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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니 Apr 28. 2024

응어리가 없다니 다행이다

"그래서 자기는 뭐라고 대답했는데?"

갑자기 따지듯이 묻는 그녀의 어투에 순간 당황스럽다. 그녀는 아는지 모르겠다. 지금 날 향한 특유의 그 냉랭한 눈빛이 나로 하여금 언제나 일정한 거리를 두게 한다는 걸. 턱까지 살짝 치켜든 채 내가 뭐라 말하든 나무랄 기세다.



그녀로 말할 것 같으면 모든 대본이 머릿속에 다 들어있는 사람이다. 어떤 상황이라도 논리적으로 딱 부러진 소리만 다. 보편적인 얘기를 하고 있는 건지 순전히 개인적인 생각을 우기고 있는 건지 그건 차후의 문제다. 어쩜 저렇게 단 한 번의 막힘도 없이 자신의 논리를 설득력 있게 펼칠 수 있는지 그저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그녀가 몰아세우면 하지 않은 짓도 내 잘못이라 사과해야 할 판이다. 본인 말로는 우스개 소리로 가스라이팅도 잘한다는데 그 말에 단 1%의 의심도 가지지 않는다. 게다가 상황판단이 아주 빠른 영리하고 빈틈없는 사람이다. 평소 생각해두지 않은 것이면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허둥대다 결국 앞 뒤 맞지 않는 소리만 해대는 나 같은 멍청이와는 결이 완전 다르다.



큰 영어 학원을 2년 전까지 꽤 오랫동안 운영했다 하더니 지금 마치 날 자신의 학원 학생 다루듯 하고 있다. 아이를 혼내기 전 뭘 잘못했는지 먼저 말해봐라 한 후 무슨 소리가 나오나 지켜보고 있는 모양새다. 묘한 주눅이 든다. 하지만 그녀의 기세에 말려들 싫어 어떻게든 말을 돌려보려 애쓴다.

"그냥 이런저런 핑계 없이 솔직히 말했죠"

사실 몇 년 전 일이라 뭐라 말했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 데다 갑자기 추궁까지 당하니 머릿속이 더 하얘진다. 그저 이쯤에서 제발 그만두기 간절히 바라지만 그녀에겐 어림없는 일이다.

"그러니깐 아이가 그렇게 말했을 자기는 뭐라 말했냐고?"



기어이 내 대답을 듣고 말겠다는 듯 끝까지 고삐를 놓지 않는 그녀 앞에서 결국 버벅거리다 횡설수설하게 된다. 지은 죄가 있으니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변명을 해볼까 머리를 굴러보지만 역시 내겐 역부족이다. 그녀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내 그럴 줄 알았다는  이내 날 나무라기 시작한다. 물론 그리 떳떳하진 않았기에 그녀의 질문이 다소 부담스러웠고 내가 들어도 시원찮은 답을 했다. 하지만 지금 그녀의 충고가 고맙다기 보단 왜 이리 불편한지 모르겠다. 물론 그녀 같은 달변가가 아닌 탓에 당시 아이의 속상한 마음을 잘 다독이지 못한 점은 나 역시 안타깝게 여기는 부분이다. 그런데 정말 내가 그리 큰 잘못을 한 걸까.




세 명이 모여 점심을 먹고 있는 중이었다. 그중 한 명이 친구가 자기에게 전화로 하소연한 사연을 들려주었다. 얘기인즉 친구의 아들이 취업하자마자 부터 테슬라로 대뜸 뽑니 몇 달 다니지 않고 이내 회사를 그만두었단다. 좋은 대학에 유학까지 다녀온 부족함 없이 키운 아들인데 조금만 뭐가 안 맞으면 쉽게 일을 그만둔다고 친구가 걱정이 많다고 했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의 가정사인데 그냥 그런가 보다 가만 듣고 있으면 될 것을 순간 쓸데없는 입방정을 떨고 말았다.



