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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정말 독립이구나

by 코니

남편을 따라 들어선 곳은 어느 4층짜리 건물이다. 그냥 스쳐 지나가는 줄 알았지 설마 이런 곳에 발걸음을 멈출 줄은 전혀 예상 못한 바다. 살짝 당황스럽다. 그도 그럴 것이 음식점과 술집이 즐비한 거리에 위치한 이 건물 역시 1층은 술집이다. 인접한 도로 폭이 제법 넓어 뒷골목 유흥가 같은 느낌은 없지만 이미 부정적인 느낌이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다. 왠지 미안한 맘에 옆에 있는 딸아이 얼굴을 쳐다볼 자신이 없다. 그저 묵묵히 남편을 따라 계단을 오른다. 나도 이런데 하물며 딸아이의 마음은 얼마나 심란할까.



다행인지 그나마 1층 술집과는 나름 분리시키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엔 번호를 눌러야 들어갈 수 있는 문이 하나 있다. 남편이 서둘러 어딘가로 전화를 걸더니 번호를 알아내고는 문을 연다. 그때까진 몰랐다. 그 문 너머 이제껏 본 적 없는 또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다는 것을.



3층 같은 2층을 오르자 곧이어 좁은 복도 양 옆으로 다닥다닥 붙은 문들이 보인다. 밖은 환한 대낮이지만 어두컴컴한 복도는 두 사람이 나란히 걷기도 힘들 만큼 좁디좁다. 어울리지도 않은 바닥 카펫은 청소가 아예 이뤄지지 않음을 적나라게 보여준다. 게다가 아래층 술집의 지난날의 흔적들이 허락 없이 위로 올라와 냄새로 고스란히 배어있다.



앞장을 선 남편 뒤로 나와 딸아이가 일렬로 따른다. 일부러 최대한 과장해서 만든 영화 세트라 믿고 싶지만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임은 분명하다. 다니기도 좁은 복도에 생수며 빈 박스들이 쌓여 있다. 복도 중간쯤 이르자 남편은 어느 문 앞에 서서 방호수를 확인하곤 다시 전화를 건다. 그리고 누군가가 일러준 대로 번호를 누른 후 문을 연다.



방 안에 들어서자 이내 서글픔이 밀려온다. 어제부터 시작해 이미 몇 집을 보고 난 후지만 이렇게까지 좁아터진 방은 또 처음이다. 이 찌는 듯한 더위에 방 안이 차갑다 느껴지는 건 철제 가구 때문일까 아님 푸른빛이 도는 주광색 등 때문일까. 철제로 된 이층 침대 아래엔 책상만 놓여 있을 뿐 작은 수납공간 하나 없다. 도대체 옷은 어디에 두란 말인지. 다니기도 힘든 그 좁은 복도에 나와있는 세간살이들이 이제야 이해된다. 옆 건물에 바싹 붙어 흉한 콘크리트 벽만 보이는 창은 있으나 마나다. 방에 비례해 역시 좁아터진 화장실은 아예 답도 없어 보인다. 다들 어떻게 샤워를 하는지 궁금해진다. 잠시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숨이 탁탁 막히는 것 같다. 남편도 당황스러운지 나와 딸아이의 눈치를 본다.

"더 볼 필요는 없겠지..."



기숙사에서 지내는 아이는 2학기땐 방을 구해 나가야 한다. 다행히 처음 기숙사 신청을 할 때 6개월을 신청해 다음 달 중순까진 계속 있을 순 있다. 하지만 더 이상 지체하면 방을 구하기 힘들 것 같아 짬을 내 남편과 서울로 향했다. 자녀가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는 지인들을 통해 방값이 어느 정도인지는 이미 짐작하고 있는 터다. 더 좋은 곳은 아니지만 남들만큼은 해주고 싶은 게 부모 맘이다. 하지만 한편으론 이왕이면 조금이라도 더 싼 곳을 구하고 싶은 것도 사람맘이다. 아마 남편은 후자의 맘이 조금 더 컸을게다.



아이도 이사를 가야 하지만 우리 부부 역시 이사를 가야 해서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를 내놓은 상태다. 아파트 매매는 내가 책임지고 담당하고 있으니 아이 방을 구하는 건 남편이 전적으로 알아서 하기로 했다. 무엇보다 지출에 관한 일이라면 남편은 모두 나서고 싶어 한다. 큰애의 자취방을 구할 때도 부동산 사무소의 도움 없이 남편이 집주인과 직접 연락해 가며 방을 구했다. 서울로 향하는 아침 짐을 챙기다 A4 용지 2장에 빼곡히 적힌 남편의 메모를 발견했다. 보증금과 월세, 관리비등이 적혀 있는데 족히 30곳은 넘어 보였다. 그곳들을 모두 가봐야 하나 은근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주위의 말을 들어보면 방들은 어차피 다 비슷비슷하기에 그리 품을 팔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무슨 조삼모사도 아니고 월세가 싸면 관리비가 비싸고 관리비가 싸면 또 월세가 비싸니깐 결국 모두 똑같은 셈법이란다. 게다가 이 세상엔 돈 값이란 게 있다. 싸면 싼 대로의 이유가 비싸면 비싼 대로의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그냥 아이가 원하는 대로 해주는 게 상책이다 싶다.



