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 여름이 곁에 다가와 주위를 맴돌고 있는 요즘이다. 지난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우린 얼마나 뜨거운 시간들을 함께 나눴는지 모른다. 어느새 긴 시간이 흘러 까불대던 까무잡잡한 소녀는 염색으로 흰머리를 애써 감추고 있다. 내색은 안 하지만 점점 누렇게 쪼그라들고 있는 내 모습에 매년 재회의 순간마다 깜짝깜짝 놀라고 있을게다. 반면 언제나 한결같은 푸르디푸른 그의 품에 푹 안겨 있음 아직 내 안에 뜨거운 피가 흐르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그와 함께라면 내 나이도 까맣게 잊게 된다.
여름 태생이기에 따지고 보면 내 사랑에도 어느 정도 논리적인 근거는 있어 보인다. 자기가 태어난 계절을 싫어하는 사람은 여태껏 보지 못했다. 그런데 사주 명리학을 공부하다 보니 동양 철학에선 내가 여름이 아닌 가을생이라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날짜를 음력으로 따지기에 8월의 끝자락에 태어났지만 음력 7월이므로 가을이란다. 다소 충격적이긴 하지만 그러든 말든 누가 뭐래도 난 여름 아이다.
예나 지금이나 여름만 되면 설레고 들뜨는 맘은 어쩔 수가 없다. 50이 넘은 지금도 마찬가지라 그저 가만 집에 있질 못한다. 사주에 역마살이 있다더니 어떻게든 남편을 꼬들겨 산이나 바다로 캠핑을 떠나야 한다. 아이가 고3이던 작년엔 사정이 여의치 않아 딱 한 번의 1박 2일 캠핑으로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요즘처럼 잦은 비로 진한 흙냄새가 코를 자극할 때면 하다못해 우산이나 우의로 무장을 하고 혼자서라도 산이나 절, 숲을 쏘다녀야 한다. 여름이 내게 손짓을 하면 난 무장해제를 한 채 따라갈 수밖에 없다.
올해는 아이들이 모두 집을 떠나 처음으로 남편과 단 둘이 여름을 맞이하고 있다. 여름을 만끽하기 이렇게 좋은 기회도 없다. 아이들이 어릴 땐 잘만 따라다니던 캠핑도 좀 크고 나선 더 이상 같이 가려하지 않으니 캠핑을 한번 가려면 여간 눈치가 보이는 게 아니다. 드디어 맘대로 캠핑을 떠날 수 있고 밤늦게 집에 도착해도 미안해할 필요가 없는 시간이 왔다. 오랫동안 꿈꿔오던 순간들이긴 하나 올해는 그 모든 걸 내년으로 미루기로 했다. 난 지금 여름의 어떠한 손짓과 유혹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아무리 옆에서 1년 만에 다시 찾아왔다고 떠들어대도 내 귀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드디어 집이 팔렸다. 지난 3월 아이가 대학에 입학해 서울로 떠나자마자 매매로 내놓은 집이 지난주에서야 겨우 거래가 성사되었다. 이사 갈 집은 2년 전에 사서 전세를 놓았는데 이제 곧 계약이 끝난다. 사실 그동안 집이 팔리지 않아 여간 속앓이를 한 게 아니다. 남편은 처음부터 이사 가길 원치 않았기에 지난 몇 달 동안 그야말로 가시방석이었다. 왜 굳이 그런 비싼 동네에 가야 하는지 왜 사는 집에 많은 돈을 깔고 앉아야 하는지 도저히 이해 못 하겠단다. 지출에 관해선 세상 누구보다 예민한 사람이기에 남편의 반대가 거셌다.
사실 나도 당시 무슨 배짱으로 남다른 경제관을 가진 남편의 고집을 꺾고 계약까지 했는지 모르겠다. 그저 다른 곳에 비해 거의 오르지 않는 아파트 가격이 소외감을 불러왔고 20년 넘게 산 오래된 낡은 집도 싫었다. 그렇다고 사는데 아무런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는 짠돌이 남편이 다른 가족을 위해 리모델링을 하게 할 사람은 결코 아니다. 당장은 아이들 학교 때문이라도 이사를 갈 순 없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계속 이곳에 살 이유도 없었다. 마침 갱년기 우울증이 극에 달한 시점이라 내 눈에 보이는 것도 없었다.
