 사이에 무슨 갈등이 생기더라도 절대 아이에게는 역정 내지 말고"

남편은 별 이견 없이 내 의견을 따라주기로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버거운 밥 하는 일까지 남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본격적인 갱년기에 접어든 요즘 음식 하는 일이 더욱 성가신 일이 되었다. 장을 보고 다듬고 요리하고 설거지와 뒷마무리까지 엄청난 시간과 노동이 요구된다. 얼마 전 김장을 할 때도 한숨을 몇 번 쉬었는지 모른다. 근무 시간이 남들과 다른 남편은 하루 세끼 대부분을 집에서 먹는 일명 '삼식이'다. 집밥을 먹는 게 아주 큰 행복인 사람이다. 외식이라곤 그저 두 달에 한번 정도 치킨 포장해 와서 먹는 게 전부다. 내가 장을 봐오면 오늘은 또 뭘 먹게 될는지 궁금해 뒤져보기도 하고 부엌에서 무언가 요리하고 있음 어느새 가까이 와 곁 눈으로 슬쩍 확인하고 간다. 그렇다고 부인이 해준 음식에 후한 평을 해주는 사람도 아니다. 거한 트럼으로 만족감을 대신하는 정도다. '맛있다, 고맙다, 잘 먹었다' 이런 소리는 기대조차 하지 않는다.



"나 안 그래도 밥 하는 게 힘들어 죽겠는데 이제 더 신경 써서 차려야 하는 게 너무 싫어. 애들 때문에 대충 차릴 수도 없고"

심각한 내 목소리에 그도 다소 긴장하며 내 눈치를 살핀다.

"그럼 어떡해. 어쩔 수 없는 일인데"

"좀 도와줘. 1주일에 몇 번이라도 점심을 맡아줘"



먹는 것만 할 줄 알지 요리하는 걸 질색하는 남편은 얼떨결에 1주일에 두 번 점심을 담당하기로 했다. 25년가량 같이 살아본 결과 빈 말 잘하는 사람인 걸 알기에 나중에 딴소리 못하게 단도리를 잘해야 한다. 달력을 가져야 가능한 날짜에다 직접 마킹하게 했다. 아이들에게도 이 사실을 서둘러 통보했다.



어느 정도 집정리가 모두 끝나자 이젠 잠시 후 도착할 남편과 아이를 위한 저녁을 준비할 차례다. 임용 시험을 치르고 늦은 점심으로 장어구이를 맛있게 먹던 모습이 생각나 미리 장만해 두었다. 그때 갔던 일식집만큼은 아니지만 제법 그럴싸하다. 아이나 남편 모두 좋아할 것이다. 제 아빠와는 달리 아이는 엄마가 만든 건 뭐든 맛있다고 한다. 기특한 놈...



그래, 기특한 면도 많은 아이다. 사실 작은애와 달리 큰애를 생각하면 미안함이 앞선다. 매번 서툰 엄마였기에 아이맘을 헤아릴 생각은 않고 그저 다그치기만 했다. 따뜻하게 안아주기보단 별 일 아닌 일에도 쉬이 목소리를 높였다. 겁을 잔뜩 집어먹은 눈으로 엄하기만 한 엄마를 바라보던 어린 아들의 모습이 가끔 떠오른다. 도대체 그땐 왜 그랬을까. 아이가 모두 기억하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더 늦기 전에 분명 아이에게 사과할 시간이 필요하다.



다시 찬찬히 생각해 보니 미리 겁부터 집어 먹을 이유는 없을 것 같다. 이제 곧 아이가 내게서 완전히 독립할 때가 올 것이다. 어쩜 당분간이 우리가 같이 지내는 마지막 시간임과 동시에 나의 지난 과오들을 만회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욕심만 많은 못난 엄마지만 아이 기억 속에 따뜻한 사람으로 고 싶다. 아이와 나 분명 같이 잘 지낼 수 있을 게고 다가올 새해엔 우리 가정에 행복한 일이 가득할 것이다. 꼭 그렇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길 위해 엄마로서 최선을 다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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