아이가 일정 때문에 점심 이후로는 같이 다닐 수가 없어 첫 비행기를 타고 일찍 서울에 도착했다. 부동산 앞에 서서 문을 열리길 기다리다 들어가니 원하는 가격대부터 먼저 물어본다. 그리고 그 가격에 맞춰 부동산 두 군데서 각각 3집씩 총 6집을 구경시켜 줬다. 정말 모두 비슷한 크기에 비슷한 분위기였지만 한 집이 마음에 좀 들긴 했다. 그 집은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는 관리비 포함 53만 원, 전기세와 가스비는 별도란다. 나머지들도 그 비슷한 가격이라 일단 나름의 순위를 정한 후 다음날 좀 더 집을 구경하기로 했다.



사실 남편은 서울에 오기 전부터 아이가 원룸텔에서 지내길 은근 바랬다. 원룸텔이 뭐냐고 물어보니 원룸과 똑같은데 단지 방안에 취사 시설이 없어 공용 부엌을 사용하는 거라 했다. 하지만 방마다 화장실은 다 있단다. 게다가 관리비가 따로 없고 전기세 가스비등도 낼 필요가 없단다. 6개월 또는 4개월씩 단기 계약도 가능하고 무엇보다 원룸에서 지내는 것보다 총비용이 매달 10만 원 정도 저렴했다. 듣고 보니 나 역시 귀가 솔깃해졌다. 부동산에서 소개해주는 곳을 따라다니며 구경했지만 남편은 맘에 두고 있는 곳이 따로 있었다.



다음날 아침 아이를 다시 만나 남편이 그토록 추천하던 원룸텔로 향했다. 학교 정문 바로 앞에 있는 5층짜리 건물은 아이가 다니는 의과 대학 건물과도 가까웠고 여학생 전용이라고 했다. 남편의 전화를 받은 주인아저씨가 직접 나와 안내를 해주었다. 부부가 직접 건물을 관리를 한다며 시설이 좋은 것처럼 떠들어대지만 내 눈엔 학교 바로 앞이란 것 말고는 아무런 장점이 없어 보인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하는 복도 입구엔 빈 공간이 없을 정도로 학생들 신발로 어질러져 있다. 좁은 방안의 촌스러운 벽지와 침구는 그렇다 쳐도 이유가 궁금한 화장실 유리 벽과 알루미늄 재질의 문틀은 딱 목욕탕 한증막을 떠올리게 한다. 그래, 그건 모두 넘어간다 해도 남편이 그토록 대단한 것처럼 얘기하던 공용 부엌에 들어서자 할 말을 잃었다.



맨 위층 작은 옥탑방이 사진과는 비슷한 듯 전혀 다른 바로 그 공용부엌이었다. 에어컨은 고사하고 벽걸이 선풍기조차 없어 오전 10시임에도 이미 더위로 달궈질 대로 달궈진 상태다. 덥고 좁은 이 공간에서 무언가를 조리해 먹는다는 건 상상도 하기 힘들다. 집주인은 낡은 싱크대 상부장을 열어 생전 처음 보는 상표의 라면을 자랑스레 보여준다. 라면은 공짜로 제공하며 전기밥솥 안의 밥과 냉장고의 김치도 무상 제공이란다. 옥탑방을 지나 옥상으로 나가는 좁은 공간엔 낡디 낡은 통돌이 세탁기 2대와 요즘은 보기도 힘든 구형 탈수기가 놓여 있다. 사진에 나와 있던 드럼 세탁기는 한 대뿐이며 건조 기능도 없다. 옥상 빨랫줄에 빨래를 널면 된다는 데 이 건물에 사는 학생수가 20명가량임을 감안하면 그게 모두 가능한가 싶다.