기세등등하게 정 이사 갈 거면 이혼하자는 남편 말에 그러자 했다. 그런데 법원을 가기로 한 다음날 아침 갑자기 남편이 태세를 바꿔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결국 법원대신 같이 부동산을 찾았다. 어찌 생각해 보면 그 아파트를 사게 된 것도 흉한 내 안의 허영이 크게 작용한 탓일 게다. 여하튼 집도 팔렸고 전셋집도 곧 빠져 이젠 모든 게 다 해결된 듯했다. 하지만 산 넘어 산이라고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집을 산 측에서 우리가 8월에 이사 나가주길 바랐다.
이번에 이사 갈 땐 몇 군데는 작정을 하고 리모델링을 할 생각이었다. 집이 진작에 팔렸음 인테리어 공사도 미리미리 준비를 해서 전셋집이 빠지자마자 바로 작업에 들어갈 수 있게 했을 테다. 하지만 아직 집도 팔리지 않았는데 그딴 것에 신경 쓴다고 남편에게 한 소릴 들을 것 같아 그저 숨죽이며 지낼 수밖에 없었다. 나 역시 집이 팔리지 않으니 아무런 의욕이 나질 않았다. 물론 모든 걸 인테리어 업체에 의뢰하면 그 시간에라도 충분히 가능하다. 하지만 더 이상 돈문제로 남편의 신경을 건들리기 싫어 혼자 업체를 알아본 후 셀프 인테리어를 할 작정이었다. 아무런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 상태이기에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 하지만 언제 또 집 임자가 나타날지 모르니 그냥 팔자는 남편 말에 결국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작업 공정 순서도 제대로 모르고 어디를 고칠 건지 또 어느 업체에 의뢰해야 하는지 전혀 파악이 안 된 상태다. 유일하게 믿는 구석은 작년에 이사 온 젊은 이웃이다. 당시 셀프 인테리어를 한다고 동의서 사인을 받으러 왔기에 나중에 도움을 요청하면 흔쾌히 도와주기로 약속했었다. 하지만 또래도 아니고 나이차가 많이 나는 아줌마가 주착 맞게 묻고 또 묻자 어느새 슬슬 피하기 시작한다. 따지고 보면 딱 3번 물었다. 그나마 마지막엔 너무 고맙고 미안해 카스텔라를 직접 구워 인사가 적힌 쪽지와 함께 문에 걸어두었다. 처음 갑 티슈를 문에 걸어뒀을 땐 인사를 하더니 이번엔 별 말이 없는 걸 봐서 이젠 거리를 좀 두고 싶은가 보다. 살짝 서운하긴 하지만 그래도 덕분에 많은 정보를 얻었다. 이사 가기 전 다시 제대로 인사를 할 생각이다.
그런데 그 젊은 이웃도 처음에 얘기했지만 막상 셀프 인테리어를 시작하려고 보니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시간은 촉박한데 과연 내가 할 수 있을지 걱정만 태산이다. 도저히 자신이 없어 이번엔 인테리어 관련일을 하는 딸아이 친구 아빠를 만나 작업을 의뢰해 보았다. 그러나 어정쩡한 관계는 서로를 더 불편하게 만들 뿐 다른 곳보다 가격도 더 비싸게 부른다. 역시 아는 사람이 더 무서운 법이다. 딸아이 얼굴도 있는데 괜히 같이 일하다 얼굴 붉힐 바에는 처음부터 시작을 안 하는 게 답이란 생각이 들었다.
겨우겨우 업체들을 추려 스케줄을 짜려고 하니 잘한다고 소문난 곳은 이미 다음 달 일정이 꽉 차 있다. 하루라도 빨리 집을 보여주고 견적을 내야 그나마 비집고 들어갈 틈이 있다. 그런데 이번엔 세입자가 차일피일 미루면서 집을 보여주지 않는다. 자기도 이사를 가야 해서 짐을 정리하는 중이라 집이 너무 엉망이란다. 그러는 사이 10일이란 시간이 고스란히 낭비되고 있다. 도저히 안돼 몇 번이나 사정 사정한 끝에 겨우 양해를 구해 다음 주 최대한 짧은 시간 안에 모든 걸 끝내기로 했다. 결국 타일 사장님만 직접 오시고 나머지는 도면을 그려 내가 치수를 재야 한다.
