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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니 Jul 15. 2024

이젠 진짜 마지막이다

드디어 기말고사가 끝나고 다음 주면 딸아이의 여름방학이 시작된다. 여느 때 같으면 며칠 뒤 아이가 건네줄 성적표 걱정에 하루하루 노심초사하고 있을 시기다. 한 학기 동안 아이가 쏟아부은 모든 노력의 흔적들은 종이 위 숫자로 보다 단순 명료하게 표현된다. 다소 애매한 시험 점수를 받을 때면 안타깝게 등급컷에서 잘리느냐 운 좋게 턱걸이를 하느냐 그 기로에 놓인다. 그 유쾌하지 않은 두근거림이란. 두 눈으로 직접 숫자를 확인하기 전까지는 아이도 아이지만 나 역시 불안한 시간들을 보내야 했다. 하지만 아이가 고 3인 지금은 오히려 별 감정의 동요 없이 방학을 기다리고 있다. 하도 바뀌는 교육정책이라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르지만 요즘은 대부분의 내신 성적이 고2에서 마무리된다.



사실 내 아이가 학생이 아니면 요즘의 성적 산출 방식이나 입시 제도에 관심이 시들해지기 마련이다. 변화무쌍한 정책들은 파악조차 하기 어렵다. 게다가 비슷한 또래가 아니면 심지어 겨우 한 학년 차이에서도 또 다른 정책이 반영되기도 한다. 당장 2028년 수능 개편안으로 많은 것들이 달라질 예정이다. 그 첫 번째 대상인 지금의 중3과 불가피하게 재수할 경우 아무래도 변수가 많을 고1 학생들 그리고 해당 학부모들은 걱정이 많을 수밖에 없다.



길게 내다보고 충분한 고심 끝에 사회적 합의를 얻어 정해야 할 정책들을 정권이 유지되는 동안 번갯불에 콩 볶듯 급하게 다루다 보니 다음 정권이 들어서면 이내 바꿔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무슨 사명감에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벌리기만 벌려놓고 뒤감당은 하지 못해 그 피해는 고스란히 당사자인 학생의 몫이다. 학부모 입장에서는 이런 정책들 때문에 정작 우리 아이들이 희생양이 되는 안타까운 순간들을 종종 목격하게 된다.



딸아이보다 5살 많은 큰애가 고등학생일 때는 일반 선택 과목이니 진로 선택 과목이니 하는 말은 들어보지도 못했다. 그게 뭐냐고 나에게 묻는 큰애와 남편에게 연이어 설명을 해줘야 했다. 일반 선택 과목은 기존의 9등급으로 진로 선택 과목은 ABC 3등급으로 성적이 산출되는 차이점이 있다. 정확한 성적 파악이 힘든 진로 선택 과목은 당연히 중요도가 떨어지고 대학에서도 반영비율을 현저히 낮게 둔다. 심지어 반영하지 않는 대학도 수두룩이다. 학교에서 진로 선택 과목에 대한 수업이 제대로 이루어질 거라 기대하는 건 아마 책상에 가만히 앉아 머릿속으로 그걸 구상해 낸 이들뿐일 게다. 고교학점제? 이상과 현실을 구분 짓지 못하는 어른들 때문에 학교와 아이들만 피곤하다. 본격적인 시행 전 아이가 고등학교를 마칠 수 있어 다행이다 싶다.



딸아이의 경우 이번 학기에 단위 점수 1학점짜리 일반 선택 한국사를 제외하곤 모두 진로 선택 과목들 뿐이라 긴장감 제로인 시험기간을 보냈다. 그래도 이왕이면 한국사 과목에서 1등급을 받아야 조금이라도 유리하다. 다른 아이들도 모두 같은 생각이기에 지난 중간고사에서 만점이 넘쳐났다. 기말고사에서 조금만 실수를 해도 2등급으로 밀려나는 상황이다. 난이도 조절에 실패한 선생님의 귀여운 변명을 전해 듣고 웃음이 빵 터졌다.

"너희들이 그렇게 열심히 공부할지 몰랐어"



시험을 앞둔 주말 오후 잠시 쉬고 있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넌지시 물어본다.

"엄마가 한국사 정리한 거 물어봐줄까?"

사실 며칠 전 밤 아이의 부탁으로 노트를 펼쳐 들었지만 그날따라 너무 피곤하고 졸려 횡설수설을 해댔다. 내가 지금 무슨 질문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데 아이의 대답을 옳게 알아들을 리가 없다.

"엄마, 지금 졸고 있는 거야?"

결국 아이에게 한소리 듣고 말았다. 이번엔 아이가 빠트리거 잘못 외운 없는지 꼼꼼히 제대로 확인해줘야 한다.



노트를 펼쳐 들고 질문을 시작하자 아이 입에서 막힘없이 답이 나온다. 제목만 던져주면 아이가 알아서 모든 내용을 줄줄줄 말하므로 난 그저 빠진 게 없나 확인만 하면 된다. 시험 범위가 많다 보니 이미 1시간 반은 훌쩍 지나 있다. 어쩜 이렇게 야무지게 외웠는지 내 딸이지만 참 기특하다. 동시에 이젠 더 이상 시험공부를 도와줄 일이 없겠다 싶으니 마음이 찡해온다. 여느 때와 달리 살짝 귀찮은 맘도 없이 그저 이 순간 이 느낌을 최대한 만끽하고 싶다. 내 인생에서 아이들과 같이 하는 공부는 이젠 이걸로 진짜 마지막이니까.




