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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니 Feb 26. 2024

한 청년의 군입대를 바라보는 두 여인의 다른 반응

"혹 여자 친구가 울지는 않아?"

"볼 때마다 울지"

 농담 삼아 그냥 던진 말인데 생각도 않은 대답을 들은 터라 깜짝 놀라 다시 되묻는다.

"뭐? 볼 때마다 운다고?"

"응"

시큰둥한 아이의 목소리를 봐서는 참말인가 보다.

"그럼 너도 옆에서 같이 따라 울어?"

혹시나 해서 슬쩍 물어본다.

"아니, 난 누가 울면 따라 울진 않아"

같이 울고 싶지만 참는다는 말인지 그런 일로는 울지 않는다는 말인지 아리송하지만 아이들 연애에 더 이상 궁금해하지 않기로 한다.




작년 12월 졸업을 앞둔 겨울 방학, 그간의 자취 생활을 모두 정리하고 아이는 짐을 싸서 집으로 돌아왔다. 얼마 전 초등 임용 불합격 통보를 받았기에 앞으로 집에서 공부하며 재도전을 준비할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아이 입에서 나온 소리는 뜻밖이었다. 군에 입대하겠단다. 코로나가 한창이라 집에서 온라인 수업할 때는 그렇게 군에 가라 해도 원래 교대생들은 임용합격하고 가는 거라 큰소리치더니만.



아이의 말인즉 평생 교사노릇하며 살 건데 너무 빨리 시작하고 싶진 않단다. 그런 소리는 임용에나 합격하고 나서 해야 되는 소린데 어째 순서가 살짝 뒤바뀐듯하다. 물론 아이의 맘이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요즘 교대나 초등교사에 대한 선호도는 아이가 입학할 당시와는 비교가 안되게 추락되어 있다. 게다가 MZ세대 초등교사 반 이상이 교단을 떠나고 싶어 한다니 당사자는 오죽하랴 싶다. 하지만 달리 방법도 없다. 본인 입으로 초등교사가 적성에 맞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다.



잠시 쉬는 시간을 갖고 싶단다. 그런데 그냥 쉰다고 하면 내가 뭐라 할 것 같고 어차피 가야 하니 차라리 군대부터 갔다 오겠단다. 머리가 굵어질 대로 굵어진 놈에게 이래라저래라 할 수도 없고 그래 본들 내 말을 귀담아듣지도 않을 거다. 그러나 다른 것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나 공부는 중간에 끊었다 다시 시작하는 게 그리 쉽지 않다. 본 요리에 앞서 오븐을 미리 예열하듯 모든 일엔 몸을 달구는 시간이 필요하다. 기껏 달궈놓은 몸을 식히고 다시 데우기까지 낭비되는 시간이 있는데 그건 안중에 없는 듯하다. 사실 뭐 그리 열심히 하지도 않았기에 식히고 할 것도 없긴 하지만.



잠시 까마득한 내 젊은 날을 뒤돌아본다. 그땐 대학을 졸업하면 무조건 취업해야 하는 형편이라 감히 쉬고 싶다는 생각을 가질 수도 없었다. 취업이 바로 되지 않아 그 직전까지 한식 뷔페에서 설거지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근무 후 공짜로 먹던 그 맛있던 밥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하지만 모든 현실을 무시한 채 눈 딱 감고 1, 2년 정도 그토록 바라던 배낭여행을 떠났더라면 어땠을까. 아마 그 여정의 끝엔 많은 게 달라져 있을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을 테고 이후 내 인생에 크고 작은 다양한 긍정적인 변화들이 찾아왔을게다. 지금 생각해 보면 기나긴 인생에 있어 그 시간들은 그리 긴 것이 아니다. 그때 떠났어야 했었는데...



방황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군에 가겠다는데 굳이 반대할 이유는 없다. 그렇지만 해마다 대폭 줄어들고 있는 임용 채용 규모를 들먹이며 마음을 돌리도록 한 두 번 살살 꼬드겨 보았다. 도피성 입대가 전혀 아니라고는 말 못 하지만 그래도 오로지 그게 이유라면 제대하더라도 달라지는 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마음을 굳힌 아이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아마 18개월 후에는 더 이상 예전의 그 게으름뱅이가 아닌 듬직하고 성실한 아들이 되어 내 앞에 서있을 거라고 스스로를 세뇌시키고 있는 중이다. 그렇게 아이는 서둘러 추가 지원을 하여 집에서 머나먼 강원도 인제에서 훈련병을 시작으로 군생활을 하게 되었다.