게다가 아무리 돈을 아껴 쓴다고 해도 인테리어 공사는 그래도 제법 큰돈이 들어가는 일이다. 차라리 아주 오래된 아파트라면 당당히 공사를 밀어붙이겠는데 올해 8년 차에 접어든 아파트라 손대기 애매한 공간이 너무 많다. 내 취향이 아닌 화장실 타일과 올드한 감성의 시트지, 붉은 끼가 도는 마루 바닥, 좁아터진 싱크대등은 남편 눈엔 멀쩡하지만 내 눈엔 모두 스트레스다. 살면서 고친다는 건 거의 불가능이기에 다시 이사 갈 때까지 참고 살아야 한다. 하지만 이젠 더 이상 그렇게 살기 싫다. 남편은 남편대로 멀쩡한 걸 왜 때려 부수냐며 화를 내고 나는 나대로 취향에 맞게끔 고치는 게 인테리어 공사다 큰소리를 치고 있다.
사실 어느새 13년이 된 냉장고도 굳이 바꿀 필요는 없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조심스레 다룬다 해도 몇 년 안에 그 생을 다할게 분명하다. 나름 큰돈을 들여 만든 냉장고장은 새로운 냉장고를 맞아들이기엔 분명 치수가 맞지 않을 테다. 이참에 바꾸는 게 맞는 것 같은데 미니 사이즈의 20년 된 김치 냉장고 역시 똑같은 상황이다. 어디 그뿐이랴. 냉장고와 비슷한 연식의 통돌이 세탁기는 그냥 가져간다 쳐도 결혼할 때 장만한 장롱, 식탁과 의자, 책상 그리고 20년도 넘은 소파 등은 모두 바꿔야만 한다. 남편의 소비 패턴을 알기에 감히 말도 못 하고 혼자 속앓이를 하다 결국 앞에서 엉엉 소리를 내 울고 말았다. 이 모든 것들이 지금 내게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다.
남편은 마지못해 나보고 하고 싶은 거 해라고 하지만 그가 어떤 맘일지 누구보다 잘 알기에 나 역시 마음이 편치 않다. 아직 제대로 견적을 받은 업체도 없고 세입자의 협조가 없어 이사 갈 집 상태가 어떤지 파악도 안 되어 있다. 공사 중 승강기 보양작업이나 마루 보양, 거실 대리석 아트윌 철거등 생각도 못한 지출과 새로운 문제들이 계속 생겨나고 있다. 여름휴가와 광복절 연휴 때문에 실제 작업할 수 있는 기간은 얼마 되지도 않는다. 정보를 얻기 위해 인터넷 검색도 많이 하고 유튜브도 많이 봤더니 결국 눈엔 무리가 왔다. 안 그래도 안구 건조증이 심한데 이젠 그야말로 눈알이 빠질 것 같고 속까지 울렁거린다. 이 나이에 이게 무슨 고생인가 싶다. 하지만... 난 꿋꿋이 잘 해낼 것이다. 일단 칼을 뽑았으니 여기서 겁먹고 뒤로 물러날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나이 50을 넘어선 이후 모든 게 두렵고 자신감도 줄어들고 있다. 예전처럼 빨리 돌아가지 않는 머리 회전과 한 템포 느려진 상황 판단은 젊은 사람들 앞에서 괜스레 주눅 들게 만든다. 심지어 내 새끼들 앞에서도 마찬가지다. 무언가를 새로 하기엔 겁부터 나는 게 사실이다. 지금의 모든 상황이 내겐 터닝 포인트가 될 수 있을 게다. 이번 일을 잘 마무리 짓고 나면 분명 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자신감이 다시 예전처럼 높아질 수 있을 것이다. 남은 나의 인생 멋진 독립적인 삶을 살기 위해선 무엇보다 필요한 것들이다.
아무리 힘들다 투덜대도 여하튼 가을은 오기 마련이다. 그때쯤이면 골치 아픈 이 모든 것들이 다 마무리되고 광안대교가 보이는 거실에 조용히 앉아 지난여름을 떠올릴 테지. 그리고 내가 완성해 놓은 것들을 천천히 바라보며 스스로를 대견해할 게 분명하다. 지금 내가 간절히 가을이 오기를 기다리는 것도 그 이유에서다. 여름한테는 정말 미안하기는 하지만 올해만큼은 한 눈 팔지 않고 내게 주어진 일에 충실할 게다. 대신 내년엔 다시 함께 뜨거운 시간들을 보낼 것을 꼭 약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