놀라운 게 그래도 한 달에 55만 원이란다. 남편은 45만 원이지 않냐며 당황해하며 물어보자 집주인은 45만 원짜리는 다 나가고 이제 55만 원짜리만 남았단다. 55만 원 방도 맘에 전혀 들지 않는데 45만 원 방은 도대체 어떨지 상상도 되지 않는다. 건물 밖으로 나온 후 모두들 허망한 웃음만 짓는다. 다들 지방에서 딸아이를 서울로 보내고 불안한 맘에 학교 바로 앞이란 이유만으로 이곳을 택했을 게다. 조금만 돈을 들이고 수고를 하면 훨씬 더 쾌적한 공간이 될 수도 있을 텐데 그저 돈만 밝히는 것 같아 괜히 집주인이 얄미웠다. 그렇게 위치 하나 빼놓고 아무런 장점도 없는 그곳을 둘러본 후 두 번째로 남편이 우리를 안내한 곳이 바로 술집 위에 위치한 감방 같은 원룸텔이다. 그것도 42만 원이란다.



그나마 기업형 원룸텔은 시설은 깨끗하지만 월세가 48만 원이다. 더 둘러보고 할 것도 없다. 집에서 확인한 사진들은 모두 실제보다 훨씬 넓어 보이게 찍었을 뿐이고 종이에 깨알 같이 적어 온 30만 원대 이하의 방은 아예 볼 필요도 없다는 사실을 남편도 이젠 깨달은 것 같다. 아이에게 물어보니 어제 마음에 들었던 곳에서 지내고 싶단다. 내가 봐도 그 집이 제일 나은 것 같다. 어차피 서울로 대학을 보내기로 결정했을 땐 어느 정도의 지출은 각오했던 바다.



일단 아이와 얘기를 나눴다. 한 달에 집에서 보내주는 월세 포함 생활비는 총량 불변의 법칙이라 했다. 백십만 원까지 보내줄 테니 비싼 방을 원하면 그만큼 용돈이 줄어드는 거고 싼 방을 택할 경우 용돈이 조금 늘어난다고 했다. 만일 53만 원의 방을 선택할 경우 나머지 57만 원으로 공과금과 생활비를 충당하는 셈이다. 아이가 과외 알바로 버는 돈도 제법 되기에 내 생각엔 그 정도면 우리 형편에 적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답답하고 지저분한 원룸텔에서 지내라 할까 봐 내내 걱정하던 딸아이의 얼굴에 그제야 미소가 떠오른다. 고맙게도 아이는 이 정도에도 충분히 만족해했다. 그러더니 이제까지 내게 전혀 알려주지 않았던 과외 월급이며 제 통장에 들어있는 금액까지 술술 얘기한다. 들어보니 역시 야무진 아이다.

"대신 본과에 올라가기 전까진 용돈 인상은 없어"



방학중이지만 부동산은 방을 구하려 온 학생과 부모들로 북새통이다. 계약서를 작성하고 있으니 마침 아이 옆방을 누군가 계약하러 온다. 한의대를 다니는 2학년 여학생이란다. 집주인 할아버지말이 90%가 다 여학생이라 하니 왠지 안심이 된다. 할아버지가 내세우는 규칙이 좀 깐깐하게 들리긴 하지만 오히려 그 덕에 보다 쾌적한 환경에서 아이가 머물 수 있을 것 같다.



계약서를 딸아이 손에 쥐어주며 이건 앞으로 네가 관리하라고 했다. 짐이 별로 없으니 이사 때 엄마 아빠는 오지 않을 테고 혼자 캐리어에 몇 번 짐을 실어 옮겨라 했다. 그리고 이사를 마치면 동사무소에 가서 전입 신고도 하라고 했다. 어차피 계속 서울에서 살 테니 이런저런 혜택 받기도 편할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젠 등본을 떼보면 딸아이의 이름이 남아 있을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이젠 정말 독립을 하는구나 생각하니 왠지 뭉클해진다.



본인이 원하는 집 계약도 마치고 다 큰 성인처럼 대해줬더니 딸아이는 기분이 좋은가 보다. 뜬금없이 내게 이런 소릴 한다.

"엄마, 나 나중에 잠실에 집사서 거기서 살 거야"

서울 집값이 얼마인지 전혀 모르는 아이가 하는 순박한 소리에 절로 웃음이 난다.

"그래, 그거 좋은 생각이다"

자기 말에 맞장구를 쳐주니 아이는 어느새 다시 예전의 응석받이가 되어 내 어깨에 살포시 머리를 기댄다. 아이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나 역시 흐뭇하긴 하지만 왠지 마음 한 켠이 다소 씁쓸하다. 조금 전에 봤던 그 감옥 같은 원룸텔에 살고 있을 청춘들이 자꾸 떠오르는 건 아마 또래의 자식을 키우는 부모라서 그럴 테다. 모두들 비록 시작은 힘들어도 나중엔 더 크게 웃을 수 있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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