 

아이에겐 여자친구가 있다. 이제 한 달가량 되었다고 내게 고백한 지가 얼마 전 같은데 벌써 2년이 지났다. 그리 야무지지 않은 우리 아이와 다르게 여자친구는 이번 임용시험에 합격했다. 최종 발표날 여자친구의 합격 소식을 전하며 자신의 일처럼 들떠 좋아하던 모습에 사실 속에서 열불이 살짝 났다.

'이 놈아, 네가 합격한 게 아니고 니 여자친구가 합격한 거야. 진작에 따라다니며 열심히 해서 같이 좀 붙지'



여자친구 입장에서는 이제 큰 일을 모두 끝내고 맘 편히 데이트를 즐길 여유가 생겼는데 그동안 거의 매일 보던 남자친구를 18개월가량 못 보게 되었으니 분명 허전할 것이다. 게다가 인제까지는 너무 멀어 면회 가는 것도 쉽지 않다. 무엇보다 둘 다 자취생활을 마무리 짓고 집으로 돌아가 교편생활도 각각 다른 지역에서 할 예정이라 예전처럼 자주 보는 일은 앞으로도 힘들 것이다. 여자친구 집에서 우리 집까진 차로 5시간 이상은 걸린다. 귀찮은 놈 떼어놓고 싶은 맘에 여자친구가 사는 지역에 임용을 지원할 의사는 없는지 넌지시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본인이 무슨 차도남이라도 되는 듯 여기보다 상대적으로 너무 조용한 곳이라 싫단다. 아직 20대 초반인 아이들이라 결혼을 언급하는 것도 너무 이르다. 그러다 보니 요즘 만나면 계속 우는가 보다.



비교적 감수성이 풍부하고 눈물이 많은 편이라 자칭 울보 엄마라고 생각해 왔다. 임용 시험 다 치르고 교문을 나서는 아이가 안쓰러워 그 앞에서도 주착스럽게 눈물을 보였다. 저 공부하기 싫어하는 놈이 그래도 책상에 앉아 몇 자 들여다본다고 얼마나 고생했을까 싶어서. 하지만 이상하게 아이 입대에 관한 한 눈물이 좀 야박하다.



걱정이나 슬픔 따윈 전혀 없다. 게다가 저만 하는 것도 아니고 대한민국 남자라면 BTS든 누구든 다 해야 하는 의무다. 오히려 군대에 간다고 하니 한시라도 빨리 갔음 하는 마음뿐이다. 아울러 다시 내게 돌아올 18개월의 꿈같은 자유가 너무나 감사하다. 내심 군대 가서 고생 실컷 하고 정신 무장 단단히 받아 제발 철 좀 들어오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어째 엄마가 되어서 군에서 고생할 아들 생각은 전혀 않냐고 의아해 할 수도 있을 게다. 하지만 집에선 한없이 게으르고 자기 것 밖에 모르는 철없는 아이의 모습을 본다면 지금 콩깍지가 씌었을 여자친구도 내 맘을 좀 이해해주지 않을까 싶다.



내 지난날엔 안타깝지만 군대 간 애인을 기다려 본 기억도 가져본 기억도 없다. 그래서 여자친구의 마음이 이해는 가지만 그 슬픔의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 정확하게 헤아리진 못한다. 아마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둘 사이가 더 각별할 수도 있다. 당장은 둘 다 힘들 테지만 앞으로 펼쳐질 그들의 눈부신 미래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이별의 기간이다. 보다 성숙한 모습으로 돌아와 아무쪼록 그 시간들이 헛되지 않길 바라며 아이에게 한 마디 남긴다.

'이놈아, 제발 철 좀 들어서 돌아와. 나중에 니 여자친구한테서 아들 잘못 키웠다는 욕 안 들어먹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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