"가만 보면 애들 키울 땐 약간의 결핍도 필요한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우리 애들은 나한테 원성이 자자하지만"

아이들에게 못해 준 것에 대한 변명이 아니라 물질적으로 풍요롭게 자란 아이보다 다소 부족하게 자란 아이들이 여러 면에서 더 나을 수 있다는 생각을 평소 가지고 있다. 적당한 결핍은 살아가는데 많은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된다. 결핍을 겪어봐야 작은 것에 대한 소중함과 기쁨을 발견할 수 있고 나중에 큰 기쁨을 만나게 되었을 때 진심으로 기뻐할 수 있다. 게다가 결핍은 아주 좋은 동기부여다. 그런데 다소 과한 표현으로 그녀가 내 말에 반론을 제시한다. 그 결핍 때문에 아이들 가슴에 응어리가 맺힐 수도 있다고.



무슨 애정 결핍도 아니고 그저 금전적으로 조금 풍족하지 못한 것 가지고 응어리까지 운운하다니 그녀가 그런 생각을 가진다는 게 오히려 놀라웠다. 한편으로 넉넉한 집안에 장녀로 자랐다는 그녀가 진짜 가슴에 응어리지는 빈곤의 결핍이 뭔지 알기나 할까 하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런데 가만 들어보니 평소 내가 아이들에게 해주지 못했다고 한 것들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었다.



사실 좀 당황스럽다. 그렇다고 내가 우리 아이들을 헐벗겨 키운 건 전혀 아니다. 요즘 아이들이 워낙 물질적 풍요 속에 살다 보니 상대적으로 좀 부족해 보일 뿐이지. 똑같은 해외여행이라도 유럽을 가느냐 동남아를 가느냐, 별 5개짜리 호텔이냐 3개짜리 숙소냐 그 정도의 차이라 생각한다. 물론 자세히 들여다보면 엄청난 차이가 있긴 하다. 하지만 그런 것 때문에 아이 가슴에 응어리가 생긴다는 것도 아울려 자식이 그렇게 될까 봐 부모가 염려해야 한다는 것도 나에겐 참 생소한 것들이다.



결국 예전에 딸아이가 친구네처럼 글램핑을 가고 싶다 했을 때 내가 들어주지 않은 일로 꼬투리가 잡혔다. 아이가 그런 얘기를 했을 때 뭐라 말하면서 안 된다고 했냐고. 그깟 글램핑 간다고 가계부에 큰 지장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그 정도는 충분히 가 줄 있었을 텐데 왜 그랬냐고 날 나무랐다. 친구가 그런 곳에 갔다 오니 부러워서 그러는 건데 한 번쯤 데리고 가서 아이 스스로 글램핑이 어떤 건지 느끼게 해 주지 그랬냐고. 아이 둘을 영국에 1년씩 보냈다는 그녀에겐 나의 태도는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것이었다.



그녀의 얘기는 하나도 틀린 게 없다. 글램핑이 돈이 좀 들긴 해도 한번 갔다 온다고 우리 집 경제가 휘청이진 않는다. 럭셔리 크루즈 여행을 갔다 온다고 해도 그녀처럼 아이를 1년간 영국에 보낸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그녀를 만족시킬 만큼 모범적인 답변으로 아이를 달래지도 못했다. 의사 아빠를 둔 그 친구 집이 하는 걸  모두 다 따라 할 순 없다고 솔직히 얘기했었다. 대신 나중에 대학 가서 친구들이랑 가게 되면 엄마가 지원해 주겠다는 말을 덧 붙였다. 그때 아이가 작은 소리로 엄마랑 가고 싶어 그러는 거라고 투덜대던 게 기억난다. 돌이켜보면 아이에게 참 미안하다.



"언니 말이 맞네요. 갈려면 충분히 갈 수 있었는데 금전적인 것보다 사실 제가 가기 싫어서 그랬던 것 같아요. 제가 잘못했네요"

이렇게 얘기하자 그제야 그녀는 흡족한지 그 매서운 눈매를 거두고 보다 부드러운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분명 아이 마음에 그 일로 응어리가 져 있을 거라고. 하지만 그녀와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그놈의 '응어리'라는 단어가 내 가슴속에 응어리지기 시작했다.