큰애와 마찬가지로 딸아이도 인터넷 강의를 제외하곤 지금껏 다른 사교육은 전혀 받지 않았다. 인터넷 강의도 근래 들어서 돈을 내고 학원 강의를 들었지 그전까진 EBS를 이용했다. 한글, 한자, 알파벳 등등 아이들은 공부라는 걸 시작하면서부터 언제나 엄마와 함께였고 내가 그들의 선생님이자 학습 플래너였다. 2년 전까지만 해도 식탁에 나란히 앉아 같이 인강을 듣고 미적분 문제를 풀었다. 아이의 수준을 더 이상 따라가지 못하는 시기가 되면 답답하고 부족한 이 엄마는 빠지고 아이들은 홀로서기를 시작한다. 아이에 따라 교과목에 따라 그 시기는 달랐다. 큰애의 경우 수능 직전까지 영어와 국어를 같이 했지만 딸아이는 고 2부터 전 과목을 완전히 혼자 학습해오고 있다.



자기주도 학습의 모범 사례라고 TV에 소개해도 될 만큼 딸아이는 기특하게 잘하고 있다. 1, 2학년땐 내신 준비로 잠도 제대로 안 자고 공부를 해서 언제나 내가 먼저 그만하고 자라고 다그치곤 했다. 하지만 내신 부담이 덜한 지금은 하루 7시간씩 푹 자는 덕분에 오히려 피곤함도 덜 느끼는 것 같다. 걱정이 많았던 지난 6월 모의고사도 다행히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모든 게 결핍투성인 상황에서 의욕만 앞선 엄마를 두었지만 뒤처지지 않고 자기 역할을 묵묵히 해온 우리 아이들이 요즘 너무나도 감사하다.



아이들과 함께 식탁에 나란히 앉아 공부했던 지난 시간들이 영화 속 장면처럼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 같이 울고 웃고 공부하며 그렇게 나 역시 아이들과 함께 학생이 되었다. 아이가 중학생이면 나도 중학생이 되고 아이가 고등학생이 되면 나도 따라 고등학생이 되었다. 처음과 달리 점점 낡고 닳아빠진 머리로는 쌩쌩 잘도 돌아가는 아이들 머리를 따라가는 게 갈수록 힘에 부쳤다. 아마 아이들도 학원 생각이 간절했을지 모른다. 딸아이의 경우는 그래도 둘째이기에 한 번의 경험이 있어 다소 융통성 있고 여유로웠다. 하지만 큰 애에겐 모든 게 서툴고 너무 엄하기만 한 엄마였다. 그렇기에 큰애만 생각하면 미안함에 항상 마음 한 편이 저려온다. 핑계일 수 있고 아이들에게 차마 말할 수도 없지만 변명 같은 속마음이 있다.



'얘들아, 그동안 부족한 엄마랑 같이 공부해 줘서 너무 고마워. 그게 얼마나 힘든 건지 그리고 내게 원망하는 마음이 많다는 것도 잘 알아. 항상 고맙고 미안하게 생각해. 사실 엄마도 아는 게 별로 없었기에 순간순간 너무 두렵고 힘들었어. 주위에서 엄마를 보고 수군대는 소리에 불안하기도 했고. 사람들 말처럼 괜한 짓하는 건 아닌지 그러다 아이들 인생 망치는 건 아닌지 그 무섭고 무겁기만 한 책임감은 지금 생각해도 진절머리가 난다. 하지만 우리 형편에 그게 최선이었고 엄마는 정말 죽을힘을 다했다는 것만 알아줘' 



아직 성적표는 나오지 않았지만 한국사는 넉넉히 1등급 안에 안착한 것 같다. 이로써 모든 고등학교 내신 성적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고 두 달 후면 대학 수시 지원이 있다. 그동안 한 번도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은 딸아이는 의대에 지원할 예정이다. 의대 증원문제로 복잡하게 꼬여진 현 사태에 몇 달째 마음이 무겁긴 하지만 그냥 우리 아이만 생각하기로 했다. 똑똑한 사람들이 정한 것이니 내 머릿속 생각보단 나을 것이다. 믿음이 전혀 가질 않지만 어떻게든 믿고만 싶다.



부족한 엄마를 둔 탓에 그동안 아이들 고생이 많았다는 걸 항상 미안해하고 있다. 다행히 결핍이 좋은 동기부여가 되어 각자의 자리에서 오늘도 열심인 우리 아이들이 너무나 대견하고 고마울 뿐이다. 혹시라도 딸아이가 이번 수능에서 좋지 않은 결과를 받을지라도 용기 잊지 말고 목표를 향해 다시 꿋꿋이 나갈 수 있기 바란다. 하지만 그건 노파심에서 온 섣부른 걱정일지모른다. 아이는 이미 충분히 단단한 사람으로 자랐기에. 어떤 결과가 나오든 분명한 건 우린 멈추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나아갈 거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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