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현 Mar 27. 2024

철없는 20대는 모두 막말을 하는가?

저는 그러한 삶을 살아오지 않았습니다

    놀랍게도 나는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멍청해지고 있다. 내가 비운 밥그릇이 쌓여 가는 만큼 조금은 지혜로워져야 할 텐데 애석한 일이다. 과장 없이, 20대에 쓴 글이 30대로 접어든 뒤로 쓴 글보다 훨씬 탁월하다. 초년생 기자로서 각종 취재 현장을 누비고 다닐 때, 언론사 입사 준비를 할 때, 그보다 더 전에 학부생 신분으로 시민단체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이곳저곳을 쑤시고 다닐 때 쓴 글을 보면, 파토스가 줄줄 흘러넘치기는 하지만 놀라우리만치 날카롭고 영리한 데다 지금보다 정의롭고 대담하기까지 하다.


    수년 전 있었던 모종의 일 때문에 일필휘지로 써 내려갔던 고발문은 그야말로 걸작이었다. 행간마다 피를 토하고 있었고, 당시의 나는 무슨 정신으로 이런 글을 썼던가 싶을 정도로 훌륭했다. 정보와 감정을 동시에 전달해야 한다는 목적에 충실했다는 점에서, 지금 봐도 정말 잘 쓴 글이었다. 역시 글이란 몸이 터져 나갈 것 같을 때라야 잘 써지는 법이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우울증 약을 끊고 나니 귀신같이 글이 안 써져서 브런치 계정을 반쯤 방치해 두는 것만 봐도 그렇다.)


    단언컨대 스물둘, 스물셋의 보현은 서른둘, 서른셋의 보현보다 사유의 깊이도 깊고 글솜씨도 유려했었다. 세상 모든 게 불만스럽고, 일주일 중 엿새 정도는 화가 나 있고, 좋아하는 것보다 싫어하는 것이 훨씬 많고, 그럼에도 내가 미래에 살아갈 세상은 지금보다는 모든 측면에서 훨씬 나을 것이라고 굳게 믿을 수 있었던 것은 그 나이만의 반짝이는 특권이었다.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었지만, 온 세상이 나의 것이었다. 그런 근거 없는 자신감이 내가 글을 쓰는 원동력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인격이 어딘가 단단히 비틀린 것이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의 막말은 한 적이 없다. 물론 다채로운 어휘로 창의적인 욕설을 하는 솜씨 역시 지금보다 어릴 때가 더 낫긴 했지만, 이를테면 '조선일보'를 '좆선일보'라고 부른다거나, '한겨레'를 '한걸레'라고 부른다거나, 어쨌든 내가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무언가를 단순히 모멸하고 깔아뭉개기 위해 힘쓰는 언어 습관을 싫어했었다. 그런 것이 품위 있다고도, 효과적이라고도, 재치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내가 올바르다고 믿는 사회상을 만들어 가는 데 보탬이 될 것이라고 절대로 믿지 않았다. 내가 무척 사랑하고, 같은 고민을 공유했던 친구들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인격까지 의심스러워지는 과거의 갖가지 언행에 대해 '철없는 20대' 운운하며 변명부터 늘어놓고, 말로는 사죄한다면서도 옷깃에 반짝이는 배지 하나 달 기회를 놓지 못해 온갖 명분을 아득바득 가져다 두르는 치를 보고 있자니 퍽 우습다. '정치와 사회에 대해 불만도 많고 하고 싶은 말도 많은 20대'가 모두 그런 식으로 경솔하게 입을 놀리지는 않건만. 저런 치를 보면서 '쟤보다는 내가 낫지'라고 가슴을 쓸어내리는 것도 인격 도야에는 별로 도움이 안 될 것 같다. 그저 지금보다 더 멍청해지지 않게끔 자기 단속이나 열심히 해야겠다. 발제 준비나 하러 가야지…….

매거진의 이전글 조금만 유명해지면 여의도로 달려가는 사람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