사실 어디 글램핑뿐일까. 아이의 휴대폰도 대부분의 친구들이 쓰는 것과 달리 아이폰이 아니다. 새것처럼 보이긴 하지만 그마저도 중고 마켓에서 산 것이다. 친구들은 에어팟을 사용하지만 아이는 고등학교 1학년 크리스마스가 되어서야 국내 무선 이어폰을 갖게 되었다. 반 친구들이 하도 떠들어서 공부에 집중이 안된다 하여 노이즈 캔슬링 기능이 있는 걸로 마련해 주었다. 그전까진 다이소에 산 분홍색 유선 이어폰을 고장 없이 5년간 사용했었다. 비싼 가방이나 옷, 신발 등은 우리 아이와는 거리가 먼 것들이다. 학원도 인강만 수강 신청해 줬지 그 외는 한 번도 보낸 적이 없다. 아마 용돈도 친구들보다 훨씬 적은 액수일 게다. 그녀의 말대로라면 지금 그 응어리들이 뭉치고 뭉쳐져 크나큰 바위 덩어리로 변해 아이의 마음을 답답하게 누르고 있을 게 분명하다.



며칠 동안 그 응어리란 단어가 날 계속 답답하게 눌렸다. 아이의 마음이 정말 그러한지 만약 그렇담 내가 어떻게 그 단단한 덩어리를 어루만져 풀어줘야 할지 뭐 하나 제대로이지 못한 엄마이기에 생각이 많아졌다. 하지만 그런 것 때문에 아이가 깊은 상처를 받았다면 내가 너무 슬플 것 같았다. 아이에게 맺힌 응어리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른 이유로 더. 아이의 맘이 어떤지 궁금해졌다.



따뜻한 이불속에 나란히 누워 아이가 좋아하는 쓰담쓰담을 해준다. 이제 고3이나 된 놈이 마치 고양이 마냥 내가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고 엉덩이를 두드려주는 걸 좋아한다. 눈을 감고 엄마의 온기를 가만히 느끼는 아이에게 물어본다.

"혹시 너무 하고 싶은 게 있는데 엄마가 안 해줘서 가슴에 응어리 진 건 없어?"

"아니, 없는데"

"전에 글램핑 가고 싶다고 했잖아?"

"이제 그거 안 가고 싶어 졌어"

"엄마가 해줬음 하는 다른 건 없어?"

"없어, 담에 생기면 얘기할게"

"꼭 해줘"

"응"

다행이다. 그동안의 걱정이 무색하게 아이는 단단하게 잘 자라 있다.



사실 내가 해결해주지 않은 결핍으로 인해 아이가 겪는 불편한 점은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아이 몫으로 남겨 두고 싶다. 궁상맞은 엄마 때문에 아이는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을 갖길 원한다. 다행히 결핍이 좋은 동기부여가 되어 열심히 공부한 덕에 학원 한 번 안 다녀도 지금까지 전교 1등을 한 번도 놓친 적이 없다. 글램핑은 못 데리고 갔어도 아이가 지긋지긋할 만큼 캠핑은 데리고 다녔다. 있는 짐 없는 짐 다 꾸려 좁은 차에 아이들이랑 같이 구겨 싣고는 참 많은 곳을 돌아다녔다. 아이들과 함께 한 그 소중한 추억들은 글로 다 옮기지도 못할 만큼이다. 지금은 아니겠지만 나중에 나중에 아이가 나이가 많이 들어 그때를 돌이켜 본다면 분명 단단한 응어리가 아닌 코 끝 찡한 말랑말랑한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거라 장담한다.



우리 아이 가슴엔 결핍으로 생긴 응어리따윈 없더라고 그녀에 당당하게 말하고 싶지만 그러지 않을 생각이다.  어떤 말로 설득당해 쓸데없는 죄책감과 자격지심에 에너지를 낭비할지 모른다. 아이의 말에 용기를 얻어서일까? 보다 더 융통성 있게 바꿀 의향은 있지만 앞으로도 나는 나의 방식대로 살아갈 생각이다. 얼마 전 아이에게서 들은 잔소리는 특별히 주의해 가면서.

"엄마, 이제 나 앞에서 돈 얘기 좀 제발 하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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