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연재를 마무리하며

by 코니

연재를 시작할 때만 해도 그런 순간이 오기나 할까 싶었던 20번째의 글을 쓰고 있다. 처음부터 다소 무리인 줄 알지만 어떻게든 20화까진 끌고 가자 굳게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막상 목표에 다다르자 기분이 좀 묘해진다. 당장 다음 주부턴 숙제처럼 글을 쓰는 일이 없어질 테니 우선 홀가분한 느낌이다. 동시에 꼭 내가 아니면 안 되는 일이 세상에서 또 하나 사라지게 되니 마음 한편 섭섭하고 허전하다. 아이들의 보호자로서 바로 옆에서 챙기고 돌봐주던 일이 사라진 것처럼 말이다.



연재의 시작은 그랬다. 지난 24년 동안 내 몫의 가장 큰 일이었던 육아에서 독립하게 되자 무언가 새로운 일이 필요했다. 다소 느슨한 프리랜서가 아니라 출퇴근 시간이 엄격한 직장인처럼 뭔가 타이트하게 날 옭아매는 일이어야 했다. 쓰고 싶을 때가 아닌 무조건 1주일에 한편씩 글을 발행해야 하는 연재를 택한 것도 그 이유에서다. 그렇지 않으면 무너질 것 같았다. 날 버티게 할 무언가가 진심으로 필요했던 순간이었다.



사실 하루빨리 이 지긋지긋한 육아에서 벗어나 내 인생을 즐기며 살고 싶었다. 큰애 때는 그 맘이 너무나 간절했다. 아이가 대학에 입학해 집을 떠나게 되자 드디어 첫 숙제를 무난한 성적으로 마무리 한 기분이었다. 그 해방감이 주는 기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이제 하나 남은 아이만 잘 케어하면 드디어 나도 완전한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생각에 그저 신나기만 했다.



하지만 둘째는 달랐다. 딸아이여서 그런지 아들과는 달랐다. 서로 죽이 잘 맞아 친한 친구마냥 옆에 꼭 붙어 웃고 떠들며 지냈다. 간혹 짜증 내고 투덜거려도 두 번째라 그런지 나도 내공이 생겨 큰애 때처럼 크게 맘 상하지도 않았다. 공부든 뭐든 알아서 잘하니 아이 때문에 속 썩을 일도 하나 없었다. 물론 항상 좋지만은 않았지만 챙겨야 할 아이가 옆에 있다는 사실은 날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돌아가게 만들었다. 내가 살아있다는 걸 아직 이 세상에 내가 아니면 안 되는 일이 있다는 걸 느끼게 해 주었다.



드디어 두렵기만 했던 순간이 오고야 말았다. 아이는 내 곁을 떠나 기숙사로 향했고 텅 빈 아이방을 쳐다보는 건 텅 빈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과 같았다. 아무런 의욕이 생기지 않고 그저 자꾸 아래로 아래로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끊임없이 틈을 엿보는 갱년기 우울증에 재미없고 공감력 제로인 남편과 단 둘이 살아야 한다는 사실은 내 얼굴에서 웃음을 앗아가 버렸다. 브런치 연재를 시작한다는 건 이 모든 것을 딛고 다시 씩씩하게 일어서기 위한 필연적인 선택이었다. 그리고 5달이 지난 지금 그때와는 많이 달라진 나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우선 내가 너무 날 과소평가했다. 생각보다 난 제법 단단하고 독립적인 사람이었다. 물론 처음 얼마간은 아이가 내 곁에 없다는 사실에 슬프고 외로웠지만 지금은 씩씩하게 잘 살아가고 있다. 매일 아이랑 나누던 통화도 일주일에 3, 4번 정도로 줄었고 나머지는 그저 문자로 생사만 확인하고 있다. 집에 오면 반갑지만 다시 기숙사로 돌아가도 반갑다. 허튼 생각이 안 들게 몸을 계속 움직였더니 예전보다 더 부지런해진 것 같기도 하다. 그동안 매매로 내놓은 집도 팔렸고 이사 갈 집도 셀프 인테리어로 공사를 진행시키려고 보니 우울증에 허덕일 틈도 없다. 마음이 몸을 이끌지만 때론 몸이 마음을 이끌기도 한다.



연재 덕분에 작은 구독자 수에도 불구하고 브런치에서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란 배지도 달았다. 처음 배지를 달았을 때 그 뿌듯함이란. 게다가 글 쓰는 속도가 느려 2,3주에 겨우 한 편씩 글을 발행했는데 이젠 하루 만에 글을 완성하기도 한다. 안 해서 그렇지 작정하고 해 보니 안될 것도 없다. 게다가 남편에게 떠들어봤자 위로는커녕 면박만 받을게 뻔한 솔직한 속내를 글에다 그대로 옮겨놓으니 가슴에 답답하게 담아두는 것도 없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 브런치 연재를 시작한 건 참 잘한 일이다. 꾸준하게 글을 쓴 나 자신이 기특하기만 하다.



아이들로부터 독립을 완벽하게 이룬 지금 아이들 역시 부모로부터 독립을 무사히 잘하고 있다. 초등 임용 시험에 떨어지고 졸업과 동시에 군에 입대한 큰애는 지금 말년 휴가를 나와 있다. 다음 달 말 제대를 하면 11월에 있을 시험을 위해 열심히 공부할 생각이다. 처음 군대에 입대했을 때와 비교해 보면 여러 면에서 크게 성장한 듯하다. 시험까지 공부할 시간이 얼마 안 남았음에도 살짝 기대를 가져보게 된다. 의대에 다니는 딸아이는 드디어 다음 주부터 수업이 시작되어 보다 바쁜 나날을 보내게 될 것이다. 아는 이 하나 없는 서울에서 적은 생활비로 꿋꿋이 잘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내 새끼지만 참 대견하다. 모두들 이렇게 각자의 위치에서 열심히 삶을 꾸려가는 게 내가 보고 싶었던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이다.




그동안 미흡한 글이지만 읽어주시고 라이킷도 눌러주시고 댓글까지 달아주신 모든 작가님께 감사드립니다. 첫 연재라 쫓기듯 글을 썼기에 부족한 부분이 많았던 게 사실입니다. 시간이 흘러 다시 들여다보면 부끄러움에 과연 얼굴을 들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나름 최선을 다했고 저에게는 모든 면에서 참 소중한 시간들이었습니다. 이번 연재는 이 글로 끝이지만 가을에 새로운 주제로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keyword
코니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직업 에세이스트 프로필
구독자 130
이전 19화가을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